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다 호치민 시내를 가로지르던 중 폭우를 만났고 거리가 순식간에 잠겨 차선구분도 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달리던 오토바이가 물에 잠기고 물 먹은 엔진은 시동이 꺼졌다.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에서는 이렇지 않은데 새삼 우리나라가 참 잘사는 나라인 걸 느꼈다.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그렇게 폭우처럼 쏟아져 나왔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마냥 무력하게 후퇴를 거듭하던 탓에 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많은 소년병들은 앳된 손으로 총을 잡았다.
비쩍 마른 고사리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며 동족상잔의 아픔을 몸으로 새기며 버텨냈던 그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준 고마운 분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높은 아파트 옆으로 꼬불꼬불한 주택가. 낮은 대문을 들어가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영웅’을 만났다.
꼬장꼬장한 기력과 흔들리지 않는 눈빛은 아흔이 넘는 연세를 무색하게 하였다. 잘 듣지 못하셔서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 빼면 20년은 젊어 보이셨다.
뜨끈한 고구마를 내어주시며 익숙한 듯 그날의 영웅담을 들려주신다. 살아나는 눈빛에 전해지는 자부심이 무척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준비해간 생필품 몇 가지를 내어놓으며 집안을 둘러본다. 담당 보훈섬김이가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를 하시는지 구석구석 눈길 닿는 곳마다 부스러기 하나 없었다.
과자부스러기 하나가 해충을 불러들이는데 벌레가 관심 가질 틈을 주지 않으셨다. 우리가 낸 세금이 이런 분들의 노고에 쓰일 수 있다니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소한 것들을 챙기려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가신다고 하는데, 몇 년 전 할머니를 먼저 보내신 할아버지께서는 무척 기다리실 만도 하다. 그래서 그렇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시나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마당을 쓸고 마루 밑 묵은 먼지를 비질한다. 거기는 안해도 괜찮다 하시며 이리저리 꼼꼼히 살피는 어르신 덕에 보란 듯 더욱 열심히 청소를 한다.
대문 위로 올라가니 물이 한강이다. 언제 막혔는지 알 수 없는 우수관 입구를 끄적끄적 작대기로 뚫고, 소용돌이치는 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체증도 같이 내린다. 권해주신 믹스커피 한잔으로 마무리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집을 나선다. 고작 이런 일로 뿌듯함을 느끼는 내가 도리어 죄송스러웠다.
그날 방문하였던 어르신 중 눈에 멍이 든 분이 계셨다. 거동이 불편하신데 넘어지셔 다치셨다고 했다. 다음 주에 안부를 여쭸더니 집에 계시질 않았다.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때마침 방문한 보훈섬김이가 이상을 느껴 병원에 모시고 갔고, 넘어질 때 뇌출혈이 생긴 걸 발견하여 치료 중이시라고 하였다.
누군가의 방문 한번이 어르신의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국가유공자의 노년이 좀 더 편안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살기 팍팍하다’, ‘헬조선’ 같은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럴 때면 내가 지금 이 땅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분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불과 70년도 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은 그분들의 목숨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계속 참여하고 지속되는 기부 그리고 봉사문화의 정착을 위해 함께 동참하겠다는 첫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기가 어렵다는 뉴스가 나올수록 작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어떨까? 지금도 잊혀지고 있지만 잊지 말아야할 우리들의 영웅을 위해서.
人to 봉사단 유경일
김을규 기자 ek8386@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