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사과후 ‘국회 나들이’
“한미 FTA 할 말 다했다”
청와대에 사과후 ‘국회 나들이’
“한미 FTA 할 말 다했다”
  • 이금미 
  • 입력 2006-04-18 09:00
  • 승인 2006.04.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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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전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한미FTA는 졸속”이라는 ‘독설’을 두고 정치권의 해석은 분분하다.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의 동맹파 대 자주파의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바라보는 시각, ‘행담도 의혹’ 사건을 계기로 앙심을 품고 친정을 향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풀이도 있으며,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교사’라는 것을 지적하며, 정 전비서관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그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서울대 동기로 막역한 사이라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2002년 비슷한 시기 노무현 후보 캠프에 합류한 두 사람이 나란히 국회와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 친노진영에선 노무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정치는 유시민, 정책은 정태인’이라는 구도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행담도 의혹’과 관련 ‘무죄’ 판결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정 전비서관은 “한미FTA는 졸속”이라고 청와대를 공격하며 화려하게 언론의 중심에 섰다. 그의 발언이 논란을 빚자 그는 바로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관계 부처에 사과한다”고 했다.

민노당에서도 ‘러브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태인 파문’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 전비서관은 청와대를 향한 공격으로 인해 ‘스타’가 됐다. 여당을 비롯해 민주노동당에서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정 전비서관과 한미FTA는 지방선거 국면 이슈로 부상할 조짐이다. 정 전비서관의 발언과 맞물려 한미FTA 추진에 대해 여권 일각과 민주노동당의 반발, 시민단체의 움직임도 다시 활기를 찾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한미FTA에 대한 당내 주류의 시각은 ‘국익증진을 위해서’였으며, 정부·여당의 공조 하에 FTA 협상을 이끌어내자는 것이었다. 때문에 당 지도부도 정 전비서관의 한미FTA 논란을 일축하는 분위기였다. 당내에서 ‘일반적인 얘기’라는 관전평도 있다. 외교안보 및 경제협상에서 미국을 두고 동맹인가 자주인가에 대한 논란은 항상 있어왔던 얘기이고, 전략적인 선택만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그러나 정 전비서관의 개입으로 인해 재야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청와대의 한미FTA 추진방식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어 ‘속도조절’과 협상방침 재검토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문제는 차기 유력대권주자인 친 정동영계와 친 김근태계의 입장이 다르다는 데 있다. 친김근태 의원들로 구성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는 정 전비서관과 비공개 조찬을 열었는데, 오보로 알려진 ‘통계조작’ 발언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한편, 그동안 여당내 FTA 관련 연구는 주로 친정동영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연구단체인 ‘국회 FTA포럼’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구성원엔 유재건 임종석 김혁규 정장선 이종걸 김명자 정의용 박영선 이광재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충 훑어만 봐도 정동영 의장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때문에 한미FTA를 기점으로 이념적 성향이 정치적·정책적 차별화로 발전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노무현 FTA 구상과 ‘배기찬’

물론 정 전비서관의 발언만 놓고 보면 그는 자주파에 속한다. 그 역시 “한미 FTA를 동북아 중심 국가론과 어긋난다”면서 “나와 이정우 전정책실장이 물러난 뒤 (청와대가)친미로 가버렸다.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도 친미로 돌아섰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한미FTA 문제를 청와대 비서진의 동맹파와 자주파의 대결, 또는 서울대와 연세대 386 참모간의 대결, 그리고 ‘행담도 의혹’의 섭섭한 마음의 표출로 바라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짚어볼 대목은 한미FTA을 바라보는 노 대통령의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한미FTA를 임기 후반기의 국정과제로 정했다.

그 과정에서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진다. 이 책은 코리아가 강력한 힘을 가진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 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확고한 중심을 가진 ‘유연한 외교 정책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책 저자와 정 전비서관의 관계이다. 책의 저자이자 당시 국회의장 정책비서관에 재직중이던 배기찬씨는 지난 2월 동북아시대위원회 비서관에 임명됐다. 이를 두고 FTA 반대론자들은 노 대통령이 미국을 보는 시각이 변했다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자리는 한미FTA 추진과 관련해 노 대통령과 청와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정 전비서관이 거쳐 갔던 자리이며, 배 비서관은 정 전비서관을 ‘노무현 후보 캠프’로 안내한 절친한 후배이다. 비슷한 시기 당시 원외인사였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캠프에 합류했다. 정 전비서관과 유 의원의 관계 역시 짚어볼 대목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 동기를 이유로 이해찬 전국무총리의 초선의원 시절 정 전비서관이 이전총리의 의정활동을 도왔다고 알려진다. 당시 유 장관은 이 전총리를 보좌했다.

270여개 친노 시민단체 재결집

세간에 정 전비서관이 이 전총리의 의정활동을 도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전총리측에선 “유시민 장관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전총리를 도운 바 없다”고 전한다.그러나 이 전총리가 98년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이 됐을 때, 유 장관과 정 전비서관을 학술진흥재단에 보내 실질적인 보좌인력으로 활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최근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레임덕 보고서’가 노 대통령에 전달됐다”면서 “정 전비서관이 지적한 한미FTA 및 여권의 인식과 일치한다”고 전했다.

여기엔 ‘이광재-재경부-삼성’의 유착설도 포함된다. 한미FTA와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270여개 친노 시민단체의 반 한미FTA 정서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 레임덕과도 연결된다는 것. 소식통에 의하면 최근 정 전비서관의 역할은 한미FTA 문제에 충격을 가해 관점을 흐리고 있거나, 진정성에 비중을 둔다면 재검토 및 친노세력의 재결집을 유도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특히, 이 전총리가 ‘황제골프’ 파문으로 낙마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이해찬 라인’으로 통하는 정 전비서관의 향후 행보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정태인과 노무현 동북아 시대위 시절 깊은 신뢰 얻어


정태인 전비서관은 동북아시대위원회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노 대통령의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었다고 알려진다. 동북아위원회가 경제중심에서 평화협력 문제까지 포괄하는 기능으로 확대되면서 정 전비서관의 교체가 예상됐지만, 본인의 의지로 인해 유임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전비서관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엔 노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4년 5월 탄핵에서 복귀한 후부터 간담회를 통해 만남이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당시 정 전비서관은 평소의 소신대로 자신의 의견을 막힘없이 개진했다고 전해진다. 정 전비서관은 인수위 멤버이기도 했다. 경제 1분과 소속으로 당시 멤버들 모두 참여정부 핵심 요직에 앉아있거나, 그 자리를 거쳤다. 이정우 전정책기획위원장이 1분과 간사였으며, 허성관 전행정자치부 장관, 이동걸 전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정 전비서관 등이 분과위원들이었다. 당시 정 전비서관은 청와대 정책실장에 이정우 전위원장이 발탁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냈다고 알려진다. 여권에선 김진표 현 경제부총리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으나, 이정우 전위원장이 초대 정책실장에 올랐다. 물론, 정 전비서관의 지지 때문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때부터 유시민 의원이 정치 분야에서 노 대통령에 하는 향도 역할을 정책 분야에선 정 전비서관이 맡아 왔다고 알려진다. 정 전비서관은 인수위 시절만 해도 의욕이 넘치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러나 그러부터 1년반이 흐른 시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학자 출신들이 개혁 아이디어를 내놔도 관료들의 손을 거치면서 알맹이는 다 빠져버리고, 모든 채널을 총동원하는 재벌들의 로비력이 정말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정 전비서관이 이광재 의원을 들어 삼성과의 유착설을 뿌린 내용과도 연결된다.



# 정태인 청와대 전 경제비서관 미니 인터뷰“레임덕 보고서는 모르는 일”



-대통령 취임을 기념해 지난 3월25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했다. ‘무죄 판결’ 이후 처음 만난 것인가.
▲그렇다.

-오찬에서 한미FTA와 관련한 대화가 오갔다. 대통령은 ‘개방 경제’를 말했고, 청와대 대변인은 참석자들이 상당 부분 납득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는데.
▲오찬에서 대통령께 한미FTA가 졸속 추진될 경우 국가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말했고, 상당 부분 납득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근태 최고위원과 가까운 민평련 소속 의원들이 초청한 간담회에 참석했으며, 이들 대부분이 정 전비서관의 한미FTA를 바라보는 시각에 동의하고 있다. 당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유력 대권주자와 가까운 모임의 의원들과 교류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도 나오고 있다.
▲부르면 갈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떠한 정치적 의도는 없다.

-청와대 몸담았던 신분으로 청와대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데, 부담스럽지 않은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
-공직기강비서실에서 만든 ‘레임덕 보고서’와 관련해 말들이 많다.
▲모르는 일이다.

-한미FTA와 관련 향후 역할은.
▲한미 FTA와 관련해 내가 할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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