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단 “후련하다”는 말로 현재의 심경을 대신했다.K-1 진출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면서 “개인만을 생각해 씨름의 장래를 저버렸다”는 씨름인들의 비난에 상당한 맘고생을 한 듯 보였다. “일단은 후련하다. 그동안 이것(K-1 진출)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걱정도 많았고…. 하지만 일단 결정되고, 또 (공식적으로)터트리고 나니까 맘이 편하다. 짐을 하나 덜어낸 기분이기도 하고. 어쨌든 맘이 편하다.” 그는 당시 자신의 결정을 두고 만류를 거듭했던 동료들과 선배들도 이젠 격려해 줄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 그래서 많이 미안하다. 특히 씨름판이 이렇게 된 상황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 여전히 선배들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서 마음이 안 좋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내 결정에 대해 격려해줬다. 처음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나를 말리던 형(선배)들도 이젠 ‘힘내서 잘 해보라’고 말한다.”그러나 최홍만은 여전히 씨름계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남아있음을 드러냈다. “씨름판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루에 네댓끼씩 먹던 사람들(선수들)이 밥까지 굶어가며 농성을 벌이는 등 팀이 정상화되길 바랐다. 그러나 결과를 봐라.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았다. 비참하고 서글펐다. 하지만 내가 K-1 간다니까 이제와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붙잡아 두려 했다. 진작에 신경 써 줬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정말 배신감 느낀다. 이제 씨름판은 발전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그렇다면 그는 오로지 씨름계에 대한 회의 때문에 K-1 진출을 결정한 것일까?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이 문제에 대해 최홍만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는가”라며 운을 떼는가 싶더니 “집안 문제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잠깐동안 망설이다
“그냥 부모님 좀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최홍만의 부친 최한명(57)씨는 고향인 제주도 한림읍에서 큰 고깃집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지난 6월, 9년이나 운영하던 식당을 경영악화로 인해 처분하고 현재 문을 닫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많은 관계자들은 그의 부친이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전혀 경제적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었다. 10년 가까이 해오던 가게를 정리하고 지금은 집에서 쉬고 계신다. 한 5~6개월 정도 됐다. 가게 장사해서 나를 지금까지 키워오셨다. 나이도 많으시고 지금까지 고생만 많이 하셨는데 이젠 편하게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자식된 도리로 효도도 하고 싶고 호강도 시켜드리고 싶었다. 사실 이번일(K-1 진출) 결정하는 데 그 부분이 상당히 작용했다.”소속팀이 해체된지 10일 만에 일사천리로 K-1진출을 확정지은 것도 그 때문이다.
팀이 해체되고 졸지에 둥지를 잃은 아들을 바라보며 걱정을 하던 부모님을 더 이상 맘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이종격투기라는, 씨름과는 전혀 스타일이 다른 운동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잠깐. 측근을 통해 알게 된 에이전트 박유현씨를 만나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프로야구(현재 두산 박명환 선수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에이전트로 유명한 박씨는 현재 ‘스피릿 MC’ 초대 챔피언 이면주 선수를 관리하고 있던 터라 최홍만의 일본 진출에는 누구보다 많은 조언을 했던 인물. 사실 최홍만은 오래 전부터 에이전트(박유현씨)와 만남을 가지면서 K-1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씨름과는 확연히 다른 수많은 팬들의 환호,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며 링 위에서 펼쳐지는 역동적 경기. 팬들의 무관심은 물론 대기업조차 외면하는 씨름과는 딴판인 K-1의 세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게다가 지난 7월 대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 K-1 주관사 FEG 측이 자신에게 관심있다는 내용을 듣게 되면서 솔깃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씨름을 포기한다거나, 다른 종목으로 전향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 모래판에서 씨름꾼으로 살아왔던 자신에게 살길은 오직 그것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데, 벼랑에 선 사람이 아무래도 끌리게 돼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사람 많은 데서 경기를 해보고도 싶었던데다, 부모님이 맘고생`몸고생 하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그는 K-1 진출과 관련,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밝히길 꺼려했다.
자신의 K-1 진출로 인해 씨름판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계약금액을 얘기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다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말만 덧붙였다. 최홍만은 당분간 제주도 집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낸 뒤 본격적으로 몸만들기에 들어갈 계획이다. 내년 3월 19일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K-1 대회에 출전하게 될 가능성이 커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K-1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 같은데, 개의치 않고 보란 듯이 잘 해낼 생각이다.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직 젊지 않은가. 물론 K-1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씨름판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냥 팬들이 지켜봐 주고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앞으론 링 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그것만 생각해 달라.”<인터뷰>
최홍만 아버지 최한명씨 “격한 운동이라 처음엔 반대했었다”
“본인도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것 … 격려해줄터”최홍만의 K-1 진출이 확정되자 아버지 최한명(57)씨는 “어렵게 결정한 것이니 이젠 잘 됐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각계의 비난에 대해선 “운동선수의 아버지로서 아들의 미래가 안 보이는 데 어떻게 하느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최홍만의 K-1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정열을 쏟았던 씨름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해 아쉽고 씁쓸하다. 특히 격한 운동이다 보니 걱정이 돼 반대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왕 본인이 선택한 것 믿고 격려해주고 싶다.
- 씨름계는 물론 각계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다. ▲나 역시 씨름 선수 아버지로서 민속스포츠가 붕괴위기에 놓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특별한 카드도 없이 마냥 기다릴 수 는 없는 것 아닌가. 솔직한 얘기로 실업자한테 무작정 (K-1)가지 말라고만 하면 어떡하나. 부디 (최)홍만이가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의혹들이 많다.▲지난 5월에 소속팀 해체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불안해했었다. 그래도 ‘설마 대기업에서 민속씨름이 그냥 무너지게 두겠느냐’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와중에 일본 K-1측이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이것저것 알아본 모양인데, 그때는 전혀 갈 생각이 없었던 아이다. 그런데 팀이 이렇게 해체되고 나니까 본인 스스로도 안정을 찾기 위해 좀더 빨리 결정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 ‘돈 욕심’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굳이 돈 때문이라기보다… 하지만 한 번 생각 해 보라. 운동도 돈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팀이 해체되지 않았더라면 3~4년은 거뜬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아이인데 졸지에 백수가 됐으니 제 딴에 걱정이 없었겠는가.
- 부친의 사업실패가 K-1 진출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 ▲(한참을 생각하다가)제 딴엔 그게 맘에 걸렸던 모양인지 신경을 쓰는 눈치더라. 벌써 6개월 정도 쉬고 있는데… 자식에게 짐 되지 않으려면 뭐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일본 K-1측의 스타마케팅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일본에서 어떤 의도로 홍만이를 데려가는지 잘 알기 때문에 처음엔 나도 반대했었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괜찮지 않겠는가. 부디 열심히 해서 아시아 챔피언이 됐으면 좋겠다.
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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