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 캐기 위해 벼랑끝으로 몰아”
“윗선 캐기 위해 벼랑끝으로 몰아”
  • 이수향 
  • 입력 2006-05-24 09:00
  • 승인 2006.05.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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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양재동 사옥 증축 인허가 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아오던 박석안(60) 전 서울시 주택국장의 자살로 인한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15일 팔당호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박씨는 이날 오전 검찰의 6번째 소환을 앞두고 있던 차였다. 박씨의 죽음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검찰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자살한 사람은 9명으로 늘어났다. 박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둘러싸고 검찰의 강압수사 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들어갈 땐 ‘담담’ 나올 땐 ‘울상’

최근 박석안 전국장의 자살과 관련, 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은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다. 검찰은 상당히 불쾌해하면서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 진화에 나섰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강압수사부분에 대해서는 변명할 가치조차 못느낀다”며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일들이 가능하겠는가”라며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 실제로 검찰의 강압수사 문제는 이미 여러차례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월 20일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의장은 “지금까지 검찰로부터 당한 부당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해 검찰의 시정조치를 받아내겠다”며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수사의 최고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 조사실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조사실 철문 소리에 ‘움찔’

전직 검찰 수사관 K씨는 “사실 검찰조사라는게 항상 ‘양반’식으로 행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검찰로서는 되도록 힘 안들이고 신속 정확하게 사건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수사에 임하기 때문에 상대와 사건에 따라 다른 수사방식을 적용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초기 기선제압’은 여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스킬이라는 것. “심리적으로 압박하죠. 여기 들어온 이상 ‘거짓말하다가는 끝장난다’는 분위기를 심어주는 겁니다.” 소환조사와 처벌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시사하는 것은 가장 흔히 쓰이는 ‘기술’중의 하나. “말이 소환이지 당사자는 죽을 맛일 겁니다. 검찰에 불려올 때마다 상대가 느끼는 위압감을 이용하는거죠.” 그는 이어 “‘말안하면 더 큰 처벌을 받는다’, ‘쉽게 끝내자’는 식의 말도 흔히 쓰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귀띔했다.

피의자를 최대한 긴장시키는 이러한 방법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심리수사의 한 방법으로 고문수사와 폭력이 사라진 현재, 검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그는 “대부분 조사실 철문만 세게 닫아도 ‘움찔’한다. 책상을 한번 내리쳐도 상대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또 단어의 선택이나 목소리의 고조, 뉘앙스도 상대방에 따라 받아들이는 강도는 다 다를 것”이라 전했다. 특히 명예를 중시하는 고위 공직자나 고학력 피의자들의 입을 열기 위해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K씨는 “빨리 인정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덮어두겠다”는 식의 회유도 종종 있는 일이라 털어났다. 지치기는 수사관이나 피의자나 마찬가지.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는 말로 어차피 더 이상 버텨봐야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서게 만든다는 것”이 K씨의 말이다. 조사실 철문안에서는 ‘합법적인(?)’ 회유와 협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머리로 MBA는 어떻게 했어”

몇년전 회사자금 횡령문제에 연루, 모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A씨. 그는 “검찰이라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A씨는 “검찰조사를 받는다는 자체가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라며 “특히 피의자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미국MBA까지 마친 엘리트로 빠른 출세가도를 달려온 A씨는 회사 자금문제로 검찰에 ‘불려가는’ 순간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조사실 문이 ‘쾅!’ 닫히는데 그때의 긴장감은 말로 설명 못합니다. 이XX, 저XX는 기본이에요. ‘그 머리로 MBA는 어떻게 했어?’, ‘이 XX봐라’는 식으로 무조건 물아붙이는데 난생 처음 심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참다못한 A씨는 “말 좀 가려합시다”라고 항변했지만, 수사관들은 “여기가 니 집 안방인줄 알어?”,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라며 기가막힌 표정을 짓기가 일쑤였다고. 일부 수사관은 “그래도 배운 양반이라 곱게 하는거야”라며 대놓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는 것.A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수사관들은 하나같이 ‘피곤하니 빨리 끝내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A씨를 힘들게 했던 것은 ‘버티면 더 힘들어진다’는 검찰의 강압성 멘트. “‘모른다’는 말을 하면 무조건 ‘YES’ 또는 ‘NO’라는 흑백논리 식의 대답을 강요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사생활 문제도 거론해 ‘압박’

작년에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전직 공무원 B씨. 그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더 심한 모욕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 공무원 맞아?’, ‘이래서 공무원XX들은 안돼’, ‘옷벗을 각오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는 것. B씨는 “특히 공무원 비리와 연루된 사건에 검찰은 목숨걸고 달려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예사.

일부 검사들은 유도신문에 넘어오게끔 안간힘을 쓰는데,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여러가지 불이익을 거론하곤 했다는 것.“‘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없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개인사를 털어보면 흠없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검찰은 공무원이 연관된 수사에는 수사본안과는 상관없는 문제까지 끄집어냅니다. 완전 숨통을 조이는거죠. 그래놓고서는 어떤 부분만 인정하면 다른건 덮겠다는 식입니다.”여자문제까지 거론했다는 것이 B씨의 주장. “사건과는 상관없는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런 것들이 다 알려져도 상관없겠느냐’는 말을 할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검찰의 인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B씨는 “검찰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온갖 ‘치사한’ 수단을 동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사생활까지 거론할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며 울분을 토했다.B씨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검찰의 ‘꼬리물기’식 수사방식. 즉 윗선을 들먹이는 방법으로 압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버텨봤자 다 걸려’, ‘윗대가리들이 시켰구만’이라는 식으로 윗선을 겨냥, 압박수사를 가할 때는 난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당신 윗대가리까지 통째로 쓸어볼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조건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 “억울하다” 하소연

지난 16일, 서울 삼성병원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씨의 동료들에게서도 비슷한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이 한결같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지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검찰 수사의 최종 목표 및 배경에 대해 강한 의혹을 나타냈다.한 동료는 “공무원을 무조건 비리와 엮으려는 발상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하나만 제대로 족치면 줄줄이 사탕식으로 엮여나올거라는 생각인 것 같아요”라며 언성을 높였다.또다른 동료 역시 “박국장 자체가 타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섯 번이나 부른다는게 말이 됩니까? 하나 티잡으려고 부른 거 아니겠습니까”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일부는 “최종 타깃은 서울시의 최고 윗선임이 분명하다”, “검찰 나름대로는 몸통을 잡으려 애꿎은 사람을 족친것 같다”며 ‘몸통수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하지만 검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폭언이나 강압수사할 상황이 아니었다”며 강압수사를 완강 부인하는 동시에 박씨를 조사한 경위와 배경에 대해 자세히 밝히는 등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어쨌거나 이번 박씨의 죽음으로 현대차 사옥 인허가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당분간 난항이 예상된다. 강압수사를 두고 검찰과 유가족측간 상이한 주장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박씨의 죽음을 둘러싼 책임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 자살 전날 같이 술마신 후배 A씨 인터뷰“모욕감에 죽고 싶다고 했다”

지난 16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씨의 절친한 후배 김명진씨는 “(자살하기) 하루 전날에도 만났는데…”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14일 오후 박씨는 지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소주를 두 병이나 마시며 힘든 심정을 피력했다고 한다.

- 술자리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갔나.
▲ 장시간 조사받다보니 심신이 피폐해졌다며 힘들어했다. 억울하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수갑차고 포승줄에 묶인 자신의 모습을 식구들에게 보이기 싫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어떤 점을 유독 힘들어했나.
▲ 검찰 조사중 상당한 모욕을 당했다고 들었다. 그동안 소중하게 지켜온 명예와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고 괴로워했다. 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식으로 친지와 지인까지 조사하는 무차별 수사방식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 모욕적인 발언이라면.
▲ 칼만 안들었을 뿐이지 말로 한 사람의 인격을 난도질한거다. 조서를 쓰는데 손이 떨려서 글씨가 고르지 못하자 ‘이런 졸필로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느냐’는 식으로… 면전에서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면서 다그치는데 난생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힘들었다고 하더라.

- 처남까지 연루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텐데.
▲ 처남은 위암수술을 받은 중환자다. 검찰 조사를 받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상당히 괴로워했다. ‘나만 조사받고 고생하면 괜찮은데 수술 후 말라비틀어진 사람을 다그치니 죽을 맛’이라 했다. 또 ‘둘 다 한방에 처넣겠다’고 하니까….

- 같이 조사를 받은 처남 상태는.
▲ 처남은 대학 교수다. 건강도 그렇지만 교수로서의 명예와 위신에 많은 상처를 입은 모양이다. 또 검찰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로, 앞으로 진행될 조사에 상당한 심적 부담을 갖고 있다. 조사시 불이익을 받을까 언론과 접촉도 피하고 있다.

- 자살조짐이 있었나.
▲ 자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칠까 걱정을 많이했다. ‘죽고싶다’는 말을 했지만 설마했다. 퇴촌의 어머님 산소에 들른 후 마음을 정한 것 같다.

- 박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 자존심과 명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평생을 곧고 올바르게 사신 분이다. 후배들이 가장 아끼고 존경하며 따르는 선배였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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