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선 박근혜 책임론 제기
과거사위 발표 이후 여권은 ‘박근혜 때리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박 대표의 해명 및 사과를 종용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박 대표의 진지한 반성과 책임있는 태도를 촉구하고 나섰으며, 당시 사건으로 7년을 복역했던 열린우리당 장영달 의원 역시 박 대표의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박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과거사위에 따르면 인혁당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민청학련은 반유신 투쟁에 나선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이었다. 이는 북한 정권의 지령을 받아 국가변란을 기도한 조직이라는 당시 정부의 발표와 상반되는 내용이다. 즉 정권의 위기를 맞아 권력기관이 총동원된 공안사건 조작이었다는 것이다.
유신시대 대표적 시국사건인 인혁당 사건의 진실이 31년만에 밝혀짐에 따라 박 대표는 ‘어쩔 수 없이’ 또 한번 불편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그 이유에는 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관련되었던 1,000여명 중 상당수의 인사들이 현재 정치권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과거사위의 발표직후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던 여권쪽 인사들로는 이철 전의원과 이해찬 총리, 정동영 장관, 장영달·강창일 의원, 이강철·정찬용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이 있으며 김근태 장관 역시 배후조정혐의로 수배를 받았다.
정치적 노림수 의혹도 제기돼
사실 박 전대통령의 과거 행적과 관련해 박 대표의 행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 대표에게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끝없이 따라다녔으며, ‘박정희 논란’은 그에게 무거운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까운 예로 지난 1월 한일협정문서와 문세광 사건 문서 공개는 박 전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박 대표에게 덫으로 작용했다. 이는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 실종이나 정수장학회 사건 발표때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재해석을 넘어 ‘박근혜 때리기’로 번지며 여야간 치열한 정치공방으로 비화됐다.이때마다 한나라당은 문서 공개 배경에 여권의 대권플랜 전략 등 갖가지 정치공작이 담겨져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특히 여권이 과거사 문제를 집중공략하고 있는 배경에는 박정희 재평가-박근혜 죽이기-정국주도권 장악-정권재창출 등으로 이어지는 여권의 대권 마스터플랜과 무관치 않은 것이란 의혹도 끊이질 않았다.또 과거사 문제 이슈화는 정권재창출 이라는 대업 완수를 위해 여권이 가동한 ‘박근혜 죽이기’ 플랜의 신호탄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실제로 그간 여권 주변에서는 ‘박근혜 죽이기’ 플랜과 관련된 구체적인 얘기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여권은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표명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시각은 별로 없었다. 이와관련 열련우리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친일청산법이나 정수장학회 문제는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며 “박 대표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폭발력 있는 X파일을 취합중이고 일부는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대권행보에 적잖은 걸림돌
따라서 박 대표와 한나라당은 여권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박 전대통령의 딸이 수장으로 있는 이상 유신시대와 관련된 사안은 분명 한나라당에나 박 대표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서는 이번 과거사위의 발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의문사위원회가 이미 인혁당 사건을 정권의 고문에 의해 만들어진 조작극으로 판단한 이상 이번 과거사위의 발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현재 법원에 재심이 청구된 상태라는 점,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인 이해찬 총리와 유인태 의원이 작년 12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들어 재탕 삼탕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나아가 과거사위 구성인물이 시민단체간부와 종교인, 역사학 교수, 재야변호사로 이뤄진 것부터가 진실을 가려내는데 적절한 인적구성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동시에 정계 일각에서는 이번 과거사위의 발표 배경에 ‘국민의 알권리’ 충족 외에 또 다른 정치적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여지껏 박 전대통령이 연관된 과거사 문제는 최종 타깃이 결국 박 대표였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과거사위의 발표는 강제 조사를 할 수 없었고, 충분한 관련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한계로 인해 자칫하면 조사의 객관성 및 정치적 의도를 둘러싼 새로운 의혹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박 대표는 8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하는 내용들은 한마디로 가치가 없고 모함”이라고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박 전대통령의 어두운 행적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조짐이다.설상가상으로 오충일 과거사위원장은 DJ납치 사건도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DJ가 오 위원장에게 암살 의혹이 제기됐던 71년 목포 교통사고에 대한 진실규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박 대표는 심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의 어두운 과거사 논란은 본격화되고 있는 여권의 과거청산 작업과 맞물려 향후 박 대표의 대권행보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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