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DJ가 이를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선 전 정계개편과 맞물려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현 정권을 향한 DJ의 대반격은 이미 예견됐다. ‘안기부 X파일’을 두고 자체 조사에 들어간 국가정보원은 국민의 정부 때도 도·감청이 이뤄졌다고 일찌감치 공개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4년여 동안 조직적으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사실 X파일 사건은 97년 대선이 기점이다. 결국 국정원 발표 이후 사건의 초점은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옮겨진 것이나 다름없다.
통신첩보 보고의 끝
‘DJ 정조준’의 서막은 국민의 정부 국정원 2차장을 지낸 김은성씨가 장식했다. 그에 대한 검찰의 전격 구속수사. “검찰의 칼끝이 DJ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정치권의 관측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김 전 차장 역시 검찰에 체포될 당시 “이번 사건은 내 개인의 책임이 절대 아니다”라며 개인 비리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관행적·조직적으로 이뤄진 일이라는 것이다. 김 전 차장의 이 말 한마디로 인해 그가 검찰에서 어느 선까지 언급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됐다. 과연 도·감청 보고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다시 말해 보고 체계의 끝에 DJ가 자리하고 있었는지의 여부가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예견된 대로 검찰 수사망은 DJ를 정점으로 해 좁혀지고 있다. 최근 검찰은 도·감청 업무를 맡았던 전직 국정원 간부·직원들로부터 “국정원장들이 자신들이 보고받은 정보가 불법 도청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국민의 정부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검찰이 확보한 진술은 김대중 정부 때 불법도청이 없었다고 밝힌 임동원·신건씨 등 전직 국정원장들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리고 이같은 진술을 김 전 차장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국정원장들은 물론 국민의 정부 실세들의 무더기 소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 전 차장의 통신첩보가 국정원장이나 김대중 정권 실세 등을 통해 DJ에게 보고됐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선 “김 전 차장 및 감청부서 간부·직원들의 불법도청 시인은 곧 대통령에까지 보고가 이뤄졌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결과”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경우 도청 수사의 칼끝은 사법처리 여부를 떠나, DJ로까지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대선 때마다 중책 맡아
때문에 정치권은 DJ측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정원의 자체조사 결과 발표, 그리고 연이은 검찰의 수사 결과에서 드러나듯이 X파일 사건이 국민의 정부를 정조준하고 있는 이상 대응책 마련 및 대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조직적인 ‘DJ 죽이기’ 플랜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대북송금 특검과 민주당 분당 등 적잖은 정치적 시련에도 ‘현실 정치 불개입’을 천명했던 DJ지만, 불법도청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X파일 후폭풍이 국민의 정부로 향하고 있을 무렵의 갑작스런 입원과, ‘불법도청의 최대 피해자’라는 동교동측의 적극적인 해명은 이러한 정치권의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정권에 대한 DJ의 대반격과 관련해 동교동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심대평 충남지사가 주도하고 있는 신당(가칭 국민중심당)이다.
창당에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데서 DJ 의중이 실린 플랜이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권에 대한 호남민심의 이반현상과 맞물려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민주당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것. 한편, DJ의 의중이 실린 정치권 지각변동의 개연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은 지난 18일 저녁 서울시내 한 호텔, 심 지사와 한 대표가 의기투합한 자리에 주목하고 있다. 신당 출범 선언을 하루 앞두고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심 지사에게 덕담을 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자리에 등장한 윤흥렬 전 스포츠서울21 사장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윤 전 사장은 “한 대표와는 형·동생하는 사이이고, 심 지사와도 안면이 있어 참석했다”고 합석 배경을 설명했으나, 그의 합석은 석연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가 누구인가. DJ의 장남인 김홍일 민주당 의원의 처남임과 동시에 오랜세월 정치적 고난을 함께 한 DJ의 측근이다.
DJ, 복심을 전했나
DJ와 윤 전 사장의 인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7년 평민당 대통령선거본부 홍보팀 팀장, 92년 대선 민주당 대통령선거본부 미디어대책팀 팀장, 97년 대선 국민회의 대통령선거본부 메시지총괄 팀장은 윤 전 사장이 정치권에서 얻은 이력이다. DJ가 대선에 당선된 이후 그는 서울신문 전무를 시작으로 대한매일신보 부사장, 스포츠서울21 대표이사 사장 등 언론사에 몸담아왔으며, 현재는 ETN TV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DJ의 의중은 무엇일까?지방선거 및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민주당-신당’의 만남은 곧 호남권과 충청권의 만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신(新) DJP 연합’이라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인사들에 대한 검찰 소환이 임박한 가운데 이뤄진 ‘한화갑-심대평’의 회동에 윤 전 사장이 동석했다는 사실은 곧 DJ의 복심(腹心) 전달로 읽혀지고 있다.또한 신당과 민주당이 공개 구애에 나선 고건 전 국무총리 주변에서 DJ의 간접적 지지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정치권의 해석이다. 차기 지도자감 1위를 달리고 있는 고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호남세력의 응집, 이를 바탕으로 한 DJP 연대의 재연엔 DJ의 막후 지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 “‘중부권’은 빼주세요”
전국정당화 노리는 신당
‘중부권’ 신당으로 비치고 있는 심대평 충남지사가 주도하고 있는 국민중심당(가칭)이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9일 국민중심당이 창당을 공식 선언한 이후 정치권은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먼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의 물밑 움직임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정당화를 지향하고 있는 신당이 제3 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신당의 세확산이 가시화한다면 지방선거 및 대선에 변수로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또한 차기 대통령감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차기를 노리는 잠룡들의 진영에선 은근한 신경전도 감지되고 있다. 또 하나, 주목되고 있는 부분은 신당에 참여할 인물군이다.
신당 출범 및 세력화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무소속 신국환 의원이다. 공동 창당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경북 문경·예천이 지역구다. 신당 창당을 향한 신 의원의 적극적인 행보에 정치권에선 영남권 정치인들의 추가 합류 가능성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바로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 신당 창당을 위한 물밑 작업이 있었던 지난해부터 그의 합류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에 그에 대한 합류 가능성이 회자되는 이유는 심 지사가 공을 들이고 있는 고 전 총리에 대한 정 의원의 호평 때문이다. 그는 최근 “고 전 총리 같은 분을 영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운을 뗐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이렇다할 정치적 행보를 자제하고 있어, 그의 무거운 발걸음이 향하는 동선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정당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는 신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인사는 또 있다. 바로 한화갑 민주당 대표다. 그는 지난 20일 “민주당과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정치세력과 개인이 연대해서 정치의 틀을 다시 짜는 결단을 내릴 때”라며 “필요하다면 우리가 가진 기득권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기득권 포기’는 신당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신당의 창당 공식 선언, 때문에 이들 세력의 지방선거 연합공천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전국정당을 지향하는 신당 창당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구도를 흔드는 변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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