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속에서 꿈을 실현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지만 독학으로 가야금을 틈틈이 익힌 것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국악기 개량과 연주 보급에 생을 걸어 온 그가 마침내 2002년 단국대 ‘남북한 개량 국악기’라는 제하의 세미나에 강사로 초빙됐다. 그리고 전자가야금, 23현 가야금, 10현 아쟁 등 그가 혼자서 개발해 온 개량 국악기들이 거기서 연주되고 뜨거운 토론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연주자는 물론 그였다.“나에 대한 최초의 적극적 평가였다”고 그는 담담히 기억한다.’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모른 체 하더니…’란 말이 금방이라도 들릴 듯했다. 그의 아파트에는 무려 7대의 가야금, 아쟁 1대, 대형 앰프 등 동서양을 망라한 음악 도구들이 있는데, 이는 그의 열정을 잘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전수 계보를 특히 중시하는 예술계에서 계파 없는 무명의 설움은 상상을 넘는다. 그는 “국악계에서 내가 소외와 배척의 대상이었던 게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악기와 씨름하느라 크게 외로움은 없었다”고 했다. 외롭지 않다고 믿으며 살아 온 세월은 멀잖아 현실로 드러난다. 내년 1월 1일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의 공연을 보자. 중요 무형 문화재 제 29호 서도 민요 전수자 박중길, 가야금 산조 김윤덕류의 이수자 이유진(이화여대 대학원) 등이 출연한다. 인간 문화재 42호 악기장 고흥근씨는 24현 가야금을 기증하기도 한다. 그 날 공연을 새로운 출발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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