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버텨 떠납니다”
주인공은 올해로 검사생활 6년째를 맞는 청주지검 형사1부의 김찬학검사(41·사시 40회). 김검사는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검사의 사임이유는 뜻밖에도 ‘생계곤란’이었다. 김검사는 사직서에 “검사를 천직으로 알고 성실하게 근무하고자 했지만, 제 형편에 더는 버티기 어려워 부득이 사직하고자 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을 준비해 임관한 김검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만난 평범한 집안의 여성과 결혼,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전셋집도 얻지 못해 좁은 집에서 3대가 함께 사는 고된 생활이었다. 어려운 형편 탓에 변호사의 길도 생각했지만, 임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내의 권유에 검사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그러나 결혼 1년 후 아내의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여름에는 아버지마저 중풍으로 쓰러졌다.
전신근육이 강직되는 증세에 시달리던 아내는 우울증까지 겹쳐 정신과 치료까지 병행해야했고, 수차례 응급실로 실려가는 등 건강은 점점 악화됐다. 두 사람의 간호는 고스란히 김검사의 몫이었다. 기를 쓰고 버텨봤지만 뻔한 검사 급여로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김검사의 생활은 흔히 알고 있는 검사들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조건이 아닌 사랑으로 지금의 아내를 맞이한 김검사에게는 ‘열쇠3개는 기본’으로 알려져 있는 혼수도 딴나라 얘기였다. 일부 검사들이 처가의 재력을 발판삼아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운전면허도 없었고, 승용차를 구입해 유지할 형편도 되지 않았기에 학익동에서 주안동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는 김검사는 싸구려 승용차한대 굴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좁은 전셋집에서 시할머니와 시부모 모시기를 자청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두 사람의 병수발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김검사에게 경제적인 부담은 감당키 어려웠다. 지난해 8월 사의를 표명했던 김검사는 선배들의 만류로 보류했다가, 결국 이번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고액 스카웃 제시 ‘솔깃’
모 지방검찰청에 근무하는 A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생계로 인해 천직으로 여기던 검찰을 떠난다는 것이 같은 검사로서 무척 안타깝다”면서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A검사에 따르면 모든 검사들이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검사들이 받는 돈은 생각외로 적다. 연차가 쌓이면 호봉이 올라가긴 하지만 공무원 연봉은 책정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이것저것 다 떼고나면 실수령액은 얼마 안된다. 같은 햇수를 근무한 대기업 사원보다 적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검사는 ‘명예’와 ‘사명감’으로 일할 뿐 ‘돈’보고는 할만한 직업이 못된다는 것.A검사는 “검사직을 관두고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재벌그룹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재벌기업 법무팀으로 스카웃될 경우 현연봉의 수배에 달하는 연봉이 보장되는데, 어느 누가 솔깃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또 변호사 역시 전관예우의 영향과 능력에 따라 억대연봉을 노릴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변호사 개업을 생각하는 검사들도 적지않다는 것.실제로 삼성은 역량있는 특수부출신 검사들을 법무팀으로 대거 영입, 적잖은 비난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 삼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검사출신만도 무려 10여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 역시 대검 중수부 출신의 김모 부장검사를 영입한데 이어, LG와 두산 등의 대기업들도 고액연봉을 제시, 현직 검사들을 스카웃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털터리 검사도 있다”
또 다른 검사 B씨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자면, 검사생활 수년차가 돼도 변변한 집 한칸, 자동차 한대 마련못하고 생활비에 쪼들려사는 ‘거지검사’도 많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는 “집장만은 고사하고 전셋값과 카드값에 전전긍긍하는 검사들도 수두룩하다”며 “심지어 치솟는 전세값도 감당하지 못해 일부러 지방근무를 지원하는 검사도 여럿 봤다”고 귀띔했다.B검사는 “오죽하면 ‘검사월급으로 편하게 먹고 살려면 원래 집에 돈이 많거나, 처갓집이 재벌이거나, 부인이 재테크(부동산, 주식)에 뛰어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다들 배꼽이 빠져라 웃으면서도 공감하는 눈치더라”며 허탈해했다. 사시만 패스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믿음만큼 순진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든든한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검사연봉으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여러 검사들의 의견이다.
물론 검사는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에 해당될 뿐 아니라, 기득권 집단으로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상당수의 검사들이 능력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으며 위치에 걸맞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재벌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스스로 몸값을 올리거나 억대 연봉을 꿈꾸며 일찌감치 변호사로 전환, 승승장구하는 부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돈이 돈을 키운다’는 말이 있듯 일부 ‘복받은’ 검사는 집안과 처가 등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수십~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검사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이번 김검사의 경우처럼 천직으로 여겼던 검찰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B검사는 “돈으로만 따지고 볼 때 검사는 매력적인 직업이 될 수 없다. 검사로 계속 남아있기 위해서는 천직으로서의 사명감 외에도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치솟는 전셋값과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카드값에 전전긍긍하면서는 업무에 전념할 수 없다는 것이다.B검사에 따르면 세상사람들의 믿음처럼 ‘검사답게’ 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막말로 ‘검사체면’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어느 검사에게나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달하면 아무리 검사라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이번 김검사의 경우가 그런거 아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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