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의 장자방’ 유·우·익 서울대 교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선 승리에 일조한 ‘장자방’으론 두 명의 학계 인물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지리학과 유우익 교수(58)와 곽승준 고려대학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유 교수는 이 당선자의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연구원(GSI) 원장을, 곽 교수는 GSI 정책실장을 맡아 호흡을 맞춰 대선공약을 꼼꼼하게 준비했다.
두 사람은 대선 뒤 일단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곽 교수는 정부 인수위원회에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하며 근거리 보좌를 이어갔지만 유 교수는 최근 “학교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남긴 채 프랑스로 떠났다.
이명박 당선자의 인수위 출범으로 어수선하던 지난 12월 27일. 이 당선자의 싱크탱크를 총지휘했던 유 교수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 교수는 출국 전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치에 참여하기보다 학교에 남고 싶다”면서 “대선에서 이겼으니 이제 소임은 다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의 아이디어를 처음 낸 인물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학자로서 겸손함이 묻어난다.
“이제는 모든 게 인수위로 넘어갔다. 제가 뭐라고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다.”
유 교수는 출국에 앞서 이 당선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뜻을 분명히 밝혔다.
당선자가 “인수위에서 일해 달라”고 권했지만 “설사 임명하셔도 일하러 나오지 않을 테니 명단에서 빼달라”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15년 넘게 이어온 인연
이 당선자 쪽 관계자에 따르면 유 교수는 취임준비위원장과 차기 총리, 경제부처 장관 후보 등으로 거론됐다. 인수위원 명단에서 유 교수 이름이 빠지자 입각설이 강하게 나돌기도 했다.
유 교수는 이에 대해 “다른 사심은 전혀 없다”고 부인하며 “오직 학교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대선 승리 후 권력층에 다가서기 위한 줄서기 전화와 기자들의 질문이 밀려오자 이를 피하기 위해 외국행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유 교수는 ‘출국’ 등을 이유로 대부분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기자와의 접촉도 처음엔 사양하는 느낌이었다.
“학회 일도 있고, 개인적 사정도 있어 파리로 가는 것이다. 연초에 돌아오더라도 학교로 돌아가 일할 생각이다.”
하지만 유 교수는 “앞으로 이 당선자를 가까이서 도와줄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란 기자의 질문엔 “사람 일인데 장담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여운을 남겼다.
당장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지만 상황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것.
뛰어난 논리로 근거 제공
유 교수가 이 당선자와 맺은 인연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선자가 1990년대 중반 지역정책론과 지역개발론을 강의하던 유 교수를 찾아 도움을 청하면서부터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번 대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이후 이 당선자가 테니스 멤버를 부탁할 정도로 친분은 두터워졌다.
대선을 준비하며 유 교수는 대운하 구상 등 전체적인 공약 준비 작업에 나섰다. 전공을 살려 남해안 개발, 서해 평화지대 개발 등 굵직한 공약들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유 교수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뛰어난 논리력을 바탕으로 이 당선자의 주요 연설문 작성을 총감독한 것도 그였다. 서울시장 퇴임사, 한나라당 대선 후보직 수락연설 초고 등이 유 교수의 ‘작품’이었다.
유 교수는 서울대 문리대를 거쳐 독일 키일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격은 과묵한 편이지만 뛰어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연설과 토론 실력은 남다르다.
세계지리학연합회(IGU) 부회장을 지낸 뒤 지난해 1월부터는 비 서양인 출신 최초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버클리대와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객원교수로도 일해 현지인맥도 풍부한 편이다.
이 당선자와 큰 그림을 함께 그렸던 유 교수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구상을 반박하며 ‘수도이전 공약이 철회돼야 하는 12가지 이유’를 집대성했다.
영어교육에도 높은 관심
유 교수가 중심이 된 200여명의 한반도대운하연구회는 1년 넘게 수십 차례의 분과별 모임과 두 차례 심포지엄을 열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를 위해 유럽지역과 러시아, 중국 등의 현지 운하답사를 했다.
국제정책연구원장에 걸맞게 영어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유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좌담회에서 “이 당선자가 공영방송에 이어 영어전용채널을 만들고 모든 분야에서 영어로 말하는 글로벌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당선자가 후보시절부터 영어교육을 강조했던 만큼 영어로 말하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외국인을 상대로 한 아리랑TV와 별도로 국내소식을 국민들에게 영어로 전하는 방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논공행상’ 속 신선한 바람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이 당선자에게 조언하며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이었던 유 교수의 ‘학교 잔류 선언’은 ‘논공행상’이 당연시 됐던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에선 ‘대운하 구상’을 거론하며 책임정치 차원에서 유 교수가 결국엔 이 당선자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유 교수의 필요성이 절실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유 교수의 이 같은 행보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자 그를 잘 아는 고향 벗 등 가까운 사람들은 ‘역시 대학자 유우익이다’는 반응이다.
어릴 때 고향마을에서 학교를 함께 다닌 한 동기생은 “유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 해 2년이나 월반했다”면서 “고교 때도 성적이 우수해 지방에선 쉽게 가기 어려웠던 서울대에 합격, 주위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유 교수는 언젠가는 새 정부에서 큰 자리를 맡아 나라를 위해 뛸 인재라 본다”고 덧붙였다.
‘당선시키면 과감히 떠날 것이다’는 화두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유 교수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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