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지킴이 최경봉 교수, “영어 제2 모국어 아니다”
한글지킴이 최경봉 교수, “영어 제2 모국어 아니다”
  •  
  • 입력 2004-10-01 09:00
  • 승인 2004.10.0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장 선거에서 한국말 서툰 역(逆) 이민 2세가 출마하더니 이겼다는 말이었죠. 사회에서 행세하려면 결국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한국의 현실에,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한글 지킴이 최경봉(40·원광대 한국어문학부) 교수가 필리핀 외유에 올랐던 것은 더위가 정수리까지 차 오르던 2003년 8월 중순이었다. 팔자 좋은 동남아 유람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일이었다.

갈수록 기세를 더해가던 영어 공용화론에 맞서 2002년 동료 학자들과 함께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일종의 가상 소설을 집필했던 그가 내친 김에 정부에서 내놓은 ‘2003년 국어 정책 연구비 지원’ 사업에 응한 것이다. 영어 공용화의 길을 선택한 47개국 중 필리핀이 걷고 있는 길은 우리의 반면교사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 “필리핀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필리핀 내에서는 특이한 족속으로 취급받는다더군요.” 마닐라대 필리핀어학과에 들러 필리핀어의 위상에 대해 취재해본 결과는 자국어의 위상을 단적으로 대변해주고 있었다.

초등학교부터는 말과 문자가 모두 영어로만 이뤄진다니, 제 자식을 미국 사람 못 만들어 안달 난 요즘 한국 부모들이 차선책으로 아이들에게 필리핀 유학이라도 시켜보려는 게 과연 우격다짐은 아닐 것이다.이 때문에 그는 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국가도 선택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왜 자꾸 불거질까? “현재 한국은 경쟁 지상주의의 사회이기 때문이죠.” 아직 미성숙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영어는 외국어 중 하나이고 ‘필요에 의해서’ 배운다는 것, 아이들에게 이 점을 깊이 인식시켜 줘야 합니다.

영어는 결코 제2의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최 교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그는 한국어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발전의 기회라고 본다. 영어와의 관련 양상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 언어 등 매체에 따라 격변하고 있는 국어 현상을 총괄해 사전으로 펴낼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그 같은 확신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최초의 국어사전인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1938년)을 비롯, 남북한의 국어사전을 총괄하는 국어사전사(史) 집필은 그에게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