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과 충돌한 ‘현대의 마지막 가신’
주군과 충돌한 ‘현대의 마지막 가신’
  • 정혜연 
  • 입력 2005-08-16 09:00
  • 승인 2005.08.1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家의 충신인가, 대북 사업을 앞세워 사리사욕을 채운 비리범인가. 지난 8월 8일 오전. 현대그룹의 본사인 계동사옥에는 적막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인 새벽 6시, 그동안 ‘대북사업의 사령탑’으로 불려온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개인 비리 소식이 언론에 전해졌기 때문.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지난 몇 주 동안 자체 감사를 벌였는데, 김 부회장이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하며 개인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얼마 규모의 비리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의 비리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폭발적이다. 비리혐의 포착 자체도 문제지만, 그 보다 더욱 관심을 끈 것은 그의 거취 문제였다. 과연 그가 현대를 떠날 것이냐에 관한 것.

1969년 현대건설 입사, 14년 만에 임원승진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배경은 ‘현대’라는 거대 그룹이었고, 그는 현대와 함께 무려 36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그는 현대의 정(鄭)씨 가문과 직접적인 연고는 없지만, ‘현대’가 화두에 오를 때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의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기 때문이다. 한 기업에 재직하는 동안 두 부자(父子)를 보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그의 두 ‘주군’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기도 했으니 말할 나위도 없다. 김윤규 부회장, 그의 이름 앞에 가장 많이 붙는 타이틀은 현대가의 가신(家臣)이다. 그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강명구 전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등과 함께 현대가의 가신으로 꼽히는데, 이들이 모두 그룹의 경영에서 물러났으니 엄밀히 따지면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다. 재계의 안팎에서는 ‘가신’에 대해 평가가 여러 가지다.

현대가가 오늘날처럼 쪼개진 내막에 그들이 있었다는 질책론도 많고, 그들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현대가의 ‘가신’에 대해 구구절절 평가를 내놓는 사람들도, 김 부회장을 현대가의 대표적인 ‘가신’이라는 점에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 김 부회장과 현대가의 인연은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부회장은 1944년 수원에서 태어나 성동기계공고,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69년 현대건설 기계부로 입사를 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신입사원이었다. 그가 어떻게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눈에 띄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가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근면성과 유창한 영어 실력이 한몫을 했다는 점이다. 1970년 당시,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경영에 모든 것을 ‘올인’하고 있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매일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사업에 열을 올렸는데, 항상 새벽에 출근하는 김 부회장을 눈여겨보게 됐다고 한다. 김 부회장의 출근 시간이 새벽 6시 경이라는 것은 유명하다. 그는 이번 파문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른 새벽에 임원 회의를 주재하곤 했다. 그의 이런 근면성은 고 정 회장의 눈에 들었다. 더군다나 그는 영어실력도 탁월했다.현대건설은 당시 외국에서 공사 수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 부회장은 외국인들과 통역관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이런 무기를 바탕으로 해외 공사 수주를 위해 뛰었고, 어느새 현대건설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김 부회장은 현대건설에 입사한 지 14년 만인 지난 83년 임원으로 승진하고, 고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특별공로상도 받게 된다. 현대건설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그는 평생에 잊혀지지 않을 사고를 겪게 된다. 1988년 비행기 추락사고다. 당시 그는 고 정 명예회장의 명을 받고, 리비아 발전소 공사를 따내기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가 비행기 추락사고를 겪은 것.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김 부회장은 이 사고로 한 쪽 눈의 근육이 지속적으로 떨리는 상처를 입게 된다. 하지만 그는 리비아 현지에 입원한 상황에서도 공사를 수주해내고, 고 정 명예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게 된다. 사회 생활에 있어서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셈이다.

1989년 왕 회장과 함께 방북 대북사업에 본격 뛰어들어

이즈음 김 부회장의 ‘주군’인 고 정 명예회장 역시 인생의 대변화를 맞게 된다. 실향민인 고 정 명예회장이 대북 사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김 부회장의 인생 행로도 덩달아 바뀌기 시작한다. 1989년. 이 해는 김 부회장에게나 고 정 명예회장에게나 모두 잊지 못할 해일 것이다. 그가 고 정 명예회장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 당시 이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그의 ‘숙명’이 돼버린 대북사업이 시작됐다.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시작한 김 부회장은 이즈음부터 본격적인 외부의 관심을 끌게 된다.

현대건설과 대북 사업을 총체적으로 주관하는 일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즈음 그는 새로운 ‘주군’과 첫 만남을 갖는다. 바로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의장이다. 지난 1996년 1월, 고 정 의장은 고 정 명예회장의 절대적 신임 하에 현대건설 회장에 취임한다. 당시 김 부회장은 현대건설 상무였다. 그리고 대북사업이 본격화되자, 두 사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김 부회장은 지난 1998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현대그룹 남북경협단장도 동시에 맡게 된다. 그리고 고 정 의장은 이듬해인 1999년 2월, 대북사업을 위한 현대아산의 초대의장으로 취임한다. 현대건설과 대북사업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쫓으면서, 고 정 의장과 김 부회장의 관계는 점점 무르익는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의 사이가 더욱 깊어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왕자의 난’ 때였다. ‘왕자의 난’은 고 정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의장이 재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형제간 재산 다툼이다. 고 정 명예회장의 두 아들들이 얼굴을 붉히자, 회사의 CEO들도 찢기고,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여기서도 묵묵히 고 정 의장의 편에 서있었다. 사실 ‘왕자의 난’을 두고 ‘가신들의 대리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진실 여부에 상관없이 김 부회장은 고 정 명예회장에 이어 고 정 의장의 사람으로 확실히 각인되게 된다.

고 정몽헌 회장 유언장서 ‘사후부탁’

그의 인생에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그가 ‘주군’으로 모셔왔던 고 정 명예회장이 별세한 것. 비록 숙환이라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그는 대북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현대건설 사장자리에서 물러난다. 이후 김 부회장은 고 정 의장의 오른팔이자,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의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지난 2003년 8월, 고 정몽헌 의장이 현대계동 사옥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다. 재계는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놀랐고, 김 부회장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고 정 의장은 유서에서 김 부회장에게 따로 당부의 서신을 남길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 김 부회장 개인적으로는 현대가 두 부자(父子)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 아픔을 겪은 것. 하지만 그는 고 정 의장의 유언대로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한다(이후 그는 북한을 40여차례 방문한다).고 정 의장의 뒤를 이어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가의 모든 가신들이 그룹을 떠날 때에도 그는 예외였다. 하지만 그와 현대의 오랜 인연이 이제 끝나는 것일까. 현대그룹은 자체감사 결과 김 부회장의 개인비리가 적발돼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5일째 그는 계동사옥에 정상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간간이 바쁜 업무만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그가 조만간 중대 결정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 측에서는 대표이사에서만 물러날 뿐 공식적인 직책을 유지한다고 밝혔지만, 김 부회장이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비리사실을 인정하며 불명예스럽게 퇴진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목소리를 낼지가 주목되고 있다.

# 기자가 만난 김윤규 부회장 - 농담도 잘하는 ‘옆집 아저씨’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은 비교적 언론사 기자들과 관계가 원만한 편이다. 그가 현대의 대표적 가신으로 지내면서 오너의 말을 대신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고, 또 몇 몇 굵직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다수의 그룹 CEO들이 그러하듯 달변가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편이다. 기자는 공식석상과 사석에서 각각 김 부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기자가 기억하는 한, 공식적인 기자회견 석상에서는 김 부회장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전형적인 CEO였다. 그는 다소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면 오른쪽 눈을 조금 더 떨기는 하지만, 비교적 필요한 말 이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조금 다른 듯 보였다. 김 부회장은 성격이 외향적이어서, 일과 관련된 사람들 이외에도 여러 지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올 김용옥씨도 그와 절친한 사람 중 한 명. 도올 김용옥씨는 지난 2003년 7월 신라호텔에서 맏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당시 김 부회장 역시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용옥씨는 결혼식의 본식 순서가 끝난 뒤, 김 부회장에게 축사를 부탁했다. 김 부회장은 맨 앞줄에 앉아있었는데, 다소 쑥스러운 듯 일어서더니 한참 동안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는 김용옥씨에게 장시간 축하 인사를 전하며 종종 뜬금없는 우스갯소리를 곁들여 하객들을 웃게 만들었는데, 공식석상에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정혜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