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김교수 재임용 탈락 배경
96년 김교수 재임용 탈락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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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02-18 09:00
  • 승인 2005.02.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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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6년 10월, 김민수 교수는 ‘대형사고’를 쳤다. 서울대 개교 50주년 기념 학술대회 중 미술대학의 역사를 다룬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장발 초대 학장과 동양화과 장우성, 노수현 교수 등이 학계에서 친일 의혹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다른 학자가 쓴 논문을 인용 발표한 것이다. 이에 선배 교수들은 김 교수를 불러 해당 부분을 삭제하라고 요구했지만 김 교수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어떻게 임의로 삭제하느냐” 며 이를 거부, 미대 교수들은 물론 학교측과도 갈등을 빚게 됐다.2년 뒤인 98년, 김 교수는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당시 재임용 대상자는 42명이었는데, 탈락자는 김 교수가 유일했다.

미술대학측은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적이 부실했다”고 탈락 이유를 밝혔으나, 당시 김 교수가 제출한 저서와 논문은 재임용 기준인 2편의 4배인 8편이었다.또, 재임용 심사 과정에서 심사보고서 대필 의혹도 불거졌다.그러나 학교측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심사가 이뤄졌다”고 반박했고, 이에 김 교수는 길고 긴 법정 투쟁에 돌입하게 됐다.법정으로 간 김 교수는 2000년 1월, 1심에서 “교수 재임용도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 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는 교원 재임용 관련 법률의 개정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서울대측이 제기한 2심에서는 “행정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 며 패소했으나, 작년 4월 대법원은 이를 뒤엎고 파기환송했고, 지난 1월 28일 고등법원은 다시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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