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검찰이 간이 부었나…” “우리 간은 건강합니다”
“요즘 검찰이 간이 부었나…” “우리 간은 건강합니다”
  • 이수향 
  • 입력 2006-04-24 09:00
  • 승인 2006.04.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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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검찰내부 인사들 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로는 단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채동욱(47) 수사기획관이 꼽힌다. ‘금융계 마당발’로 통하는 김재록 로비의혹 사건과 외환은행 매각건을 조사하는 중심에 채기획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가 외국계 사모펀드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동시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로, 지금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채기획관의 입에 집중되고 있다. “레일 하나가 더 생겼다.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여태까지 하나의 가지였다면 이제는 또 다른 나무다” 현재 김재록 로비의혹 사건과 외환은행 매각건을 조사하고 있는 채기획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재계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두 사건의 규모도 규모지만 이 사건들이 앞으로 몰고 올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 사건에는 재계의 거물인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부자가 수사대상에 올라있는데다가 또 다른 정·재계 인사들마저 줄줄이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또 대표적인 국부유출사건으로 기록될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서는 전·현직 정부 고위인사들도 수사의 타깃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수사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어떤 거물급 인사들이 엮이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정·재계는 폭풍전야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국민의 분노에 부응하듯 실제로 채기획관은 지난 20일 “일부 언론의 ‘정 회장 부자의 불구속 방침’ 보도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하고 강경한 수사가 진행될 것임을 내비쳤다.

“서두르지 않는다”

채기획관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수사 스타일 때문이다. 재계 2위의 재벌회장을 수사해야하는 채기획관은 겉보기에는 결코 칼날을 세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촌철살인’, ‘언중유골’이라했던가. 그간 크고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온 베테랑 검사임을 입증하듯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압박수위를 높여가는 그의 수사 스타일은 검찰관계자들 사이에서 조차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서서히 목을 죄어오는 공포보다 더한 것이 있겠나. 도대체 어디까지 도려낼지 알 수가 없다. 조사를 받는 당사자로서 그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정회장에 대한 그의 ‘느긋한’ 귀국종용도 이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일부 언론들이 미리 정회장의 귀국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며 성급하게 ‘대충 마무리 수사’, ‘재벌 봐주기’를 거론했을 때도 채기획관은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채기획관은 “수사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외국에 계속 머물 수 있겠는가”, “글로벌 기업의 총수답게 행동할 것으로 믿는다”는 말로 서서히 압박수위를 높여갔다. 특히 “어떤 수사든 기간이 늘어날수록 혐의가 늘어나는데 대기업일수록 더욱 그렇다”는 채기획관의 말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식의 엄중경고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사실상의 최후통첩은 정회장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채기획관의 언술(?)과 수사방식은 대놓고 칼날을 들이대는 것보다 당사자들에게는 오히려 공포스럽게 작용했을 터. 느긋한듯 하면서도 치밀하고 예리하게 수사를 진행, 하나둘씩 진실을 캐내는 채기획관의 스타일은 내로라하는 수사통들이 모여있는 검찰내에서도 그가 주목받는 이유다.

검찰 “할 말은 하는 사람” 평가

특히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게 상대의 허를 찌르는 채기획관의 언변은 검찰내에서도 이미 유명하다. 채기획관은 상대가 누구든 거침이 없다. 상대가 여당의 거목이건 정부의 핵심실세건 채기획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검사는 수사로 말한다’, ‘상대를 가려 대응하기 마련’이라지만 채기획관은 필요하다면 할 말은 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과 관련, 사전구속영장을 받은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가 ‘386 음모론’을 제기했을 때 채기획관은 “지게꾼이든, 권세가든, 그 누구에 대해서든 법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지 음모니 뭐니 하는 것은 없다”고 당차게 반박했다. 또 “말단 수사검사부터 검찰총장까지 완벽하게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영향을 받으면 우리는 물론 나라가 다 죽는다”며 강변하기도 했다. 여당의 거목에 대한 일침은 곧바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다. 정대표에 대한 영장청구를 놓고 유인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요즘 검찰이 간덩이가 부었잖아”라고 하자 그는 의연하게 “우리 간은 건강합니다”라고 되받아쳤다. 불쾌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면서도 상대를 한마디로 제압하는 고도의 기술이었다.채기획관의 언변은 재계를 주름잡는 대기업회장도 피해가지 못했다. 얼마전 “김재록씨와는 지나가다 만나 악수한 사이”라는 정몽구 회장의 말에 대한 채기획관의 답변은 이러했다. “악수는 아무하고나 하나”.

‘굵직한 사건’ 거친 수사통

이처럼 채기획관의 소신있는 대응은 추진력있고 강단있는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으로 평가된다. 여의도 주상복합 건물인 트럼프월드 건축과 관련,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한화갑 당시 민주당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 집행을 시도한 것이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관련, 허태학 당시 에버랜드 사장 등 2명을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에 불구속 기소한 것은 좋은 예다.채기획관의 수사력은 과거 그가 맡은 주요 사건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굿모닝시티 분양비리사건, 경성 특혜 지원 비리사건, 여의도 주상복합 건물 건축비리사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사건, 안상영 부산시장 사건,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크고 굵직한 사건들 뒤에는 항상 채기획관이 있었다.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 사시(24회)에 합격한 채기획관은 검사 입문 후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그는 대검과 서울지검에서 특수부와 마약부를 거친 자타공인 ‘특수통’으로 통한다. ‘마약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995년 당시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로 차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채기획관이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98년 서울지검 특수1부 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성 비리 사건’과 관련, 정대철 전의원을 수사하면서부터. 경성 비리 사건은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였던 정대철 대표 등 15명의 정치인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채기획관의 행보가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승승장구하던 그도 적잖은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경성비리’사건 1차 수사팀의 주임검사를 맡았을 당시 그는 축소·부실 수사 지적을 받기도 했으며, 특수부에서 형사부로 전보조치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정대철, 한화갑 등 당시 내로라하는 정계 거물들을 ‘건드린’ 대가도 좋지만은 않았다.

‘미워할 수 없는’ 원칙주의자
무엇보다 2004년 1월 비리 혐의로 특수2부의 조사를 받던 안시장이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한데 이어 두 달 뒤 남사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한 것은 채기획관의 발목을 잡을만큼 치명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듯 올 2월 대검 수사기획관의 자리에 부임한 이후 채기획관은 바로 업무에 몰입해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채기획관은 검찰내에서 외유내강과 내유외강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강한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단단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융통성은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자 매력으로 꼽힌다. ‘나뭇결대로 수사하는’ 원칙주의자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는 조절력도 갖추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독종검사’의 이면에는 멸치를 안주삼아 폭탄주를 즐기는 묘한 법조인의 낭만도 공존한다.

2001년 10월 대검마약과장시절, 호주 시드니의 마약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한 채기획관이 회의가 끝난 뒤 열린 만찬에서 팝송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열창, 박수갈채를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대형사건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채기획관은 최근 기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최고의 화두에 올라있다.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빼내기 위한 기자들과 수사보안을 지킬 의무를 안고있는 채기획관은 어쩔 수 없이 힘겨운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채기획관은 최근 기자들의 질문에 ‘모르겠다’로 일관하거나 동문서답식의 엉뚱한 답변으로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이 사실.“저는 아들이 없습니다(정회장 부자에 대한 소환일정에 대한 질문에)”, “정몽구회장이 누구죠?”, “M&A가 뭐죠?(M&A관련 질문에)”라는 식이다. 하지만 한마디를 듣기 위해 매번 스무고개를 해야하는 기자들조차 채기획관의 재치섞인 답변에 탄성을 내지른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원하는 답변을 해주지 않으니) 정말 지쳤다, 허무한 답변을 들었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채기획관은) 결코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이라는 말도 들린다.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

현재 채기획관의 임무는 막중하다. 검찰에 거는 국민의 기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간 검찰은 ‘봐주기 수사’, ‘편파수사’, ‘권력의 시녀’라는 불명예에 시달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한 검찰 관계자는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게 검찰”이라며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항상 긴장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중견검사는 “검찰이 겉보기에는 화려해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다. 자부심 못지않게 막중한 부담감이 항상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특히 수사의 맥을 잘못 짚거나 강약조절에 실패할 경우 검찰은 쏟아지는 국민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채기획관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것인지 모른다.지금은 검찰의 자존심이자 중수부의 명운이 채기획관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모든 것은 법에 따른다)을 신조로 삼고 있는 채기획관은 “수사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대형 사건을 맡고 있는 그의 칼끝이 어디까지 도려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민들은 그의 칼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채동욱 수사기획관 이력

82년 사법시험 합격(24회) 84년 사법연수원 수료(14기) 88년 서울지검 검사 91년 수원지검 여주지청 검사 92년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94년 서울지검 검사 95년 독일연방 법무부 파견 96년 서울고검 검사 97년 창원지검 밀양지청장 98년 서울지검 부부장검사 99년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2부장 2000년 부지청 형사1부장 2000년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형사5부장 2001년 대검 마약과장 2003년 서울지검 특수2부장 2004년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2005년 부산고검 검사 2005년 부패방지위원회 법무관리관 2005년 국가청렴위원회 법무관리관 2006년 대검 수사기획관

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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