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대연합론을 제기하면서 ‘비좌파세력 연합’의 기치를 들었다. 이 전총재의 움직임과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고건 전총리의 행보이다. 최근 ‘이회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창사랑) 전대표인 백승홍 전의원과 고건 전총리를 지지하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이하 한미준) 장석창 위원장이 비밀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따라서 이 전총재와 고 전총리 두 사람이 사전교감하에 모종의 작업을 벌이고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고)-(창) 연대설이다. 판을 뒤집는 새정치세력의 태동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새정치세력 등장 가능성 ‘고조’
보수진영의 위기감은 한나라당의 최근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최근 ‘현대판 매관매직’으로 불리는 공천장사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김덕룡, 박성범 의원 등 당 중진의원들이 수억원의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당은 ‘매관매직 게이트’로 규정하고 한나라당을 부패한 정당으로 몰아가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차떼기 정당이란 혼령도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발견된 현대 비자금 60여억원이 지난 2002년 이회창 후보 쪽에 주고 남은 ‘대선 잔금’이라는 한나라당 내부보고서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현대차는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현금 100억원을 승합차에 실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떼기’로 한나라당에 넘긴 장본인이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그밖에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파문도 당을 옥죄고 있다. ‘성추행당’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문제는 이런 불명예스런 이미지는 한나라당이 자초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위기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이번에 터진 공천수뢰파문의 경우 중앙당이 제보를 받아 검찰 수사를 의뢰했지만 사전 차단용의 성격이 강하다. 차떼기 정당 부활도 이재오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내부 보고서를 읽어 외부에 공개된 것이다. 최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파문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전혀 긴장을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회창 보수세력 결집 ‘호소’
보수정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는 평은 바다건너 일본 외무성 평가에서도 지적됐다.한 일간지에 발표된 일본 외무성의 ‘한반도 정세 보고서’에 따르면 차기 대선구도를 보수대 혁신 구도로 내다봤다. 이 보고서는 최근 당 지지율(한나라당 33%, 열린우리당 21%, 민주노동당 9.5%, 민주당 3.8%)을 기초로 “노무현 정권이 지금까지 인기가 낮다 해도 2년 뒤 대선에서 보수 정권이 탄생할 것이란 예측은 현 상태에서 쉽지 않다”고 관측했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민주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한 ‘진보진영’이 35%여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이를 뛰어넘는 지지율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한국내 보수진영에 강한 자극제가 됐다. 당장 보수 진영의 이회창 전총재가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지난 13일 이 전총재는 한 조찬강연을 통해 “2007년 대선에서 非(비)좌파 세력의 대연합전선을 형성해 3기 좌파정권의 출현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에 맞서 보수진영의 대결집을 호소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2002년 대선 후 정치를 떠났고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현실정치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자유민주주의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몸이 부서지더라도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 전총재가 2007년 대선에서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않겠지만 킹메이커로서 역할은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백승홍-장석창 ‘밀담’
이 전총재의 보수대연합론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최근 창사랑 대표를 지냈고 5·31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출마를 준비하는 백승홍 전의원과 고건을 지지하는 한미준의 장석창 위원장이 비밀회동을 가졌기 때문이다.외형상으로는 장 위원장이 백 전의원을 찾아가 만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 자리에서 장위원장은 백 전의원에게 한미준의 문패를 달고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고 한다. 일단 백 전의원은 이 제의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 위원장의 해석은 달랐다. 조만간 무소속 출마를 접고 한미준으로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힌 것이다.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이 단지 대구시장 선거를 위해 만났다는 점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한미준은 고건 대망론을 등에 업고 있는 조직이다. 또 그 멤버중에 이회창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장 위원장만 해도 그렇다. 그는 이 전총재 후원그룹인 부국팀 멤버출신이다. 또 한미준의 세력확장도 범상치 않다. 한미준은 호남 뿐만 아니라 대구, 대전, 경북에도 시도당을 창당해 후보를 낼 계획이다. 이는 충청도가 고향이고 영남에 우호적인 이 전총재의 지지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한미준과 백 전의원의 만남을 두고 고건-이회창 보수대연합이라는 ‘큰 그림’이 나오는게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남 출신이지만 보수적인 이미지로 영남에서도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는 고 전총리와 보수 진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 전총재가 손을 잡는다면 파괴력은 막강하다. 백 전의원도 이를 적극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그는 “장위원장을 만난 것은 지방선거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지방선거 이후를 대비한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그는 “한미준이 이 전총재를 지지한다면 적극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후 가시화될 수도
하지만 당장 보수대연합을 위한 고건-창 연대가 뜨는 것은 예단하기 어렵다. 외견상 고 전총리측은 한미준의 시도당 창당과 관련해 사전교감이나 정치적 연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한편 보수대연합론과 관련해 이 전총재의 핵심 측근도 “창사랑은 자발적인 팬클럽으로 이 전총재와 직접 연결짓지 말아달라”며 “이 전총재는 아직 한미준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총리나 이 전총재의 핵심측근은 백 전의원과 장 위원장의 만남에 대해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이다.하지만 보수진영이 2007년 차기대선에서 집권하기 위해선 뉴라이트(신보수층)를 포함한 범보수 진영의 대연합론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여 고-창연대 문제는 자연스럽게 제기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 보수대연합 90년 3당 합당이 ‘원조’
1988년 4월 26일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평민당)이 제1야당이 되고,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민주당),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신민주공화당의 4당 체제에 의한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다. 이에 정국을 운영하는 데 상당한 정치적인 부담을 느낀 여당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포문은 박준규 민정당대표위원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정책연합, 정치연합, 정당통합의 3단계 수순’을 밝혔다.
명분은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늘어나는 좌경용공 세력에 공동대처하기 위해서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를 표방하는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결집해야 한다는 논리의 보수대연합론이었다. 결국 1990년 1월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3당은 ‘구국의 결단’이라며 합당을 선언했다. 그 결과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여당이 탄생하면서 다시 여대야소로의 정계개편과 함께 완벽하지는 않지만 보수대연합이 일단락되었다.
홍준철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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