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로열 패밀리’의 죽음을 밝혀라
‘대동강 로열 패밀리’의 죽음을 밝혀라
  • 윤지환 
  • 입력 2004-12-31 09:00
  • 승인 2004.12.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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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조관행)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고 이한영씨 피살 사건에 관한 재판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부는 이씨 피살 사건과 관련, 이씨의 부인 김모(35)씨가 “국가가 신변보호를 소홀히 해 사고가 일어났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억48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지난 97년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 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1996년 2월 모 언론을 통해 성혜림, 성혜랑 망명사건과 함께 이한영씨에 관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됐고, 언론을 통해 인터뷰 기사가 보도되는 등 그의 존재는 만천하에 공개됐다. 13년 동안 숨겨졌던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이 일로 발칵 뒤집힌 안기부(현국가정보원)는 이씨와 부인 김씨 등 그 가족을 신변보호 차원에서 안전가옥에 수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씨에 대한 폭로는 그치지 않았다.

‘대동강 로열 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이라는 책을 출간하는 등 그 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졌던 김정일 위원장과 그 일가에 대한 각종 사실들을 적나라하게 공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또 각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북한 지도층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이씨에 관한 모든 것이 최초로 언론에 의해 드러난 지 정확하게 1년하고 이틀이 지난 1997년 2월 15일, 그는 의문의 피살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몰고 왔고, 그가 권총에 의해 머리와 가슴을 피격 당해 숨진 것으로 드러나 이로 인한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공교롭게도 이씨가 피격 당한 것은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망명한 직후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황 비서의 망명을 납치라고 규정짓고 이를 천배만배 복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의 피살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과 추측이 나돌았다. 안기부는 이씨 피살 사건에 대해 북한 공작원에 의한 테러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하지만 사건이 종결되었음에도 곳곳에서 이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 탄피 이외에 공작원이 살해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8월 26일 국정원은 과거사 자체 진상조사와 관련, 인혁당 사건 등 13개 의혹사건을 자체 조사대상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씨 피살 사건을 이에 포함시켰다. 이씨를 둘러싼 의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씨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는가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씨는 누구에 의해 살해당했나 하는 것이다. 이씨 사망 이후 일부에서는 이씨가 남한측에 의해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소설가 황석영(59)씨는 “이씨를 남한으로 데려오기 위해 모종의 회유공작이 있었다”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펴기도 했다.황씨에 따르면 이씨는 황씨에게 자신은 남한에 의해 강제로 납치됐으며 기자들을 불러주면 이를 모두 폭로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씨가 방송사에 몸담고 있을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왔다는 한 사업가 김모(43)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현재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고 있다는 김씨는 “한영이는 사연이 많은 사람이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한영이는 생전에 친한 사람 몇몇에게만 자신에 대한 것을 털어놓았는데, 자세한 것은 말 할 수 없지만 그가 100% 자신의 의지로 한국에 온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자신의 실패에 대한 일종의 변명 아니냐”며 비난하기도 됐다. 사실 이씨는 국내 대학에 진학한 이후 방탕한 생활에 젖어들어 안기부에서 받은 거액의 정착 자금을 2년 만에 탕진하고 피폐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급기야 그 해 가을 ‘내가 그리던 자유는 이런 게 아니었다’는 유서를 쓴 뒤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씨의 자서전 격인 ‘대동강 로열 패밀리’(이하 대동강)에는 이씨가 한국으로 오게 된 배경이 직간접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갈 계산에서였다. 즉, 귀순을 위해 한국으로 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씨가 쓴 ‘대동강’에는 “한국 언론은 내가 제네바대표부에서 한국망명을 얘기했다고 보도했다. 그것은 틀린 이야기다. 그때도 미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처음 남조선 대사관에 전화할 때 미국 여행방법을 물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미국에 가봐서 좋으면 안 와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대표부 안에서는 얘기가 좀 진전돼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부분이 나온다.그는 ‘대동강’에서 또 자신의 귀순에 대해 “나를 속여 남조선으로 데려온 황 참사를 무척 원망했다”고 적고 있다.

책 내용에 따르면 한국 측은 이씨를 미국으로 보내 주겠다고 속여 납치한 것이 되고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이씨 피살 사건 재수사에서 이 부분이 공론화될 경우 북한이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대목이다.이와 함께 이씨를 피살한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부분은 이씨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씨가 피살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안기부는 이씨를 피살한 범인이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안기부의 수사결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에 대해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지적마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시 안기부가 이 사건을 북한 공작원에 의한 공작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사건이 재조사될 경우 그 결과에 따라 책임론 제기와 함께 남북관계에도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고 있다.

만일 일부의 지적대로 이 결과가 오류이거나 거짓일 경우 북한 고위급 자제를 납치해 온 것도 모자라 북한이 그를 죽였다고 덮어씌운 꼴이 돼 현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 된다. 안기부는 이씨 피격사건 이후 97년 10월 27일 경 남파간첩 최정남을 붙잡았고 최씨에 의해 이씨를 살해한 것은 김정남이 보낸 북한 특수 공작조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씨 사건을 합동으로 수사했던 분당경찰서는 이씨가 특수 공작조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발표된 자료와 각종 기록물에 따르면 이씨를 살해한 살해범과 살해 경위에 대해 안기부와 경찰간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의혹을 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초대형 거물급 인사인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귀순하자 여러 가지 정치적 계산에 의해 이씨를 죽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씨의 죽음에 대해 이런 의혹이 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실 이씨는 언론과 방송에 자신을 공개하고 김정일과 북한 지도층의 실상을 공개했는데, 이와 함께 자기가 귀순한 진짜 이유를 간접적으로 알려왔다. 그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은 자신과 김정일을 공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국에 온 진짜 이유를 공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거듭된 이씨의 이런 행동으로 이씨를 납치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북한이 정식으로 문제삼아 한국은 국제적 비난 여론에 몰려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뿐만 아니라 북한이 황씨도 납치됐다고 주장할 경우 황씨를 고스란히 내 줄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 과거 이씨와 가까이 지냈던 지인들은 이씨의 일에 대해 대부분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들을 취재한 적 있다는 타 언론사의 한 기자는 “이씨의 지인들은 이씨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대답을 피한다”며 “이씨의 귀순이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해주는 이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난 이들은 한결 같이 이씨의 귀순과 죽음에 대해 대답하기를 꺼려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씨의 미망인 김씨는 지난 12월 17일 재판이 끝난 후 “남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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