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일각에선 “대권가도에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무언의 ‘회군압박’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지난 13~14일 실시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는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한나라당 대선주자 지지도가 이명박 45.9%, 박근혜 28.1%, 손학규 9.3%로 나온 것이다. 이 시장은 지난해 12월 한길리서치 연론조사에서 39.4%보다 6.5% 상승한 반면 박 대표는 32.3%에서 4.2% 하락했다. 이명박-박근혜의 불과 한달 전 격차가 7.1%였던 것이 17.8%차로 크게 벌어진 것이다.
장외투쟁 비난 여론 높아
그렇다면 지난 한달간 한나라당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박 대표가 진두지휘한 사학법 투쟁정국 기간.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선 지금이 곧 박 대표의 위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최근 실시한 사학법 관련 여론조사를 들추어 봐도 결론은 같다. 최근 리서치앤리서치 조사는 개정 사학법 반대 의견(42.5%)이 찬성(40.3%)을 근소한 차로 누르긴 했으나, 장외투쟁에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3.7%로 ‘공감한다’(36.9%) 보다 많았다. 특히 이 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성공진단을 받은 여름부터 이명박-박근혜 지지율이 한자릿수를 다투며 상승했던 것에 비하면, 박 대표의 ‘장외투쟁’은 오히려 이 시장을 지지도 급상승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뒤를 잇는다. 박근혜 추락의 징조는 당내 곳곳에서도 감지된다. 한나라당이 지난 20일 경남 창원에서 올 들어 두 번째 사학법 장외투쟁집회를 가졌지만, 투쟁 동력이 떨어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해당 지역 원내인사들만이 참여했을 뿐이다.
장외투쟁에 대한 의원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장외투쟁에 대한 여론도 녹록지 않은 것이다. 박 대표 추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박 대표 자신에게 있다는 당내 분석도 있다. 지지부진한 한달간의 투쟁은 이렇다할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장외투쟁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는 것. 신년 들어 사학법 의정보고대회와 당원교육은 전국단위로 진행되고 있으며, 다음달 17일까지 춘천 울산 천안 청주 전주 광주 서울 등 장외집회 일정도 잡혀있다. 이와 동시에 사학법에 대한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무언의 ‘회군압력’을 보내고 있는 의원들에 대한 박 대표의 서운함도 짙다고 알려진다. 박 대표의 사학법 장외투쟁을 두고 ‘보수층’ 결집을 겨냥, 대권주자로서 강한 이미지를 남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등장한 터다.
아직은 ‘찰떡’ 이재오 변심할까
아직은 박 대표와 각을 세우지 않고 있으나 지난 12일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재오 대표의 숨은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박 대표의 추락에 적신호라는 당내 일각의 관측도 있다. 이재오 대표의 변심 정도도 변수로 지적되고 있다. 겉으로는 “(박 대표와) 찰떡궁합”이라며 당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으나, 여당 원내대표 경선이 마무리되는 시점 이 대표가 사학법 재개정안으로 여당 대표와 협상에 들어갈 방침이어서 변심 정도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내 일각에선 이 대표 선출의 배경을 사학법에서 찾는 이들도 상당수다. 반박세력을 대표하는 이 대표가 박 대표의 사학법 투쟁을 저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는 것. 게다가 황우석 박사 사건과 윤상림게이트 국정조사 요구는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분위기다. 이 역시 박 대표의 발목을 잡는 부분적인 요소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일각에선 “황우석과 윤상림은 노무현 정권 레임덕을 앞당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기대가 크다.
여당 대권주자 ‘공공의 적’
한편,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의 대권주자들이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박 대표에겐 부담이다. 박 대표가 어느새 여당의 공공의 적으로 돼 있었던 것이다. 김근태 고문은 지난 4일 김해 당원간담회에서 “박 대표가 틈만 나면 색깔론을 제기해 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잠식된다”고 포문을 열었다. 김 고문은 이어 “5월 지방선거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김근태의 한판승부”라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16일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정동영 고문도 박 대표 비난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판이다.
지난 18일 한 라디오에 출연 “박 대표가 아버지 시대의 독재정치 망령에 갇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전당대회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상황, 차기 대권주자들의 파상적인 공세에 지난 19일 박 대표도 팔을 걷어 붙이고 “당의장이 되면 간첩 출신을 모두 민주화인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쏘아 붙였으나, ‘5공 시절의 검은 그림자’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게다가 혹시, 박 대표가 ‘회군’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몰라도 사학법과 관련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여당의 기세를 감안, 국회 등원할 ‘명분’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 임기 마친 주요 당직자 누가 있나?‘용병술’ 문제 있다
당론임에도 하나 둘 사학법 장외투쟁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원내인사들의 변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근인을 찾는 한나라당 인사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와 맞물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명박-박근혜’의 양강구도로 발전해온 대권주자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의 지지도 급상승으로 진행되면서 계산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당내 인사들의 상당수는 한달간 지속된 장외투쟁으로 인한 피로누적으로 원인을 돌리고 있으나, 일각에선 박근혜 대표의 ‘용병술’에서 찾는 시각도 있어 주목된다.
한나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이번 장외투쟁에 참여하고 있으나, 사실 얼굴이 알려진 몇몇 의원들을 제외하곤 공은 모두 박 대표의 몫으로 돌아갈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장기전을 펼친 적이 없어 박 대표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인사들의 행보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박 대표에 대한 호불호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 한 중진의원은 당직 개편이 있을 때마다 의원들과 박 대표의 갈등이 표출됐다는 것에 주목했다. 능력과 성실성을 갖춘 검증된 인사를 당직에 기용하지만, 당직에서 물러날 때는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인사들보다 박 대표와의 개인적인 의견 충돌을 거친 인사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체제에서 주요 당직을 지낸 인사들 중 박 대표와 등을 지고 있는 인사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한나라당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두 명의 중진급 원내대표가 수개월을 사이에 두고 사퇴하는 진기록을 남긴 것이 그 예다. 바로 김덕룡·강재섭 전원내대표. 지난해 초 4대 법안처리 과정에서 김 전대표가, 그리고 문제의 사개법 개정안과 관련해 12월30일 강 전대표가 물러났다. 박 대표는 공적인 자리를 빌려 김 전대표의 사퇴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한편, 박 대표와 마찰 끝에 배지를 던진 인사도 있다. 행정도시특별법 통과 후 의원직을 걸고 반대했던 당시 박세일 정책위의장이 그 주인공. 당시 박 대표는 역시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와 만나서는 당론결정의 불가피성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박 의원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여의도연구소를 거론하면 다수의 의원 이름이 떠오른다. 가장 최근엔 4·30 재·보궐선거에 임한 박 대표의 선전을 ‘동정론’으로 분석한 대외비 보고서가 유출된 이후, 박 대표는 당시 윤건영 소장을 끌어내렸다. 뿐만 아니라 훨씬 이전 연구소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박형준 의원은 부소장직을 그만두게 됐다. 당시 연구소 한 관계자는 “‘박근혜 사당화’는 여의도연구소를 두고 나온 말임에도, 박 대표는 ‘교체 대상자’에게 번번이 책임을 물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외에도 박근혜 체제 주요 당직을 거친 인사들은 심심치 않게 박 대표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석에선 비난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칠 때야 어찌됐든 당직을 맡고 싶고, 당 대표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알면서도 한 번 눈에 나면 다시는 거들떠도 안 본다”는 불만이 새어 나온다. 실제로 박 대표와 갈등을 빚다 당직에서 물러난 인사들 가운데, 재기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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