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여당의 역공을 받아치기에 바쁜 한나라당 안팎에서 이상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 시장의 참모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이다. 국내에 남아 이 시장을 둘러싼 연이은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이 시장의 참모들도 애가 탈만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시선은 이 시장이 아닌 참모들에게로 향한다. 일찌감치 대권 도전을 선언한 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 전략을 착착 진행시켜야 할 때인데 엉뚱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여과없이 언론공개 ‘다반사’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이 시장이 엉뚱한 발언과 사건으로 대권 레이스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오는 6월이면 서울시장 임기도 만료된다. 한나라당 한 핵심당직자는 “당권을 틀어쥐고 있는 박근혜 대표 진영을 공략해도 모자랄 형편이다. 그럼에도 후보 자신이 불미스런 사건을 만들고 있고, 또 여과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면서 이 시장 참모들의 언론보좌 기능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이 시장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양윤재 전서울시 행정부시장의 ‘청계천 비리’는 무사히 넘겼지만, 악재가 겹쳐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도 내놨다.
이로인해 이 시장은 정치권 안팎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다간 이 시장의 대권 레이스에도 차질이 예상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시민은 일반인, 시장님은 특별인인가.”이 시장의 황제 테니스 소식을 접한 한 정치평론가의 촌평이다. 그의 촌철살인 비난은 위대한 의자로 이어진다. “특별인은 테니스장만이 아니라 미술관에서도 대접이 다른가 보다.” 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 전시회에 유일하게 전시된 이 시장의 사진을 꼬집은 말이다. 정치권의 공격은 더 매섭다.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서울시가 이 시장 1인의 왕국인 것 같다. 돈 좋아하고 특별대우 좋아하고 간판걸기 좋아하는 3박자를 두루 갖춘 전형적 구태”라고 꼬집었다.
국내 정치권이 이 시장 사건으로 뒤숭숭하지만, 적장 이 시장의 입을 통해 어떠한 해명도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열흘 일정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도 벌어졌다. 미국에 도착한 첫 날인 지난 11일엔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갔다”고 돌출 발언을 했고, 이어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연일 ‘친미 발언’을 쏟아냈다. 애초, 이 시장의 방미 목적은 서울-워싱턴 DC와의 자매결연 체결 및 뉴욕과의 경제교류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친미 연설문’도 참모들 작품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에서 “미국이 한국전쟁 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으며, 공화당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간담회 연설에서는 “한미관계가 한국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줬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국이 선진국클럽인 OECD회원국이 됐다”며 미국을 향한 구애에 바빴다. 서울시장 역할을 넘어 입맛에 맞게 한미동맹·남북문제 등을 언급하며 결과적으로 미국 보수인사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 왔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이유다.
정치권에선 이 시장이 워싱턴에 차기 대권주자로 데뷔하기 위해서 방미했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 시장은 한국 대선에 출마하려 하는지, 미국 대선에 출마하려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참에 열린우리당은 이해찬 전총리의 40만원 상당의 내기골프 파문을, 이 시장의 6백만~2천만원대의 황제 테니스 의혹으로 갈아 치울 태세다. 주인도 없는 서울시청에선 해명 기자회견이 계속되고 있으나, 누가 뭐래도 이 시장은 ‘자살골’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해도 한나라당 안팎에선 “대선주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노골적인 비난이 이어진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줄곧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던 이 시장인데, 참모들이 엄호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 게다가 방미 기간 중 이 시장의 발언을 두고, 연설문을 작성한 참모들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꽂히고 있다.
실제로 방미 기간 중 연설문 작성은 이 시장 참모들의 손을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시장의 방미길을 수행한 인사들은 서울시 공무원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연설문에 관여할 수 있는 이들은 경영기획실장, 대변인, 홍보기획비서관, 국제관계자문대사 등이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연설문은 현지에서 작성된 것으로 안다”고 전제한 뒤 “국내 연설이라면 이 시장이 즉석에서 첨삭해 연설할 수도 있겠지만, 영어로 작성된 연설문을 손댈 수 있었겠느냐”고 전했다.
맨파워는 ‘막강’ 조직력은 ‘느슨’
이 시장의 참모들에게 정치권이 주목하는 이유는 이 시장의 특유의 ‘치밀함’에 있다. 이 시장의 주도면밀함, 신중함을 감안할 때, 이 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대선을 위한 이렇다할 선거 캠프가 갖춰진 것은 아니지만 이 시장은 서울시청 및 외곽조직에서 대선 전략 수립과 동시에 가동 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팎의 유동성이 보장되고 있으며, 이 역시 이 시장 인맥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바탕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이 시장 지근거리에는 92년 정계입문 때부터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 보좌 및 자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연이 닿은 인맥이 서울시장 재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비공식 사조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시장의 모교인 고려대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비선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고려대 비선라인의 한 핵심인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시장의 대권 도전과 무관치 않은 조직인 것만은 사실”이라면서도 “규모와 구체적인 역할은 말해 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사조직은 조심스럽게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엔 이 시장의 지지도 급상승과 동시에 세확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시장의 외곽조직 가운데 이 시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연구원도 정치권의 관심대상이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연구원은 이 시장이 1997년 설립했으며, 정기적으로 여론동향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이 시장이 대선전에 돌입했을 때 선거캠프의 근거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시장은 이처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참모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통제가 안되고 제각각 따로 논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공세운 사람만 챙겨
시니어 그룹과 주니어 그룹으로 분열돼 자주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시장 대권 플랜 및 선거 전략 수립 단계에서 부딪쳤다는 것이다. 맨파워에 앞서 조직력이 버텨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시장 캠프가 느슨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이 시장의 인사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는 게 이 시장 주변의 전언이다. 공(功)을 중시하는 이 시장의 인사 스타일, 그리고 그것이 이번 사단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이 시장 캠프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한 인사는 “이 시장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모두 지금까지 이 시장 가까이에 포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시장이 발탁하지 않아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며, 이 시장을 비난한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이 시장 주변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참모들이 이 시장의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서도, 이 시장 참모들의 손발이 따로 놀고 있음이 감지된다. 사실, 방미 기간중 불거진 사건 외에도 이 시장의 돌출 발언은 여당은 물론 한나라당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한나라당을 ‘해변가’에 놀러온 사람들로 비유하는가하면, 강금실 전법무부장관을 배용준 등의 연예인과 비교, 차기 서울시장감으로 거론되는 강 전장관의 인기를 폄하하기도 했다. 결국,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로 압축된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