강직한 성품 지닌 한국경제의 산증인
강직한 성품 지닌 한국경제의 산증인
  • 김은숙 
  • 입력 2003-10-17 09:00
  • 승인 2003.10.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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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 출신으로 서울법대 졸업후 행시통해 관료입문37년간 경제부처만 재직한 경제통 … 장관직 네차례원칙 중시하지만 인간적 친화력도 상당하다는 평감사원장 취임되면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첫 케이스 기록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의 임명동의안 부결로 코드정치에 최대위기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한 카드는 전윤철 전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다. 국민의 정부가 막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공직을 떠났던 전윤철 감사원장 후보는 퇴임 8개월만에 참여정부 감사원장 내정자로 재등장했다.

한국경제의 산증인이라고 할 만큼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갈 사람이 감히 없다. 37년간 경제부처에서만 재직했던 전내정자는 수산청장과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재경부장관 등 요직을 다 거치며 누구보다 화려한 공직생활을 보냈다. 노대통령이 전후보를 선택한 것은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의 국회부결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또한 코드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받아들여 ‘코드’ 보다 ‘경륜’에 무게를 둔 인선으로 평가되고 있다. 윤성식 감사원장의 임명동의안 부결은 노대통령의 ‘코드정치’에 대한 정치권의 ‘경고성’ 의미가 깊게 담겨 있다.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이 혼선을 빚은 가장 큰 원인중 하나로 지적됐던 노대통령의 ‘코드정치’는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의 임명동의안 부결로 냉혹한 심판을 받았다.

전윤철 전경제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비판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황임을 노대통령 스스로가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코드정치라는 비난을 비껴가면서, 임명동의안 통과가 무난한 카드로 전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한국경제의 산증인이라고 불릴 만큼 지난 30여년간 경제관료의 길만 걸어온 전내정자.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일인자로 손꼽히는 전내정자의 경력은 ‘화려’ 그 자체다. 특히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는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전내정자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지난 66년 행정고시 4회에 합격,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공직생활 초창기에는 ‘전남 목포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지역세에 눌려 적지 않은 설움을 받았다.

가장 단적인 예가 사무관 임관 후 보통 5년이 걸리는 서기관 승진을 8년만에 했고, 국장 승진도 두 차례나 미끄러졌으며, 국장 1급 승진도 간신히 하는 등 인사불이익을 당하는 설움을 톡톡히 경험했다.문민정부 시절에는 수산청장에 내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으나 하루만에 바뀌었고, 조달청장으로 내정됐다가 또 다시 바뀌는 힘든 시절을 겸험했다.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능력과 별개로 불이익을 당했던 전후보는 한때 그러한 설움에 못이겨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민정부 말기와 DJ정권이 들어선 이후 전후보는 능력에 맞는 굵직굵직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문민정부 시절 97년 공정거래위원장을 시작으로 2000년 기획예산처장관,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 등 남들은 한번 하기도 힘든 장관직만 네 번이나 연이어 하게 됐다. 공직생활의 절반을 예산부서에서 보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정책의 산파역을 맡았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전내정자는 각종 경제개혁을 주도했다. 재벌 및 공공부문개혁을 무리없이 주도해 나갔다.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에 재벌기업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 재벌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해 강도높은 조사를 벌였으며, 기획예산처장관 재임중에는 공공부문 개혁을 순탄하게 추진했다. 아주 잠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을 때에도 청와대와 내각을 충실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 정부 모든 경제정책의 처음과 끝에는 늘 그가 있었다. 공식생활 초창기는 초라했지만 마지막은 화려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공직생활을 접었던 전내정자는 퇴임의 변에서 “사무관에서 1급으로 승진할 때까지 정당한 이유없이 승진에서 누락될 때 가장 힘들고 괴로웠다”며 “37년 공직생활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아쉬운 점은 많다”고 회고했다. 아쉬운 점이 많아서일까. 그는 다시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퇴임 후 제주대 석좌교수로 활동하면서도 한국경제를 누구보다 걱정했다던 전내정자는 자신이 못다한 것들을 김진표 부총리가 잘 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수시로 지인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전후보는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공직자들이 붙인 ‘전핏대’라는 별명도 이러한 그의 성품 때문. 하지만 아랫사람들의 고충을 일일이 챙기는 인간적 친화력도 상당하다고 한다. 그래선지 공직사회에서 그는 훌륭한 경제수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퇴임 후 학자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정치권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민주당의 유력한 총선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등 정치권의 구애도 여러차례 받았다는 후문. 청와대의 감사원장 후보 인선과정에서 전후보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전문성과 경륜 측면에서 높게 평가됐다.

막판까지 조준희 변호사·이용훈 전대법관·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 가장 무난한 후보로 전후보가 선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 윤태영대변인은 “전내정자는 예산과 공정거래 분야에서 많은 경력을 쌓아 감사원의 기본 직무인 정부예산과 회계 검사업무에 정통하다”면서 발탁 배경을 밝혔다. 윤대변인은 또 “전 내정자가 국가중요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해본 경험이 있고 특히 공공부문의 개혁을 주도해 감사원의 개혁과 정책 평가 감사로의 전환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인선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가 전후보를 발탁한 것은 임명동의안 부결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무당적인 상태에서 국회의 임명동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해 오랜 관료생활과 장관,부총리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함으로써 비교적 능력이 검증된 관료 출신을 발탁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후보가 국회 임명동의를 받아 제 19대 감사원장에 취임할 경우 정통 경제관료로는 처음 감사원장이 되는 셈.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쳐 임명동의안이 무난히 통과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정통 관료출신이 공무원을 감찰하는 헌법기관의 장이 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기에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떠안는 부담이 너무 크다. 자칫 ‘국회의 횡포’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후보가 민주당 성향이 강한 인사라는 점에서 민주당도 이번엔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DJ 정부의 핵심경제 참모였던 전후보가 과연 참여정부의 공무원 감찰기관의 수장으로 등극할 수 있을지 인사청문회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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