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터 노래로 이목을 모았던 그는 국립국악고가 ‘가곡’ 부문 모집 조항에 국비장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뜸 응모했다. 딸의 당돌한 결심을 들은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강점석)을 새긴 목도장을 건네 주었다. 부모의 전권을 위임한다는 깊은 뜻이었다. 대학생이던 1988년, 유네스코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덕에 일본에서 시조창 공연을 펼쳤던 것을 시작으로 출발한 해외 공연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실질적 은인이다.대학 시절, 그를 구박하던 어떤 교수를 얼마 전 학교에서 만났다. 앞서 제자의 공연을 본 적 있다며 손 잡고 눈물 글썽였다.
“자네가 이렇게 잘 할 줄 몰랐소.” 그는 답했다. “자극 받아서 했어요.” 스승의 속뜻을 독특한 방식으로 보상하고 있는 셈아다. 그에 따르면 정악은 지루하지만 그 지점를 벗어나면 참 세계가 기다린다고. 그는 이 참 세계에 대해“빙의(憑依)나 육체 이탈 같은 느낌”이라 했다. 강권순은 가사나 시조 등 정악 쪽의 공부는 물론, 창작 음악과 대중적 음악 작업을 계속 병행해 갈 생각이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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