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히딩크’ 한국 축구역사 다시 쓴다
‘제2의 히딩크’ 한국 축구역사 다시 쓴다
  •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 
  • 입력 2005-10-18 09:00
  • 승인 2005.10.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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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경이적인 4강행을 이뤄낸 한국축구가 오랜만에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한·일월드컵 이후 코엘류와 본프레레 감독 체제 하에서 가파른 내리막길로만 치달았던 한국축구는 최근 세계적인 명장 딕 아드보카트 감독(58)의 영입을 계기로 2006년 독일월드컵을 향한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다.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을 두 차례나 역임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대표팀 감독 부임 후 나태하고 무기력했던 한국축구에 변화와 희망의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선수시절 어떤 선수였으며 지도자로서는 어떤 스타일인가. 또 그가 추구하는 축구철학은 무엇이며 인간적으로는 어떤 성격을 가졌을까. 요즘 국내 축구판의 핫이슈 아드보카트 감독의 모든 것을 집중해부한다.

싸움닭 무명선수에서 성공한 지도자로

네덜란드 출신인 아드보카트 감독은 선수로 빛을 보지는 못했다. 1967년 덴하그(네덜란드)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해 80년 시카고 스팅(미국)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이름을 크게 날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플레이는 싸움닭을 연상케 했다. 강한 체력과 지칠 줄 모르는 플레이로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 스타일로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선수였다. 그는 86년부터 네덜란드대표팀 코치로 일했고 92년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94년 미국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8강에 올려놨다. 그 뒤 아인트호벤(네덜란드), 레인저스(스코틀랜드) 등 프로팀을 맡아 여러번 리그우승을 이뤄냈고, 2004 유럽선수권대회(유로2004) 때 다시 네덜란드대표팀을 이끌며 4강을 이끌었다. 세계적인 강호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을 두번이나 역임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무명의 선수에서 세계 톱클래스 감독으로 거듭난 셈이다. 네덜란드 축구 전문가들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네덜란드 감독 중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국가대표생활을 하지 못한 감독”이라며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냉철하면서도 다혈질

아드보카트 감독의 성격은 극과 극이다. 거친 듯하면서 부드럽고, 대범한 듯하면서 세심하며, 다혈질 같지만 냉철하다. 상황에 따라 교묘하고 완벽하게 변하는 그의 성격은 때로는 강한 자극제, 때로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 7일 대표팀 소집에 앞서 “룸메이트를 내가 정할 테니 불만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독불장군’인 그의 성격을 감안하면 `혁명적인` 방 배정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대부분 친한 동료들끼리 한방을 쓰게 했다. 편하게 쉬어야만 운동도 잘 할 수 있다는 세심한 배려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갓 소집훈련이 시작됐을 때만해도 양팔을 낀 채 묵묵히 훈련만 지켜봤다. 칭찬에는 인색했고 불만족스러운 플레이가 나오면 큰 제스처로 짙은 아쉬움을 대신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이란전이 다가오자 그의 행동에는 변화가 생겼다. 제스처가 더욱 커지면서 말이 많아졌고 무엇보다도 칭찬이 늘었다. 경기를 앞두고는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아야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판단, 감독이 먼저 노선에 변화를 준 것이다. 훈련 때 팀 플레이를 특히 강조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란전 직전에는 가상 수비진용을 그린 6개 시뮬레이션 그림을 라커에 붙여 수비훈련이 부족했던 선수들의 이해를 도왔다. 또 감독의 데뷔전이라 소위 `오버할 수도 있는 선수들을 걱정해 경기에서의 개인 임무가 적힌 메모지를 일일이 나눠줄 정도로 세심했다. 이란전이 2-0 한국의 승리로 끝나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뛴 선수뿐 아니라 벤치를 지키던 후보선수들까지 일일이 보듬어주는 사려깊은 모습도 연출했다.

예상 뒤엎을 개척자 정신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대표팀에 엄청난 변화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사람이면 누구나 낯선 변화와 마주치면 스트레스를 받는 법. 2002년 월드컵 이후 나태해졌던 선수들은 아드보카트 감독의 파격적인 행보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를 운반할 경우 수족관 안에 문어와 상어새끼를 함께 집어넣으면 물고기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우선 아드보카트 감독은 대표팀 소집에 앞서 미리부터 선수단의 기강을 다잡았다. “본인의 차를 몰고 오지 마라”, “방은 내가 정해준 사람과 같이 쓰라”는 것이 아드보카트 감독의 첫번째 명령. `대표팀 숙소에서 나갈 생각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대로 무조건 하라’는 것이 그의 속내였다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 소집 초기부터 평소와 다른 변화를 겪은 선수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란전 전날인 지난 11일 오전, 선수 22명 전원과 기자단간 단체 인터뷰는 획기적인 행사였다. “언론도 대표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아드보카트 감독이 단체 인터뷰를 주도적으로 지시한 것이다. 국내 모호텔 야외에서 가진 이날 인터뷰에서 선수들과 기자들은 오랜만에 넉넉한 시간을 갖고 얼굴을 맞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웬만한 감독같았으면 자신의 감독 데뷔전 바로 전날인 만큼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는 선수들을 기자들로부터 더 멀리 격리시켰을지 모른다. 첫훈련을 지휘한 아드보카트 감독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감 넘치고 느긋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언론이나 팬들은 “2006년 월드컵까지 겨우 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아직 8개월이나 남았다”고 외치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훈련내용에서 그의 여유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많은 축구팬들이 알다시피 현재 한국축구대표팀의 전술적인 최대문제는 바로 불안한 수비. 따라서 아드보카트 감독도 일단 수비훈련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게다가 자신의 감독 데뷔전을 반드시 이기고 싶을 테니 수비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는 완전히 반대였다. 닷새 동안 훈련에서 그가 수비조직력 훈련을 한 것은 단 한차례 뿐. 대부분 훈련시간을 패스와 슈팅훈련에 집중적으로 할애했다. 웬만한 감독이라면 데뷔전에서 이기고 싶어서 수비훈련에만 치중했을 법.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란전 승리에 연연하기보다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향한 장기적인 플랜에 따라 태극사단 체질개선에 주력한 것이다.

오로지 공격만이 살길

그가 선수시절 싸움닭같은 허슬 플레이를 한 만큼 지도자로서 그의 축구철학 또한 공격축구다. 최근 취임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기량이 따라준다면 공격축구를 하고 싶다”고 밝힌 아드보카트 감독은 대표팀 훈련기간 동안 공수에 걸쳐 모두 공격적인 플레이를 요구했다. 낮고 빠른 패스에 이은 전천후 슈팅, 상대가 볼을 잡으면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전방위 압박이 아드보카트 축구의 특징이다. 심지어 인 플레이 상황에서 측면 크로스를 받아 슈팅으로 연결하는 공격수들을 위한 슈팅훈련을 수비수들에게조차 시킬 정도였으니까.

물론 감독 본인이 원하는 공격축구를 할 수 있느냐를 시험해보고 싶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닥을 친 태극전사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려면 `지키는 축구’보다 `골 넣는 축구’가 제격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공격축구를 선호하는 아드보카트 감독으로서 이란전에서 보여준 공격수들의 플레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조원희(수원)·김진규(주빌로)의 연속골 덕분에 스코어상은 만족스러울 법한 2-0 한국의 승리였지만 경기 내용은 감독을 흡족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2골 모두 정상적인 공격루트에 의한 골이 아니라 상대의 실수 또는 상대 수비수의 몸에 맞고 방향이 바뀌면서 들어간 골이었기 때문이다. 이란전 직후 인터뷰에서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골을 넣는 것을 본 공격수들은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평가는 공격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을 전한 셈이다.

# 내유외강형 소탈한 성격 소유자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굉장히 정확하고,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겉으로 보기에는 훤한 이마와 단단한 체격 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한 독불장군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장난기 많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개고기까지 먹었던 본프레레 감독과는 달리 한국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국가대표팀 전담 요리사가 매끼니 때마다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웨스턴 스타일의 음식을 따로 만들어준다. 담배는 전혀 하지 않지만 술은 어느 정도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가 비교적 작은 170㎝대 초반인 아드보카트 감독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축구 뿐만 아니라 테니스, 야구도 좋아한다. 테니스는 수준급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유럽출신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대표팀 관계자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수시절 미국 프로팀에서 활약하면서 메이저리그를 자주 접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하나 아드보카트 감독의 비밀은 그가 90년대 말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윗머리에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으나 96년 한 네덜란드 모발이식 업체로부터 모델로 캐스팅되면서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 포털 사이트 야후닷컴 검색창에 ‘advocaat’라고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아드보카트 감독의 ‘before’(모발이식 수술전)와 ‘after’(모발이식 수술후)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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