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으로 에버랜드 저가 CB(전환사채) 발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은 삼성그룹 소유지배구조 향배까지 위협을 가하면서 ‘삼성 위기론’을 촉발시키고 있다.이처럼 사면초가에 처한 삼성그룹의 내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재계 주변에서는 삼성이 연말을 전후해 그룹차원의 강력한 처방전이 담긴 이른바 ‘위기극복’ 플랜을 제시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삼성이 준비하고 있는 위기극복 플랜의 핵심골자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주요 고위임원에 대한 인사설과 연말 대국민 사과성명이 그것이다.
이종왕 법무실장 책임론 부상
우선 고위임원에 대한 인사설과 관련해서는 ‘재계의 청와대’ 혹은 ‘삼성의 핵’으로 불리는 구조조정본부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관측들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인물은 이종왕 법무실장과 이학수 부회장으로 압축된다. 이종왕 법무실장은 구조본의 최고 핵심 조직인 법무실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 법무실은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동기인 이종왕 법무실장을 사장급으로 영입하는 등 초호화 법무진용을 갖췄지만, 최근들어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97년 기아차 인수과정에서 정·관계 로비의혹, 98년 대선 불법정치 자금 제공 의혹사건 및 X파일로 제기된 떡값 검사에 대한 수사, 최근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증여 사건 등을 겪으면서 삼성 법무실의 능력에 원초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일각에서는 ‘막강 드림팀’으로 불리는 삼성 법무실이 ‘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무실에 대한 악화된 여론 및 능수능란하지 못한 상황대처 능력은 삼성그룹 수뇌부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관측. 이 실장에 대한 책임론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다.특히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의 유죄판결은 이 실장의 책임론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이재용 상무와 관련된 상속문제가 사실상 불법임을 확인해 준 것으로 삼성으로서는 후계체제에 큰 흠집을 남기게 됐기 때문이다. 또 책임자간의 ‘불협화음’이 외부로 번져나가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학수 견제론’ 급부상
97년부터 8년째 구조본을 이끌며 삼성그룹 2인자로 통하는 이학수 부회장도 책임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다. 실제로 그룹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거취문제와 관련해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다.재계에서는 2003년 대선 비자금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 부회장이 X파일 사건에 연루된 것은 그의 위상뿐 아니라 직접적인 거취문제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이 이건희-재용 부자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법적 부담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 부회장의 책임론은 안기부 도청문건 파문으로 검찰에 소환된 것과 맞물려 이미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삼성 안팎에서는 ‘홍석현은 버려도 이학수는 살린다’는 시각이 대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에버랜드건으로 이재용 상무 지분 획득과정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이 부회장의 책임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학수 책임론의 또다른 쟁점은 ‘잠재적 경계론’적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삼성 구조본에서 이 부회장의 그룹 장악력은 황태자인 이재용 상무조차 필적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공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 부재하에서 삼성그룹은 이학수 부회장 체제로 굴러갈 것이란 소리가 나돌 정도다.이처럼 이 부회장의 막강 파워는 잇따른 악재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이학수 경계론’으로 비화되고 있다. 실제로 재계 주변에서는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과 관련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상무가 경영권을 이어받으면 이건희 회장의 핵심측근들은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용 상무 체제 개막은 곧 이학수 부회장의 용퇴로 이어질 것이란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따라서 삼성은 이종왕 실장과 이학수 부회장의 거취문제를 떠나 위기 탈출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그룹내 인적 쇄신을 단행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인적 쇄신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배경으로 2세 승계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따라서 총수일가를 대신해 주요 고위직 인사들 중 일부가 책임을 지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위기를 타개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연말 대국민 사과성명 준비설
인적 쇄신론에 이어 위기극복 플랜으로 대국민 사과성명 준비설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 주변에서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는 삼성이 대국민 사과성명을 통해 일대 국면전환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꽤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것.실제로 삼성은 지난 66년 이른바 ‘사카린 밀수 파동’으로 위기에 직면하자 총수일가 일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바 있다. 안기부 X파일 등 삼성을 짓누르고 있는 작금의 암초는 66년 상황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삼성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일정부분 잘못을 시인하고 강도 높은 자구책 발표로 국면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그룹 내부에서는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구조조정과 단기실적 향상에 집착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온 스톡옵션제 폐지 등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후문이다.재계 주변에서는 삼성그룹이 올 한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편법상속시비-불법정치자금제공’건을 마무리하는 차원의 특단의 비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도 나돌고 있다. 비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름아닌 외부인사 영입. 실제로 그룹 수뇌부는 서울고검장 출신인 A씨를 영입하기 위해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시 12회 출신으로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거쳐 서울고검장까지 오른 A씨는 이 실장보다 훨씬 화려한 검찰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A씨가 바로 몇 년전까지도 검찰조직에 몸을 담고 있어 검찰 수뇌부와 두터운 교감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에서 삼성 수뇌부와 A씨와의 물밑접촉은 삼성의 위기 극복 플랜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삼성전자 금산법 희석차원에서 M&A논란 조장 소문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정전자에 대한 적대적 M&A논란이 재계를 강타했다.지난 11월 중순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간한 ‘경영권방어와 적대적M&A억제 정책’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가가 M&A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경고하면서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다.윤교수는 “삼성전자는 외국의 경쟁회사에 비해 주가수익비율이 3분의 1수준으로 아주 저평가되어 있다. 2004년말 기준 현금보유액만도 9조6,000억원에 이른다.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통신 생활가전 등 다양한 첨단기술 특허를 갖고 있어 M&A사냥감으로 매우 매력적”이라고 주장했다.재계에서는 260억달러면 삼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M&A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시장에서는 ‘과장된 목소리’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대우증권 M&A컨설팅부 김기영 팀장은 “삼성전자의 주주명단을 들여다보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노릴 만한 헤지펀드가 사실상 없다. 또 주총방어의 마지노선이 지분율 34%(3분의 1초과)인데 자사주를 포함한 삼성전자의 지분율은 28% 수준.M&A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로 실행될 확률은 극히 낮다고 본다.”고 말한다.특히 삼성전자의 지난 3·4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건희(1.91%) 회장과 부인 홍라희(0.74%)씨, 삼성생명(7.26%), 삼성물산(4.02%), 삼성화재(1.26%)를 비롯한 대주주의 지분은 16.08%. 여기에 자사주 11.6%(1700만여주)를 포함하면 우호 지분율은 총 27.68%에 이른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 탓에 경영권 방어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우호적 기관투자가나 제3자에게 팔면 의결권은 고스란히 되살아나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숨은 카드’인 셈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적대적 M&A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정부의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5%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으로 가닥이 잡히자 M&A논란을 불러일으켜 금산법을 회석시키기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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