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8인회’가 뛴다
대선을 1년 4개월 남긴 시점이다.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100일 민심대장정’을 들고 나온 손학규 전경기도지사는 이미 일정의 절반을 소화했고, 이명박 전서울시장 역시 청계천 복원의 전국구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내륙운하 카드’를 띄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전대표의 움직임은 가히 눈길을 끌 만하다. 극비리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8인회’를 결성하는가 하면, 여의도 국회 앞 오피스텔에 ‘베이스 캠프’를 가동하고 있는 것. 일단 8월 임시국회 활동에 전념하고, 오는 9월에나 사무실을 개소하겠다는 박 전대표측의 공식적인 언급과는 거리가 멀다.
박 전대표측이 ‘오는 9월’을 운운하며 대외적으로만 긴장의 끈을 늦춘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서울시장 퇴임 직후부터 일찌감치 사무실을 마련하며 정책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이 전시장, 또 고정 지지층 확보를 위해 배낭하나 달랑 메고 텃밭 가꾸기에 나선 손 전지사에 견줘 대선가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주자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겉으론 ‘여유’ 안에선 ‘분주’
지난 2년간 한나라당의 당력(黨力)과 당심(黨心)은 ‘박근혜 체제’에 모아졌다. 당내 경선에서 승패를 가르는 ‘조직 구축’은 그 과정에서 이미 달성한 셈이다. 전체 234개 지역구 중 박 전대표의 사람들이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판세 분석도 심상치 않다. 이미 ‘박근혜당’을 기반으로 치러진 7·11 전당대회에서 박 전대표는 성공을 거뒀다.
또 대선 경선 방식 ‘변경 불가’로 이어지는 박 전대표의 단호한 입장도 이러한 추측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경선 방식과 관련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신임 강재섭 대표는 박 전대표에 든든한 후원자다.
게다가 현역의원으로서 언제나 언론에 노출돼 있는 박 전대표에 견줘, 이 전시장과 손 전지사는 장외주자일 뿐이다.
때문에 6월15일 대표직에서 물러난 박 전대표가 선택한 전략도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그동안 알려진 바로는 박 전대표의 칩거는 휴식과 정치구상으로 짜여져 있다. 7·26 재·보궐 선거 지원과 8·15 고 육영수 여사 추모식을 제외하고는 대중 앞에 서는 것도 꺼렸다. 공적인 약속도 미루고, 독서로 소일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누리꾼과의 소통은 놓치지 않았다.
현재 임시국회 일정을 마치면, 9월에는 대학강연 등 ‘특강 정치’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 제고에도 나설 계획이다. 외국 방문 약속도 잡혀 있다. 국제무대에 얼굴을 알린다는 복안이다. 박 전대표는 먼저 독일을 찾을 예정이다. 독일 첫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고, 선친 박정희 전대통령이 찾았던 독일 루르지방 탄광도 둘러볼 계획이다. 또 닝푸쿠이 주한 중국 대사의 요청에 의해 새마을운동 특강을 위해 연내 중국 방문계획도 잡혀 있다.
여기까지라면, 겉으로 봐선 여타의 대권주자의 대선레이스와 다를 바 없다.
김기춘 ‘좌장’ 대선기획 ‘자문’
‘박근혜 대통령’만들기를 위한 대권 로드맵, 진짜는 지금부터다.
8월 임시국회가 소집되기 전, 여의도 국회는 한가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박 전대표 주변에선 엷은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현역의원들로 구성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모임이 결성될 것이란 소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8인회’가 실체를 드러냈다. 모임의 멤버도 윤곽이 잡혔다. 좌장격인 김기춘 의원을 비롯해 김무성 유승민 유정복 전여옥 김학송 유기준 곽성문 의원이 그들이다.
박 전대표와 8인회 멤버와의 관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들 모두는 박근혜 체제 하에서 주요 당직을 맡아 활동하며 박 전대표와 손발을 맞췄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먼저 김기춘 의원은 박근혜 대표 시절 마지막 여의도연구소(이하 여연) 소장을 맡은 인사다. 김 의원이 여연 소장을 맡을 무렵인 2005년 7월은 한나라당이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여연 소장은 대개 학자 출신이나 초선의원들이 맡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 의원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세운 정수장학회 출신 모임인 ‘상청회’ 소속으로, 박 전대표와의 인연도 깊다. 때문에 당시 여연을 박 전대표의 대선전략을 위한 싱크탱크로 만들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던 터다. 그래서 일까. 박 전대표의 대선 레이스에서 김 의원의 역할은 대선기획 자문으로 알려진다.
또 박 전대표는 김무성 의원을 사무총장에, 유정복 유승민 의원을 비서실장에, 전여옥 의원을 대변인에, 곽성문 의원을 홍보위원장에 임명한 바 있다.
물론, 유기준 의원과 김학송 의원은 현 강재섭 대표 체제에서 각각 공동대변인과 홍보기획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당직 임명과 관련 ‘친박근혜’ 인사라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8인회 멤버라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다.
‘지원세력’ 묶고 ‘실무진’ 꾸리고
8인회 내부적으로 멤버들의 역할분담도 이미 끝났다는 게 정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극비리에 추진중이다. 8인회의 핵심멤버 유승민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8인회의 존재 자체도 부정했을 정도다.
아무튼 대선을 준비하는 시점, 대선캠프의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박 전대표의 ‘전폭적인 신뢰’는 전제 조건이다. 한나라당 한 핵심당직자는 “‘박근혜 스타일’로 친위사단을 꾸렸다”고 진단했다. 신뢰와 충성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제한적인 구성이라는 얘기다.
여의도 국회 앞 파라곤 오피스텔은 8인회의 활동 무대다. 8인회를 조직할 무렵인 지난 8월 초부터 본격적인 대선캠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가 가동되고 있다. 물론, 이는 박 전대표의 임시국회 활동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휴가를 끝내고 정치재개에 나선 박 전대표의 일정에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파라곤에는 일찌감치 김무성 의원의 사무실이 마련돼 있었고, 유승민 의원이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개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유 의원의 사무실은 국회 보좌진도 출입을 금할 정도로 극비리에 가동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파라곤 사무실의 역할도 관심사로 부상중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대표의 정책·공약 개발 및 대선전략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지원세력을 묶는 것과 더불어 박근혜 대선캠프를 위한 실무진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른 바 ‘파라곤 프로젝트’다.
#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미니 인터뷰
“시대착오적 흑색선전 멈춰라”
지난 8월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338호. 책상에는 수북이 자료가 쌓여 있고 이재오 최고위원은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다. 기자의 질문에 이 최고위원은 “‘민심의 바다’를 항해하고 왔으니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해 당 정책위원회에 넘겨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바다 이야기’에 대한 우회적인 공세다. 3주만의 당무 복귀, 여유가 묻어난다.
지난 7·11일 전당대회 직후 전남 순천 선암사를 찾는 등 강재섭 대표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던 이 최고위원. 지난 8월1일부터 20일까지 충북과 경북, 전북지역을 순회하며 수해복구 민생탐방에 나섰던 터다. ‘박근혜 vs 이명박’ 대리전 구도로 흘렀던 전당대회, 그리고 이 최고위원의 잇단 독자행보. 때문에 이명박 전서울시장의 향후 대선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이 최고위원은 “우리를 음해하려는 흑색선전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이 최고위원과의 일문일답.
-20일간의 수해복구 민생탐방을 정리한다면.
▲그때 그때 보고 느낀 것은 메모해 홈페이지에 편지 형식으로 올렸다. 20일은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지역 주민들과 토론했다. 강행군을 이어가며, 놓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그동안 느끼고 구상한 바를 정책위원회에 넘길 계획이다. 당 최고위원으로서 아무 말이 없다면, 이는 ‘농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하다. 16개 광역시도, 243개 기초단체 등 현재의 행정구역은 너무 많고 복잡하다. 70~80개 행정구역, 그 안에서 교육·문화·경제·사회·복지 등이 해결되는 완벽한 지방자치의 실현이 시급하다.
-한나라당에 대한 바닥 민심을 체험하고 왔는데.
▲당의 이미지가 좀더 ‘서민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로 바뀌는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화’는 누그러졌는지.
▲모든 분노와 슬픔, 그리고 아픔은 이미 산사에 묻고 내려왔다.
-전당대회 이후 잇단 독자행보에 이명박 전서울시장의 대선행보와 연계해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이명박 전시장과 따로 살림을 차린다?(웃음) 우리를 음해하려는 흑색선전일 뿐이다. 역사에서 상대방을 음해하는 마타도어식, 시대착오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에 나라는 항상 불행했다.
-현재의 한나라당을 진단한다면.
▲노무현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 이슈가 양산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모든 이슈를 다 건드리고 있다. 정권의 진퇴를 두고 밝혀야 할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당력을 집중해 투쟁해야 한다. 나머지 부분은 해당 상임위에서 정리해야 한다. 모든 이슈에 대응하다 보니, 당이 두서없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또 당의 옳고 그름을 의원들이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때는 따로 있다. 당이 생기 있을 때다. 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비판할 수 없다면, 그 때부터 당은 죽은 정당이다. ‘강재섭 대표 체제’ 한달이 지나도록 의원들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당에 생기가 없는 이유는.
▲당직 임명에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를 ‘코드인사’, ‘낙하산인사’라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에는 최고위원회가 있음에도 인사는 대표 맘대로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의원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당 안팎으로 다가오고 있다.
-온 나라가 ‘바다이야기’로 들썩이고 있는데.
▲‘바다 이야기’는 권력형 부패다. 당력이 집중될 곳도 여기다. 가뜩이나 없는 서민의 모든 걸 뺏어 ‘바다’에 빠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푼돈을 모아 서민 경제를 살려도 모자랄 판에, 도박판을 만들어 정치자금에 유용된 것은 아닌지….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여권에선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한 연구가 한창인데.
▲오픈 프라이머리의 핵심은 본선 경쟁력에 있다. 국민이 선출한 후보와 체육관에서 뽑은 후보 중 어디에 경쟁력이 있겠는가. <미>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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