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11 정당대회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이재오 후보를 누르고 대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4전5기에다 20년만에 당 대표에 오른 셈이다. 그는 취임후 가진 첫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내가 심판인데 그분들(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원희룡)이 내 눈치를 봐야 한다”고 일성을 내놓았다. 더 이상 박근혜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심을 등에 업고 당선된 강 대표가 넘어야 할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5선에 민정당 시절부터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치면서 당내 주요 요직에 몸담았던 강 대표다. 그동안 TK 차세대 간판주자, 한국의 토니블레어로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 대표 도전이라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회창 전총재와 박근혜 전대표의 벽에 부딪혀 좌절의 쓴맛을 봐야 했다. 특히 박 전대표의 경우 최대의 아군이자 경쟁자다. 같은 지역출신이란 점 때문에 ‘대망론’을 접어야 했고 박 전대표로 인해 당 대표로 선출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 그런 강 대표가 이제 ‘강재섭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강재섭표 리더십을 보여라
강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황희성 특보는 강재섭표 리더십으로 현재의 난관을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화합-포용-친화’ 3대 덕목이 당내 갈등을 푸는 최대의 무기라는 얘기다. 강 대표의 좌우명도 ‘대해불택세류’(큰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려 받지 않는다)이다. 또 평소 그의 지론이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로서 인정으로 대화하면 안 풀릴 게 없다고 피력하고 있다. 이런 믿음이 그로 하여금 당내에서 우려하는 ‘분당론’을 일축하도록 만들고 있다. 한편으론 강 대표는 당 지도부가 친박 인사 포진, 영남당 이미지, 구시대 인물 편중이라는 3대 과제를 풀기 위해 당직인선 카드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지명직 최고위원 2명에 대해 소장파와 호남출신 인사를 중용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대변인, 사무총장 등 기타 당직자 인선에도 탕평책을 실시해 당내 반발기류를 무마시키겠다는 복안이다.
화려한 경력에 역대전대 성적 ‘열악’
그의 20년 정치 이력을 보면 왜 ‘TK 꿈나무’라는 호칭이 붙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70년 사법고시 12회에 합격해 검사생활을 하던 그는 83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청와대에 입성한다. 그는 5년간의 청와대 공직 경험을 아직도 커다란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 맞은 87년 봄, 민주화 열기는 현실에 안주해 있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불러 일으켰다. 강 대표는 그해 6·29 선언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정치입문의 배경이 됐다.그의 정치권 첫발은 13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이었다. 이후 그의 정치 가도는 말그대로 순풍에 돛단듯 흘러갔다. 14대 대구서을 지역구에 자리잡고 민자당 대변인, 15대 국회의원, 최연소 법사위원장, 신한국당 원내총무, 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부총재, 최고위원, 17대 국회의원, 원내 대표를 거쳐 당 대표까지 맡게 됐다.물론 중간에 정치적 어려움도 겪었다.
대표적인 것이 98년 이회창 전총재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8일만에 도중하차한 것이 그 예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에서 ‘우유부단하다’, ‘기대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이후 지난 2002년부터 계속된 3번의 전당대회 성적도 신통찮았다. 특히 2002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는 서청원, 강창희, 김진재 의원에 이어 4위를 했고 2003년 전당대회 때는 3등을 했다. 때문에 그는 ‘강재섭 시대는 끝났다’는 비아냥까지 들어야만 했다. 4전1무3패의 신통치 않은 전대 성적은 이번 7·11전대에서 막판까지 출마 여부를 두고 고민하게 된 원인이었다. 또 민정계 출신에다 5공 월계수회 멤버라는 지적도 출마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나아가 올 3월엔 대권 도전을 표명한 상황으로 당권으로 선회한 명분도 약했다.하지만 그는 ‘버리는 정치를 하겠다’며 대권 도전 포기 선언을 했다. 이어 2위할 경우 ‘정계은퇴’라는 배수진카드까지 꺼내들었다. 평소 강 대표답지 않은 독기어린 자세였다. 그러나 이 전략은 주효했고 3%P차이지만 관리형 대표로 당선되는 배경이 됐다.
공부·당구·볼링·노래…‘팔방미인’
강 대표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정치권의 팔방미인이라는 호칭이다. 공부, 볼링, 당구, 노래, 입담, 스포츠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는 말이다. 부친인 강성무씨는 대구 사범대 출신으로 교육자이다. 하지만 선생님답지 않은 부친의 호탕함과 유머 감각은 그대로 강 대표에게 전해졌다. 강 대표의 위트섞인 입담과 긍정적인 사고의 원천이 된 셈이다.그는 공부도 빠지지 않은 편이다. 당시 대구·경북의 최강을 자랑하는 사대부중의 배구선수로 활약하면서 사대부중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또 서울대 법대를 진학한 강 대표는 그의 말처럼 ‘술’, ‘당구(300)’, ‘볼링’, ‘노래’를 즐기면서 한량처럼 지냈다. 그럼에도 4학년 재학 시절에 사시에 합격했으니 천재까지는 아니지만 수재로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천국 같은 대학생활을 보냈다는 강 대표, 그가 자랑하는 인화력이나 친화력이 대학생활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당내 팔방미인이지만 사실 대중적 인지도는 미약한 게 강 대표의 현실이다. 이번 관리형 대표로 선출되면서 인지도와 당내 지지기반을 넓힐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2007년 경선 키워드 ‘강재섭’
특히 내년 3월부터 치러질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대선후보 경선에 들어설 경우 심판의 역할은 더 막중해질 수밖에 없다. ‘명심판론’을 내놓은 강 대표지만 경선 열기가 뜨거워지면 자칫 ‘오심’논란에 빠져 ‘낙마’할 위험도 안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강 대표는 일단 ‘경선 관리는 내년부터 하면 된다’며 호흡조절을 하고 있다. 역으로 대선후보가 결정된 이후 자신의 출신지역이 문제가 되면 대표직도 내놓을 수 있다고 사전 방어용 발언도 빼놓지 않았다. 강 대표의 한 측근도 “내년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본격화되면 강재섭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며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와의 인연이나 스킨십이 두터워 불신이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3인의 주자들의 대선 캠프가 가시화되면 핵심 포스트를 만나 당내 역할 부여를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2007년은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선수들만큼이나 강 대표에게도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강 대표의 ‘버리는 정치’가 통해 리더십이 재평가되고 당내에서 ‘명심판’으로 인정받는다면 차차기 유력 주자로 부상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 ‘강재섭 사람들’ 누가 있나원내부대표단-국민생각-당직 인맥 주축
강재섭 대표의 인맥은 5선의 풍부한 원내 경험이 든든한 밑천이다. 그는 자신이 원내 대표시절 부대표단으로 활동했던 의원들과 친분이 깊다. 임태희, 김기현, 김명주, 나경원, 박순자, 이명규, 이재웅, 정종복 의원 등이 워크숍 등을 통해 친분을 높이고 있다.또한 강 대표 중심으로 결성된 중도파 의원의 ‘국민생각’ 역시 강 대표의 지지그룹으로 분류된다. 회원으로는 김학송, 정갑윤, 박진 의원 등 팀장을 중심으로 권경석, 김석준, 김양수, 김정훈, 서병수, 심재엽, 최경환 맹형규, 박세환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국민생각 회원들과 중복되는 푸른 정책 모임의 상당수 의원도 강 대표와 잦은 스킨십을 갖고 있다.
민정당 시절부터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를 거치며 당내 요직을 맡아온 덕도 보고 있다. 황희성 특보, 우신구 중앙위 부의장, 김성호 광진구 운영위원장 등 상당수 원외위원장도 강 대표 사람들이다. 이밖에도 김윤철 정책특보, 박재선 특보 등도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자문단으로 강 의원은 자신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보화비전포럼’으로부터 든든한 정책자문을 받고 있다. 이 포럼에는 정보통신 관련 공무원이나 기업체 CEO출신 등이 대거 소속돼 있다. 최근엔 당 대표가 18대 총선에서 공천권이 막강해 정치에 입문하려는 손학규, 김덕룡, 홍준표 인사들도 대거 캠프에 참석해 강재섭 인맥이 급증했다는 후문이다.
홍준철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