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 김근태계 승리
이날의 최대 관심사는 당의장 선출 방식과 권한 강화에 있었다. 정 장관측은 전당대회의 방식을 △대의원과 중앙위원을 물갈이하는 정기전당대회로 할 것 △당의장-최고위원(현 상임중앙위원) 경선을 분리해 실시할 것 △표결방식을 1인1표제로 할 것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완벽한 물갈이를 통한 강력한 당의장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김 장관측은 현조직과 집단지도체제 등을 유지하는 기존의 것과 ‘임시전당대회’를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신경전, 결국 중앙위원들은 김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전당대회는 1만명의 대의원과 83명의 중앙위원을 그대로 유지, 지도부만 새로 선출하는 임시전당대회 형식으로 치르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표결 방식도 ‘1인2표제’, 최고위원 중에 최대 득표자가 당의장에 선출되는 것이다. 정 장관의 당의장 선출을 염두에 둔 정 장관측의 주장이 전혀 세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날의 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선, 반정동영 결집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여권 핵심인사는 “김근태계와 참여정치실천연구회(참정연) 및 의정연구센터(의정연) 등의 친노그룹 등의 견제가 이뤄진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평했다. 이날 참정연 소속의 유시민 의원의 발언이 그의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두고 김근태계와 친노직계의 ‘연대’로 비치기도 했다. 유 의원은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 매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냐”면서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작동했다”고 말했다. 특히 당헌당규 개정작업에 전념했던 정동영계를 겨냥 “열린우리당은 계파가 완전히 지배하는 정당이 아니다”면서 “바꾸자는 쪽(정동영계)에서 다수를 설득시킬만한 압도적인 논리를 내놓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친노사단의 독자노선
사실, 워크숍 이전 세 결속에 들어간 김 장관측에선 친노직계 인사들과의 연대를 모색했던 것도 사실이다. 김 장관의 핵심측근으로 통하는 모 의원은 “대권주자로서 김 장관의 약점은 외연확대의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면서 “결전(전당대회)이 치러지기 전 참정연과 의정연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고 귀띔한 바 있다. 한편, 반정동영계의 결집이라는 해석에서 더 나아가 ‘친노직계의 선택’이라는 진일보한 해석도 있다. 이는 당내 일각에서 ‘노심(盧心)’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중앙위원회 결과만으로 김근태계와 친노직계의 반정동영 연합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여권 한 핵심인사는 지난 10·26 전당대회 직후의 상황을 떠올렸다. 김근태계의 청와대를 향한 맹공이 이어졌고, 친노직계 인사들은 ‘작은 탄핵’이라고 각을 세웠다. 그는 이어 “상대적으로 개혁당 출신과 김근태계 인사들이 대거 진출한 중앙위원들의 인적 구성 때문에 정 장관측의 요구가 먹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후보들간 합종연횡의 변수까지 염두에 둔다면 실제로 친노직계의 선택이 전당대회 승부를 가를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친노직계로 분류되는 김혁규 의원과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보의 전격 출마는 이러한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 이들이 영남권을 대표한다는 성격상 지역구도에 무게를 둔 정-김, 김-김 시나리오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혁규 의원이 우리당에 입당한 이후 정동영-김혁규 카드는 잊을만하면 등장했던 카드다. 정 장관이 김 의원에게 ‘연대’를 제안했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정작 김 의원측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가 정·김 장관의 대선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연대에 여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장관 진영에선 김 특보와의 연대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가 많다. 영남권 공략의 한계는 김 장관에게도 약점으로 지적되는 바다. 특히 김 특보는 유시민 의원과 함께 참정연 소속이라는 점에서 고정표까지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편, 우리당 최대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정동영계냐, 김근태계냐를 넘어 당권에 도전한 ‘40대 기수’들까지 당권 방정식에 대입한다면,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애초, 무혈입성 시도했다”
어쨌든, 오는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 장관측과 김 장관측 모두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나 정 장관측이 애초 내세운 당의장 독주체제가 정·김의 진검승부 후 한쪽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골자였기 때문에 물밑작업에 분주한 곳은 김 장관측이다. 김 장관측에선 “(전당대회가)그렇게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측의 한 측근은 “정·김 장관의 복귀에 앞서 모두 전당대회에 불출마하는 안이 대세를 이뤘다. 당의장 몫으로 최고위원직에 참여하는 무혈입성을 시도했다”고 전하며 혈전이 불가피함을 드러냈다. 반면, 대폭적인 대의원 및 중앙위원 물갈이와 당의장 독주체제를 주장한 정 장관측은 느긋한 편이다. 비록 관철시키는 데 실패했지만, 지난해 문희상 체제가 선출될 당시의 틀로 이번 전당대회가 치러진다는 점에서 승리를 낙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산엔 중앙위원회가 김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고 하나, 실전에 들어가면 정 장관측이 앞설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도 한 몫하고 있다.
# 차기 원내대표 놓고 물밑경쟁 치열
오는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가 하면 원내대표 경선은 전당대회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1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원내대표 후임이 누가 될 것인가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유다. 우리당 내부를 들여다보면 차기 원내대표를 둘러싼 계파간 신경전은 더욱 복잡한 양상이다.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은 많지만, 전당대회 구도가 명확지 않아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도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만 가고 있다. 김한길·배기선·유인태·신기남·원혜영 의원 등이 차기 원내대표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들이다.
이들 중 몇몇 인사는 계파간 물밑 견제부터 시작해, 상대방 예상 후보를 저울질 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정동영 김근태 장관들의 전당대회 출마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이상, ‘당의장-원내대표’의 계파분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가장 열심인 인사는 김한길 의원이다. 정동영 장관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 의원이 원내대표에 출마한다면 본선에 들어가기도 전에 양 계파간 경쟁이 과열될 것이라는 정동영계 내부의 우려에도 그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의원들과의 개별 접촉은 물론 출입기자들에게도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김근태계의 고민도 깊다. 전반적으로 배기선 의원을 지지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으나, 막상 중립지대인 배 의원은 김근태계와의 연대에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편, 우리당 초선의원들은 지난해 12월29일 새 원내대표를 경선없이 합의를 통해 추대할 것을 당 지도부에 건의했다. 최재성·조정식·한병도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갖고 “현 시기에 우리당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과 통합”이라며 “당 지도부와 중진들은 ‘합의에 의한 선출’에 총의를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의 이같은 입장에 김선미·이목희·김현미·우상호·민병두 의원 등 49명이 동참, 이들의 주장이 관철될 수 있을 것인지도 주목된다. 당내 일각에선 초선의원들의 ‘추대’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철저한 중립지대인 유인태 의원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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