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미지가 대권운명 좌우한다”
“정치 이미지가 대권운명 좌우한다”
  • 이수향 
  • 입력 2005-12-13 09:00
  • 승인 2005.12.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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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유력차기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여야 정치인 8명에 대한 이미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인물이 있어 화제다. 최근 ‘대한민국 사람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을 발간한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44) 교수가 그 주인공. ‘이미지 정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인에게 ‘이미지’란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을 능가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의 생명은 어떤 이미지를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에서 승부수를 띄울 유력 잠룡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타래처럼 얽힌 국민들의 심리를 꿰뚫는 것이다.

7일 오후 연세대에서 황교수를 만나 차기주자 6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효과 및 대선주자로서의 강점과 약점 등을 들어봤다.“국민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정치 지도자가 집권하기 위한 일차적인 조건은 대중이 원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지난 2002년부터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이며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지를 주기적으로 조사해 온 황 교수의 진단이다. 국민의 뇌리에 박혀있는 이미지는 대권주자들에게 있어 ‘정치생명’을 판가름하는 주요 척도가 된다는 게 황 교수의 논리다.

고건 노 대통령 실정 반사이익

고건 전총리를 강력한 대선주자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일까. 황 교수의 대답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고건현상’에 대해 황 교수는 “고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현재 노대통령의 행동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고건 전 총리가 차기 대통령감으로 높은 지지도를 얻는 이유는 그가 지닌 ‘안정적 관리자형’이미지 때문이다. 즉 현재 노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마치 황희정승이나 전형적인 일본총리를 연상케하는 고건의 이미지가 어필된다는 말이다.

반면 그는 장쩌민이나 김종필 전총재의 이미지처럼 노련하고 출세욕에 사로잡힌 구세대 정치인의 이미지도 안고 있다. 황교수는 ‘청렴’을 자산으로 갖고있던 이회창 전총재가 어색한 대쪽으로 변해버린 것을 이미 경험한 국민들이 고건 전총리에게서 이회창의 전철을 발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건을 욕망에 사로잡힌 구세대 정치인이라는 도식에 갇히기 쉬운 인물로 보는 황교수는 그가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순수와 열정이 느껴지는 신세대 정치인 이미지에 대한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명박 강한 이미지 역효과 우려

이명박 서울시장 역시 노 대통령 이미지에 대한 반사효과를 톡톡히 보고있는 인물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이 시장의 강한 이미지는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뭔가 할 것 같은 사람’으로 각인된 ‘불도저’이미지는 그가 ‘CEO형 대통령’을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국민들은 이 시장에게서 전국민을 개발역군으로 삼고 국토를 개발현장으로 만든 박정희와 정주영을 떠올린다. 이 시장은 힘겨운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을 고대하는 소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그러나 황 교수는 이 시장이 가진 이미지가 심각한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정복자 이미지 뒤에는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는 강력반 형사와 증기기관차 이미지가 공존하는 탓이다. 황 교수는 이 시장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타협과 화합, 인간미가 느껴지는 이미지가 교합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근혜 유신공주 이미지 탈피해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이미지는 온화한 리더이자 성공한 여성 CEO, 몰락한 황손의 이미지로 나타났다. 노 대통령과 상반되는 이미지의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정치지도자는 엘리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잡초같은 영업팀장’의 이미지인 노 대통령을 견딜 수 없는데, 노 대통령에 대한 혐오가 클수록 박 대표에 대한 호감은 커진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별 정치경험도 없는 박 대표가 정치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한나라당을 구원하는 잔다르크가 된 것은 이미지의 승리다. 박 대표의 인기는 박정희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육영수의 딸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잡초같은 영업팀장에 시달리는 양가집 아가씨에게 연민을 느끼고, 애처로운 심정으로 지지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대권을 거머쥘 풍운아 이미지 없이 ‘유신공주’ 이미지를 고수한다면 노 대통령의 이미지가 약해짐과 동시에 그 약발이 떨어지게 된다고 황 교수는 진단했다.

정동영 정치신인 이미지 한계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정치신인 이미지가 치명적인 한계다. 황 교수는 정장관이 정치에 입문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남의 원고를 열심히 읽는 아나운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황 교수는 “이상적인 대통령감으로 참신한 정치인을 수용하는 한국인의 정치심리를 볼 때 정 장관의 낮은 지지도는 의외”라며 “정 장관이 이미지의 덫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 장관은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이미지로 손해보는 셈이다. 노 대통령이 말 실수를 하면 그러려니 하지만, 정 장관의 경우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민들은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는게 황 교수의 진단이다. 따라서 정 장관이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신인티를 떨쳐내고 정치판에서 부딪히고 싸우는 전형적인 ‘정치9단’의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황 교수는 강조했다.

김근태 무색무취 이미지 약점

현정부 출범이후 박근혜 대표와 정동영 장관은 하는 일 없이 이미지로 대중을 현혹한다는 ‘억울’한 비판을 받으며 쓰린 가슴을 삭여야 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사람은 바로 김근태 복지부장관이다. 자질면에서 후한 평가를 받으면서도 대중적인 인지도는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연예인으로 따지면 차인표와 안성기를 연상시키는 김 장관이 지닌 문제점은 ‘뻥카’나 ‘한탕주의자’ 이미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막가파식 조폭이나 분양 사기꾼,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탤런트 주현의 이미지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이러한 기질은 의외로 잘 먹힌다. 김 장관의 대중성이 약한 이유는 한탕주의 속성이 없다는 것과 직결된다. 따라서 황 교수는 “김 장관은 너무 무겁다. ‘소신있는 잠룡’의 기존이미지에 참신한 별종 이미지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당선자 시절의 노 대통령, 가수 신해철과 도올 김용옥이 별종 이미지를 활용해 추종집단의 지지를 받고 성장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학규 별종이미지 보완 필요

손학규 경기지사도 김근태 장관처럼 자신의 역량에 비해 대중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민주화와 경기도의 경제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었던 손 지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손 지사의 이미지는 경영능력을 갖춘 관료형 정치인과 눈치꾸러기 대기업 과장으로 집약된다. 문제는 언론에 비치는 손 지사의 활동 이미지가 유력 대선후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손 지사를 유능한 팀장감은 돼도 사장감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국민들은 그에게 국가 중대사를 맡길 엄두를 내지 못한다. 황 교수는 “손 지사에게는 ‘무대뽀’ 한량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카리스마도 부족하다. 일반인들이 생각이 트인 스님이나 신부님에게서 느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며 “소탈한 지사형 이미지와 참신하고 산뜻한 사고와 행동을 하는 별종 정치인 이미지를 보완해야한다”고 조언했다.

# 인터뷰황상민 교수“노 대통령 인기하락은 이미지 변신 실패 때문”

황상민 교수의 연구는 ‘심리학자’다운 발상에서 시작됐다.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지난 97년부터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황 교수. 대중문화와 사이버공간, 광고에서 소비자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심리학적 방법을 통해 사람들의 통념과 행동을 탐색하기를 즐기는 ‘셜록홈즈’ 스타일의 별난 교수다.

- 국민들이 정치인을 선택하는 심리를 설명해달라.
▲ 불만족스러운 이미지의 지도자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지도자가 갖지 못한 이상적인 속성을 지닌 인물은 뜨는 정치인이 된다. 민주화 투쟁시기의 YS DJ가 그러했고, 고건 이명박 박근혜의 선전도 이런 연유다.

-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 새로운 사람을 바라는 시대정신과 별종정치인 노무현의 속성이 맞아떨어졌다.

- 국민에게 각인된 노 대통령의 이미지는.
▲ 개혁연출가와 독불장군, 또 인간적이지만 무능한 이웃집 아저씨의 이미지다. 관리자형이나 CEO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취임후에는 정치꾼과 도박사, 이벤트형 지도자로 전락한 것 같아 아쉽다. 대통령이 된 후 이미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탓이다.

- 노 대통령이 지지도를 잃고 있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 이미지 변신의 실패다. 새로운 영웅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대통령 영웅신화를 무너뜨린 그에게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애인에게 과감하게 맨얼굴을 드러낸 아가씨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것과 같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대선후보에게 거는 기대와 다르다. 노무현 후보의 별종 이미지를 지지했던 국민들은 대통령 노무현에게 안정적 관리자의 이미지도 원했다. 대선후보일 때 먹혔던 이미지는 대통령이 된 후 다른 이미지로 옮겼어야했다.

- 우리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만족을 못하는 이유는.
▲ 한국사회에 떠도는 영웅주의 망령 때문이다. 이상화된 영웅주의 리더십을 원하는 국민에게 현실의 지도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 이상적인 대통령이란.
▲가장 현실적인 대통령이다. 정치지도자에게 이상적인 행동특성을 기대할수록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을 찾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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