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사무총장, 고지가 저긴데…”
“UN 사무총장, 고지가 저긴데…”
  • 이금미 
  • 입력 2005-08-02 09:00
  • 승인 2005.08.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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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의 몰락.’최근 안기부(현 국정원) 불법 도청 테이프가 폭로되면서 주미대사에서 사의를 표명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앙일보 회장, 세계신문협회 회장, 삼성 이건희 회장의 처남인 홍 대사는 주미대사로 부임한지 5개월만에 중도하차했다. 그는 주미대사에 전격 발탁된 이후 북핵 6자회담의 물꼬를 트면서, 처남인 이건희 회장이 IOC(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이 되었듯이 자신은 차기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하겠다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150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홍석현 대사의 별명은 ‘도련님’이다. 그의 외모가 부잣집 도련님처럼 준수한 면도 있지만, 그의 집안은 오래전부터 서울에서는 내로라하는 명문가였다. 그의 부친 홍진기씨는 이승만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 역시 어릴 적부터 진자리는 걷지 않은 탄탄대로만 달려왔다. 올해 56세인 그는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학부시절 전공이다. 그가 법학이나 경제학을 택하지 않고 전자공학을 전공한 것에 대해 그는 “성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당시 산업의 역군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학을 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유학에서는 경제학(스탠퍼드대학)을 전공했다. 유학길에서 돌아온 후 그는 세계은행(IBRD) 경제개발연구소 경제조사역, 재무부장관 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등을 역임하며 권력 심장부의 생리에도 눈을 뜨게 된다.

‘재벌 2세’의 엘리트 코스

80년대 중반 삼성코닝 상무이사로 출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한 홍 대사는 94년 중앙일보 사장, 한국신문협회 부회장을 거쳐 99년부터 중앙일보 회장을 지냈고, 2002년 한국신문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주미대사에 발탁되기 전까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국제적인 언론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고 있었다.그의 이같은 화려한 이력은 미국 주요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곤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뿐만 아니라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과의 폭넓은 관계는 그에 대한 참여정부의 발탁에도 적잖은 원인제공을 했다는 후문이다.

올초 홍 대사에 대한 내정 소식이 알려졌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탈 코드인사’, 보수언론에 대한 혁명이라는 비난 여론에도 이를 뒤를 하고 무사히 주미대사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는 분석이다. 당시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미간 정부 차원의 관계는 아주 돈독해지고 있지만 미국사회의 여론과 특히 지식인층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미국 지식인 사회와 여론의 관계를 잘 이끌 분을 찾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홍 대사를 평했다. 노 대통령 역시 홍 대사의 이 같은 장점을 살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공조와 6자회담 진전, 당시 동요조짐을 보였던 한미동맹관계 강화 등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아니냐는 해석이 주류를 이뤘음은 물론이다.

삼성가(家)를 주름잡는 홍씨네들

그의 주미대사 발탁과 관련, 삼성그룹 개입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안기부 X파일과 관련 중앙일보, 삼성이 맞물려 회자되는 이유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대 재벌그룹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기 때문이다. 홍 대사의 부친인 고 홍진기씨는 이병철 회장과 함께 중앙일보의 초석을 다졌으며, 사위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 그룹 총수로 취임하는데 밑받침이 되었다. 홍 대사의 형제들도 쟁쟁하다. 누나인 홍라희씨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 회장의 바로밑 홍석조 광주고검장을 제외하곤 모두 삼성과 연을 맺고 있다. 셋째 동생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넷째 동생 홍석규 보광 대표이사 회장, 여동생 홍라영 삼성문화재단 상무 등이 삼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 같은 배경은 언론계는 물론 재계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존재로 홍 대사를 부각시켰다.

그의 주미대사 내정과 관련 청와대 주변의 소식통들은 ‘갑작스런 발탁도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두 달 전부터 홍 대사와의 의견 조율이 시작됐다는 것.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2월 당시 중앙일보 회장이었던 홍 대사와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이에 정계는 ‘보수신문에 대한 공격적인 언론관의 전환’이라고 평했으며 언론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수언론 중 참여정부에 대한 독설 수위가 낮은 중앙일보 파워 리더와의 파트너 모색이었으며, 더 나아가 삼성과의 그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미대사 임명 직후 알려진 얘기지만 홍 대사는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외교통상부, 통일부 장관 후보군에 이름이 올랐었다는 것이다.

사귀어볼 만한 사람, 홍석현

참여정부 인재풀에 포함됐던 것과 관련 홍 대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합리적인 성품과 폭넓은 식견을 지적하기도 한다. 주미대사 발탁을 재벌가의 후광으로 얻었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특히 중앙일보 운영 스타일은 그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그는 정치부장, 경제부장 등 편집국 부장단과 월 1회 간담회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정치, 외교, 경제 현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언론사 발행인으로서 사내 의사소통을 위한 통상적 간담회라지만 논의 주제에 대한 사전 예고는 없었다. 특히 판매·광고 등 다른 팀과의 간담회에서도 이러한 홍 대사의 적극성이 자주 목격되곤 해 언론사 사주 그 이상의 것까지 관심을 보인다는 뒷말이 무성했다는 전언이다. 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도 홍 대사의 성품이 드러난다.

노 대통령에게 홍 대사는 한국 사회의 ‘신흥귀족’에다 결핵을 이유로 병역까지 면제받은 곱게 봐줄 수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99년에는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구속된 경력도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 첫 회동에서 홍 대사를 ‘신사’로 극찬하며 ‘사귀어볼 만한 사람’이라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그를 주미대사로 발탁한 것은 홍 대사를 둘러싼 배경 외에도 합리적인 성품, 국제적 마인드가 주요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안기부 X파일건이 터지기 전까지 말이다.

昌지지, 부메랑 돼 돌아오다

‘6자회담’이 무르익을 무렵인 지난 달 보름께 홍 대사는 유엔 사무총장 출마 결심을 굳혔다. 홍 대사는 오는 9월 전후로 출마선언을 할 계획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세계 여론 주도층의 대한국 인식 제고를 바라는 노 대통령이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홍 대사의 ‘야망’을 지원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주미대사’ 빅딜과 관련 청와대는 홍 대사가 포괄적·역동적 한미동맹 관계를 보다 굳건하게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으며, 홍 대사는 주미대사 카드에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정부측의 지원을 담보로 했다는 게 정설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고 정주영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가 대통령’도 가능하다는 정치권 시나리오가 대권 잠룡들을 위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잣집 도련님’의 꿈은 여기서 멈추고 말았다. 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는 구설수가 부메랑이 돼 지금에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안기부 X파일건을 대다수의 언론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올 것이 왔다는 것”이다.

# 후임 주미대사 누구? - 반기문·장재룡·정의용 등 거론

청와대가 홍석현 주미대사의 사의를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때문에 후임 주미대사 인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탈 코드인사’ 등 파격 인사로 뒷말이 무성했던 홍 대사 후임 인선이라는 점에서 청와대는 목하 고심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승부사 노무현 대통령의 회심의 카드가 5개월 만에 물거품이 됐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카드를 내밀 것인지도 흥미롭다. 일단 홍 대사 경우처럼 깜짝 인사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보다 안정적인 인사를 통해 홍 대사 낙마 여진을 수습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임 주미대사에는 외시 3기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장재룡 본부대사 등과 함께 외시 5기 출신인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 등이 있다. 이들에겐 모두 공통점이 있다. 주미공사를 지내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통인 데다 외교 전문가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들 모두 후임 주미대사에 적격이라는 평이다. 반 장관은 44년생으로 외무부 제1차관보, 주오스트리아 대사, 외교통상부 차관을 역임했고,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 외교보좌관에 발탁됐다. 46년생인 장 대사는 주프랑스 대사를 거쳐 현재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를 맡고 있다. 정 의원은 46년생으로 외교부대변인, 주이스라엘대사, ILO의장 등을 거쳐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그밖에 권진호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물망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 장관을 비롯해 이들 중 후임 주미대사가 내정될 경우 현재의 외교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나간다는 청와대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육사 20기인 권 보좌관은 41년생으로 주프랑스대사관 국방무관, 국군정보사령관 중장,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및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45년생인 이 차관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차장, 주영국 대사, 주이스라엘 대사 등을 역임했다. 51년생인 윤 전 장관은 미국 존스홉킨스대 객원교수,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등을 거쳐 참여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현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청와대 주변에서는 6자회담 진행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 홍 대사의 사표가 수리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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