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업 지배구조 개선펀드를 이끄는 장하성 교수
기업지배구조펀드로 잘 알려진 ‘장하성 펀드’가 마침내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동안 대그룹과의 전면전까지 불사하며 소액주주들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해 온 장 교수이다 보니 과연 그가 첫 개혁의 칼날을 어느 기업에 휘두를지 관심이 많았다. 다름 아닌 태광 그룹이 첫 타깃이 됐다. 장하성 펀드는 대한화섬 지분 5% 취득, 펀드 운용의 첫 시험대로 삼았지만 단순히 대한화섬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닌 태광 그룹 전체를 겨냥한 포석임을 확실히 했다. 이 때문에 대한화섬은 물론 태광산업, 흥국쌍용화재 등 태광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장하성 펀드 후폭풍이 거세게 불어닥쳐 추후가 주목된다.
‘재벌 킬러’ 장하성 교수, 태광그룹과 전면전
미국계 ‘라자드’와 손잡고 주식시장판 소액주주 운동도
‘장하성 펀드’ 대한화섬 지분 5% 확보…경영 참여
지배구조개선 펀드, 첫 타깃 ‘태광’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잘못된 투자관행을 바로잡고 ‘가치투자’의 좋은 모델을 제시하겠다.”
소액주주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말이다.
장하성(張夏成·53) 고려대 교수(경영대학장)는 참여연대의 재벌개혁 운동을 이끌면서 대기업 지배구조 논의에 불을 붙였던 소액주주 운동의 대부(代父)다. 장 교수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라자드에셋 매니지먼트 ‘엘엘씨’(Lazard Asset Management), ‘좋은 기업지배구조연구소’(소장 김선웅)와 함께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설립하기 위해 진행 중에 있다. 속칭 ‘장하성 펀드’로 알려진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Korea Corporate Governance Fund)가 대한화섬 지분 5%를 사들였다.
이 펀드는 대한화섬은 물론 모그룹인 태광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지분 매입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장하성 펀드의 운용을 맡는 라자드 에셋(특별관계인 2인 포함)은 지난 23일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대한화섬 주식 6만8,406주(5.15%)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라자드 에셋은 이날 지분 보유 목적을 첫째, 소액주주 권리 개선. 둘째, 독립적 이사회 운영. 셋째, 계열사와의 거래 투명성 개선. 넷째, 배당금 증액. 다섯째, 유휴자산 매각 등으로 밝혔다. 대한화섬은 태광그룹 계열사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14.04%), 태광산업(16.74%) 등 특수 관계인이 53.9%의 지분을 갖고 있다. 3,000억원대의 고정자산을 갖고 있지만 시가총액은 998억원에 불과하다.
장 교수는 “대한화섬이 최근 주력 사업인 페트병 관련 사업을 중단하고 새 사업 계획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케이블TV 사업 및 금융산업 진출 지원을 위해 우리홈쇼핑과 상호저축은행 지분 취득 등을 대행해 주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한화섬 경영진에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요구사항을 이미 전달했다”며 “회사 측의 입장과 반응을 본 뒤 법적인 조치 등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활용해 이 회사의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선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분 매입 2주일 전 이를 대한화섬 경영진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한화섬 관계자는 “지배구조가 무엇이 문제라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주가도 6만원 수준으로 오히려 고평가된 만큼 경영 잘못으로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얘기는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증시전문가들은 장 교수 측이 대한화섬의 지분 5%를 확보한 것은 대한화섬의 모기업인 태광산업을 포함한 태광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겨냥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지배구조개선펀드 측은 태광산업 지분도 일부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저격수’ 장하성 교수
1953년 전남 광주 출신인 장하성 교수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로 꼽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과(와튼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경제개혁센터의 전신) 위원장이 되면서 삼성전자·SK텔레콤 등 대기업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며 재벌개혁에 적극 나섰다.
장 교수는 2001년 9월까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맡으면서 1999년 삼성전자 주총에 참여해 8시간30분 동안 집중투표제 도입,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한 정관개정을 요구하며 삼성전자를 코너로 몰아 표결까지 가는 공방을 벌여 ‘삼성 저격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1997년 3월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가 삼성전자가 발행한 600억원의 사모 전환사채 중 450억원 어치를 매입한 뒤 같은 해 9월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자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 변칙증여”라며 소송을 내 최종심에서 결국 패소했다. 장 교수가 주도한 소액주주운동은 사외이사제 도입 등 대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장 교수는 99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아시아의 스타 50인’에 뽑히기도 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고려대 경영대학장으로 선임됐다. 이러한 경력의 소유자인 장 교수가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한 재벌개혁에 앞장서 온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단과대에 비해 기업과 ‘협력과 교류’를 해야 하는 경영대 학장으로서 향후 행보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로 독립’ 전문가조직으로 거듭나
소액주주 운동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재벌개혁 운동을 벌여온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시민운동의 틀을 벗고 전문가 운동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로 이름을 바꾸고 참여연대로부터 독립했다. 지난 25일 참여연대에서 독립된 경제개혁연대가 교대근처에 사무실을 차리고 창립총회를 가졌다. 사무실을 아직 완벽하게 갖춘 것은 아니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사업을 계승,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액주주운동,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제도 개선 등 한국경제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나아가 주요 경제현안에 대한 의견서, 주요 정책과제에 대한 리서치 등 전문적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개혁적 경제전문단체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5년 전부터 시작된 이런 구상은, 최근 기업 지배구조 개선 펀드인 이른바 ‘장하성 펀드’의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단행됐다. 앞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운동은 활동기구(경제개혁연대), 두뇌집단(좋은 기업지배구조연구소), 기관투자가(장하성 펀드) 등 전문성을 갖춘 기관들을 중심축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광범위한 이슈에 대해 ‘포지션 페이퍼’(정책방침보고서)를 내는 경제 전문기관으로, 좋은 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자문기관으로 자리하게 된다. 펀드는 경제개혁센터 1대 소장을 지낸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 학장이 운용을 책임진다.
장 교수는 “경제개혁연대는 경제 관련 시민운동이 사회·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시민운동과 차별성을 갖는 새 모형을 제시했다”며 “경제정의를 넘어 경제 가치를 실현하고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의 투명성을 한층 높였다”고 평가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은 현실적 한계에 부닥치기도 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은 널리 알린 반면,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자평이다. 더욱 구체적인 성과를 내자면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관투자가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경제개혁연대 재출범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장하성 펀드’가 만들어진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가장 큰 특징은 시민운동 단체에서 전문 단체로 거듭나는 것”이라며 “기존의 소액주주 운동과 재벌·금융개혁을 위한 법·제도 개선 활동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정치·이념적 이해관계에서 독립된 전문성을 갖춘 기관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하성 교수, “盧정권 폐쇄적” 쓴 소리
참여정부의 국정운영과 경제정책에 대한 질문을 하자 장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장교수는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득 양극화는 물론 고용과 기업, 세대간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개혁정책의 실종과 참여정부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성장과 분배 정책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밝혀왔지만, 실제로는 성장과 분배를 상호보완적으로 여기지 않고 대립구조로 파악하는 탓에 우리 사회의 갈등과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정권은 너무 폐쇄적이어서 외부의 비판이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지지기반이었던 개혁·진보세력으로부터 지지율도 떨어지고, 보수세력도 포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현재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는 모두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돼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현정권은 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교수는 특히 “정부와 청와대가 무능력하다 보니 기득권에 함몰돼 있는 관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청와대는 재경부 관료들의 ‘출세 통로’로 전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 일문일답
“고려대를 ‘아시아의 3대 경영대’로 만들 터”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최근 지난 10년간 경제분야 시민운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각계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싱크탱크 조직’으로 바꾸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경제개혁센터가 시민운동 단체에서 ‘경제개혁연대’로 독립하면서 전문 단체로 거듭나게 됐다.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의 장 교수는 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 펀드)가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지분을 5% 이상 사들인 것을 공개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다음은 장 교수와의 일문일답.
▲ 고려대 경영대학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 “고려대 경영대를 ‘아시아의 3대 경영대’로 만드는 데 주력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나 외부활동을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있지만 그 기업을 움직이는 인재를 길러내는 경영대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과 경영대의 경쟁력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스쿨을 만들고자 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경제개혁연대’로 이름을 바꾸면서 순수 시민운동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갖춘 조직으로 탈바꿈했다는 평이 있다.
▲ 새 조직은 재정적인 독립성을 유지하며 많은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도덕성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보다 한층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펀드라는 ‘돈 문제’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장하성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갖게 되는 인센티브의 40%가 제 몫이다. 그러나 인센티브를 모두 제가 지정하는 재단에 기부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했다. 새 조직은 참여연대에서 완전하게 독립하지만 정책 분야에서는 협조관계를 지속할 계획이다.”
-장하성 펀드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 올 4월부터 국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1,200억~1,300억원대의 자금을 모집해 설립한 펀드. 처음에 국내외에서 투자자를 모집했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출자를 꺼려 모두 해외 투자자들로 펀드를 만들었다. 연말까지는 2,0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일랜드에 등록돼 있으며 미국 버지니아대, 조지타운대 재단 등 10여 개 해외 기관이 투자. 펀드의 운용은 라자드의 한국 책임자 존 리가 맡고 있다. 나는 투자고문 자격으로 펀드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그가 개인적으로 받는 수익금은 전액 사회공익재단에 기부된다.
-태광그룹을 첫 번째 지배구조 개선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 대한화섬은 풍부한 자산을 보유한 좋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순자산가치대비 5분의 1에 불과한 반면 주력사업인 페트병관련 사업은 중단한 채 계열사나 그룹 총수를 지원하는 역할만 하고 있는 등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 최근 대한화섬에 향후 지배구조 개선 및 사업계획에 대해 질문을 해 둔 상태다.
-펀드개설과 관련, 향후 계획을 설명해 달라.
▲ 일단 기업들의 반응이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등을 판단해본 뒤 추가 지분 매수 및 지배구조개선 활동을 시작할지를 결정할 생각이다. 지배구조개선 대상 기업이 확정되면 예컨대 대주주가 회사 이익을 착취한 사실 등을 분명히 객관화시킬 수 있는 이슈를 갖고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경영에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기업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되 의도적(주가를 띄울 목적),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며 한 종목당 2~3년 정도 장기 투자하되 의외로 빠른 시일내 가치가 실현되면 이익을 실현하고 다른 기업에 투자할 것이다. <석>
구명석 gms75@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