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와 70년대 군부독재와 맞서 싸워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민주투사이자 저항시인, 80년대 이후 생명운동을 벌이며 당대의 사상가로서 자리를 굳건히 해온 김지하 시인(63)이 모처럼 노무현 대통령에게 “셀로판지처럼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보다 멀리, 보다 높게 민족의 미래를 보고 국정을 수행하라”고 조언했다. “가능하다면 정치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김시인은 “노정권의 탄생이나 여건은 상당히 좋은데 노대통령 스스로가 좋은 일을 구기는 것같다”고 안타까워했다. 21세기 화두인 생명·평화·상생에 대한 천착의 핵심 저작으로 최근 ‘생명학’ 1권과 2권을 화남출판사에서 펴낸 김시인은 ‘모심’이라는 것이 생명운동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특강을 위해 모교인 서울대를 방문한 그를 강연장과 캠퍼스 벤치에서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고, 최근에는 야당대표들과 협의과정에서 이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는데 어떤 의견이십니까.
▲ “나는 정치 발언을 하고 싶지 않아요. 또 정치적 발언을 근래 거의 해오지 않았습니다. 똑같아지니까. 재신임 문제는 A에서 B의 차원 문제인 것 같아. 적어도 A에서 Z까지 보거나 플러스 알파까지 보아야 하는데 너무 수들이 짧다고 봐.”그는 재신임 문제에 대한 직답을 피했다.
-노대통령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재신임 문제를 걸고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 “다만 노대통령이 서툴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닳아빠진 정치인, 정상배들보다 한결 순정성이 있으니까. 방향만 잘 잡으면 잘 할 수 있을 거요.”
-서툴다는데 잘할 수 있다는 건 앞뒤가 안맞는 것 아닙니까.
▲ “서투니까 잘할 수 있다니까. 장님도 새를 잡을 수 있거든. 서툴다는 것은 순박하니까 나온 행동이기도 합니다. 다만 피아 구분을 잘못하는 것같아. 그것이 코드라는 것으로 나타나는지 모르겠지만 피아의 설정과 구분이 편벽돼 있어.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 시대라면 몰라도 그것은 자칫 협량으로 비쳐요. 사람을 쓰는 데 있어서 폭이 넓어야 합니다. 지난 대선때 이회창을 찍은 사람이라도 필요하다면 데려다 써야지. 위로부터는 배우고, 아래로는 다독여주는 (상생)정치가 필요해.”
-상생의 정치는 노대통령이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구세력, 노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는 일부 보수언론의 제동과 방해 때문에 먹혀들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것같은데요.
▲ “언제는 수구세력의 협력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그동안 쌓아온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계속 견제와 방해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때문에 대통령은 그것을 뛰어넘는 의제를 구축해야지. 마냥 구세력의 저항 탓만 할 수 없어요.”그러면서 요즘 국민들이 뭉치고 통합하는 동력이 상실되는 것같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월드컵 때의 우리 민족의 동력을 보세요. 어떤 계기가 되니까 700만명이 동시에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며 에너지를 분출했습니다. 며칠전 중국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전국민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광적으로 얼싸안고 춤추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 민족 역시 계기만 주어지면 그보다 더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그러므로 노대통령은 시시한 정상배들이 지지고 볶는 것에 매달려 땀을 쏟지 말고 보다 멀리, 보다 높이 보고 민족의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하고 싶어요.”
-스케일 크게 나가라는 의미로 들리는데 어떤 것이 ‘큰 것’일까요.
▲ “거대 민족담론을 말하는 거요. 남한 내부의 것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북한 모두를 아우르고, 고구려까지도 생각하는 스케일을 말해요. 얼마 전 중국은 힘이 생기니까 고구려도 자기들의 역사라는 망언을 하지 않아요. 그것은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런 스케일을 그들은 갖고 있단 말이지.”
-어쨌든 노정권이 흔들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를 타개할 대책을 제시한다면.
▲ “지금은 빨갱이다, 아니다의 시대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 갖고 밥벌어 먹는다고 생떼지만 얼마나 천박한 일입니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아날로그 코드로 색깔을 가지고 먹고 살 방편으로 삼고 있느냐는 거요. 그러나 노정권이 셀로판지처럼 가벼우니까 그런 것에 말려들고 있어요. 민족운명을 걸머질 사상이 없어. 그러니 끌려 다니는 거야.”
-민족운명을 걸머질 사상이란 어떤 것일까요.
▲ “우선 모르면 어른들한테 물어보아야지. 철학적으로까지 안가더라도 말이야. 양심적 어른들이 그래도 우리에게는 큰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시대를 관통해오면서도 굽히지 않고 살아온 순정한 양심적 어른들이 계시거든. 그분들에게 자문을 구해야지. 그분들 데려다 놓고 자기 얘기만 실컷 하고, 변명만 한다면 의미가 없지. 추기경님을 아껴서 만났으면(모처럼 모셨으면) 그분의 진솔한 말씀을 듣고 협조를 얻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사회 원로들도 묻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답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진정한 말씀을 구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얻어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내가 가진 것 없으면 제대로 물어야지 식사나 하고 모양새 갖추려는 태도는 온당치 않습니다.”김시인은 거듭 노대통령이 국가의 동력을 모아갈 분위기는 다른 어느 때보다 좋은데 대통령 스스로가 이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구세력의 저항이라는 것도 올바르게만 가면 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라고 단언했다. 거기에는 질곡의 역사를 헤쳐온 민주투사의 자신감 넘치는 응원 메시지로도 비쳐졌다. 그는 노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인 애정을 깔고 비판을 하고 있어서 평소 친분이 있는가가 궁금했다.
-노대통령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요. 다만 취임 초기 어떤 사람이 노대통령을 만나볼 의향이 없느냐며 면담을 상의해오길래 만날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그쪽 사람에 따르면 노대통령이 외롭다며 조언을 해줄 수 없느냐는 거였어요. 그래서 빨리, 또는 늦게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빈틈없이 안전하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회가 왔으니 이를 잘 살려주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2030세대와 5060세대를 무 자르듯 분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5060이라고 다 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사람을 가려볼 줄 아는 것도 통치의 큰 덕목이라고 했지요. 2030과 5060의 퓨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문화혁신을 해달라고 했지요. 문화대통령이 돼달라고 주문했어요. 다소 관념적이지만 내 말뜻을 알아차렸을 거요. 그렇게 말하고는 직접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사실 (재임시절의)YS도 DJ도 만나지 않았어요.”자신의 임무(민주화운동)가 끝났으니 본업(시창작과 생명운동)으로 돌아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만나는 것이 세속적인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사유활동에는 별로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에서 그가 DJ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다. 같은 고향사람으로서 민주화 투쟁시 그는 DJ와 함께 거대한 투쟁전선을 구축해오지 않았던가.“나는 김대중씨가 대선에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한 뒤 영국에서 돌아와서 민주당을 쪼개고 다시 당을 만드는 것을 보고 그래선 안된다고 신문에 썼어요. 그런 것들이 섭섭했던지 그 뒤로 나와는 의사소통이 단절되었습니다. 나도 만날 필요가 없어서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만난 일이 없었고요. 그동안 DJ를 돕다가 등을 돌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표적으로 일본의 지성이자 이와나미 사장인 로스케씨를 들 수 있어요. 그는 DJ의 구명을 위해 세계를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관계가 단절되었어요.”
-신당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제대로 가는 것 아니요. 이부영이나 젊은 친구들 제대로 역사를 산다고 봅니다”
-정부는 최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한다고 발표했는데 입장은 어떻습니까.
▲ “반대요. 나는 전쟁 자체를 반대해요.”생명사상운동을 펴는 당사자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념의 체계상 전쟁은 안된다는 것이다.
-실리 추구라는 측면에서 찬성하는 의견도 만만찮은데요.
▲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요. 얻으면 얼마를 얻는다고….”그리고 그는 정치가 모처럼 거룩한 이름값을 하려면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같다고 아쉬워했다.
-김시인의 최근 화두인 생명. 평화·상생에 대한 집적물로 ‘생명학’ 1,2권이 화남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책을 내신 특별한 뜻이 있습니까.
▲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 크고 우선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어떻게 다룰 거냐. 그건 바로 ‘모심’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한 생명은 정권보다 크다’는 말이 나오자 91년 5월 분신 정국에서 김시인이 조선일보에 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기고문이 떠오른다. 당시 그 글은 신화적인 운동의 대선배가 민주화운동의 좌절감이 극단의 형태로 나타났던 학생 노동자들의 분신 사태를 비판했다고 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운동의 대선배가 공안정국과 보수언론과 함께 젊은 학도들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돼 더욱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던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 대선배의 진정어린 생명사상의 한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다시 화해했다.
“당시 나는 인간의 뜻을 반의 반도 반영하지 못하는 권력정치보다야 한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생명의 원리에 입각해서 운동의 방향을 다시 개편할 용의가 없느냐는 충고를 했던 것인데, 제목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어서(제목은 편집자 소관임) 내 진의가 엉뚱하게 왜곡되어버린 것입니다. 차라리 그때 논전이라도 벌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우리가 알다시피 김시인이 생명사상에 깊이 천착하게 된 것은 1979년 수형생활을 하면서 손수건만한 감옥 창문을 통해 거대한 시멘트담벼락 틈새에서 개가죽나무가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서부터다. 이때 그는 생명의 끈질김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척박하고 생명이 발을 내릴 것같지 않은 시멘트 담벼락 틈새에 씨가 날아와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보면서 전율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비록 그를 죽이려 한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넓은 그릇이 된다. 김시인은 1980년 출옥후 우리의 고대사상과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문명적 대안을 동아시아에서 찾는 사상적 편력과 상생평화운동, 문화운동을 펼쳐왔다.
-시인께서는 신간 ‘생명학’을 통해 생명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서 동양적 개념의 기와 신기, 수운 최제우의 동학사상을 통한 동서문화의 결합의 가능성, 동양의 풍수학과 서양의 생태학을 결합한 융합의 생명사상, 특히 최제우의 ‘모심 사상’을 통한 신령한 우주 생명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재발견을 모색하고 있는데요.
▲ “살아있는 모든 것을 모셔야지. 존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남을 모시는데 인격적 결함이 있지만 생명을 알면서 모시는데 나름으로 열중합니다. 저항시인이란 이름으로 감옥에 있을 때 할 일이라고는 종교서적이나 생명서적을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것을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동양에서 찾아야지. 그래서 불경 주역 동학에 부딪쳤지. 또 증조부와 조부는 동학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대는 커뮤니스트로 어둔 골방에서만 사셨어요. 이런 가정적 환경과 내 신체적 구속으로 인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좌파운동이든 생명운동이든 우리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같이 먹자는 마음을 다잡으면 모든 것이 제 것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겁니다.”
-시는 어떻게 쓰십니까.
▲ “나는 쥐어짜서는 못씁니다. 시가 내리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시는 칼과 새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너무 쥐면 손이 베이게 되고, 새는 죽게 되죠. 그러나 허술하게 쥐면 나가버리든가 날아가버리므로 묘를 얻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는 채근하지만 쥐어짜지 않는 텅 빈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사상가 김지하와 시인 김지하. 그는 근래 우리 것에 대한 천착이 지나쳐 `신이 내린 것같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속과는 거리가 있는 구름 위에 앉아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소명의식이 있다.“멕시코의 대시인 옥타비오 빠스가 산문을 많이 쓰는데 그것은 멕시코인을 단결시키는 데 힘이 된다는 거예요. 그는 멕시코성을 발견하면서 산문을 쓰고 있는데, 우리 역시 한민족성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되겠지 하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책을 쓰는 것은 한국성(민족성)을 찾자는 소망 때문입니다. 나는 역사가도 과학자도 심령술사도 아닙니다. 그러나 민족성을 찾는 작업이라면 무엇이든 할 거예요. 그렇다고 나는 쇼비니스트가 아닙니다.”그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긍정의 시각으로 본다.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들인다. 저항하고 부딪치고 깨지고 울부짖는 투사의 모습이 아니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세월의 풍상이 그를 이같이 숙성시켰다고 할까.
-하루 일과를 소개하신다면.
▲ “새벽에 일어나 글쓰고, 오전에는 난초와 매화를 칩니다. 오후에는 정발산으로 산책을 나가는데 요즘은 다리가 불편해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요.”그는 7~8년전 서울 목동에서 일산신도시로 주거를 옮겨 가족과 함께 따사로운 햇살 한가닥에도 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계홍 본지 기획취재위원, 용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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