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카드’로 고건 대망론 잠재운다
‘경선카드’로 고건 대망론 잠재운다
  • 이금미 
  • 입력 2005-10-18 09:00
  • 승인 2005.10.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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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영입론’이 여권의 문턱을 넘고 있다. 그렇다고 ‘거품’으로 폄하되던 그에 대한 시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공론화를 시도한 이후 차기 지도자감 1위 고건 전 국무총리를 향하고 있는 비판의 칼날은 점차 날카로워지고 있다.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보는 “기대어서 역할을 잘했던 분”이라고 일갈했을 정도다.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여권 인사들조차 근저엔 ‘실체’가 없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왜 문 의장은 고 전 총리 영입론에 불을 지핀 것일까. 정치권 일각에선 영입에 있어 전제 조건으로 제안한 ‘경선 참여’에서 답을 찾고 있다.

‘국민 후보’라는 타이틀로 ‘무혈입성’을 시도하려는 고 전 총리측의 대권 로드맵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일은 여러 개의 미묘한 시선이 정치권에 머문 날이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고건 영입론 발언은 여권의 엇갈린 해석을 낳았다. ‘원론적 차원의 얘기’일 뿐이라는 평가절하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다소 유보적인 시각. 한편 사건의 주인공인 고 전 총리의 입을 통해선 어떠한 즉답도 들을 수 없었다. 홍콩을 방문하기 위해 이미 출국한 뒤였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관심의 초점은 왜 고 전 총리가 출국한 날 문 의장은 그동안 쉬쉬하던 고건 영입론을 공론의 장으로 내놨느냐에 있었다.

1위 결과에 의문 제기

사실 그동안 여권의 분위기는 차기지도자 1위 고 전 총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던 터다. ‘고건 거품’, ‘실체가 없다’, ‘2% 부족하다’ 등 고 전 총리에 대한 여권 인사들의 촌평이 이를 말해준다. 여론조사 1위라는 결과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얻는 반사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 인사들 누구나 인정하는 ‘실체없는 고건’에 대한 영입론에 왜 문 의장은 불을 지피고 있었던 것일까. 문 의장 발언의 ‘진의’는 알려진 바 없으나 고건 영입론의 공론화는 10·26 재·보궐선거, 지방선거,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선과 맞물린 현 시점, 여권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먼저 재·보선과 지방선거. 재·보선이 채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의 지지도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06년 지방선거도 힘들다는 시각도 많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호남민심의 이반 현상은 여권의 위기 국면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때문에 대권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고 전 총리를 여권의 우호세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정치권의 분석이다. 선거 전략상 고 전 총리를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

내년 지방선거 사전 포석

심대평 충남지사가 주도하고 있는 신당이 고 전 총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의 패권을 두고 격전을 치러야 하는 민주당의 요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고 전 총리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최인기 의원은 전남도당 위원장, 최근 우리당을 탈당하고 이적한 신중식 의원은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고건 색깔을 덧칠하며, 선거 전략상 고 전 총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40여년간 호남의 정신적 지주를 자임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고 전 총리에 대한 간접적 지지도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차기 지도자감 1위 고건, DJ와 호남민심, 고건 옷으로 갈아입은 민주당. 당장은 묘한 삼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나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호남세력의 응집이 가시화한다면 우리당의 지방선거 실패는 물론 내부 단속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고건 영입론에 대한 여권 내부의 전체적인 반응이 회의론에 가깝다 하더라도 고 전 총리의 정치적 활용도는 이처럼 크다는 점에서, 내년 지방선거까지 여권의 전략 카드로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엔 문 의장의 언급이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에서 이뤄진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는 고건 영입의 가능성보다는 ‘경선’이라는 전제 조건, 그리고 고 전 총리측의 대권 로드맵에 무게를 두는 분석이다.

토사구팽 될 가능성 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시도한 국민참여경선은 ‘공정한 게임의 룰’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경선을 치르는 과정 그 이면에서 DJ와의 친소관계, 조직간 경쟁과 견제를 반복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과거 대선에서 관행처럼 굳어졌던 ‘청와대 낙점’의 부정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걷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움직임상 그의 대권 로드맵은 경선이라는 틀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돼 있다.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영입의 형태로 합류, 국민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다. 어느 정당이든 기득권을 가진 잠룡들의 반발과 견제로 인해 1위를 고수하는 데 결정적 요소였던 ‘클린’과 ‘안정’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경선에서 밀린다면 2007년과는 완전히 멀어질 수도 있다.

‘조직’이 없는 고 전 총리가 경선을 치른다면 참패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게다가 고 전 총리와 밀착관계를 유지하며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심대평 충남지사나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연대의 키’는 이미 고 전 총리에게 넘어간 상태다. 현 구도에서 ‘고건 변수’의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때문에 문 의장은 ‘경선 카드’는 고 전 총리의 대권 로드맵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경선을 통하지 않은 후보, 다시 말해 고 전 총리를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정치세력들이 주장하는 영입을 통한 ‘국민 후보 고건’은 공정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나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고건 영입론’ 후폭풍
여권 입각 주자들 강타?

문희상 의장의 ‘고건 영입론’ 발언이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서 나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정치권 인사들의 시선은 여당내 입각 주자들의 행보에 닿아 있다. 그동안 여당 내부에선 입각 주자들의 당 복귀와 관련 현 지도부에 대한 불만까지 겹치면서 조기 전당대회 주장까지 등장했던 터다. 사실 한나라당 일부와 민주당, 심대평 충남지사가 이끄는 신당세력에선 고건 전 국무총리에 대한 영입을 언급하긴 했으나, 여당에선 예기치 않은 ‘고건 신드롬’을 폄하하기에 바빴다.그런데 공식적으로, 그것도 당의장의 입을 통해서 불거진 영입론은 결과적으로 ‘고건 후보’를 인정한 것은 물론, ‘고건 변수’의 영향력을 키워준 셈이 됐다. 이에 김근태 복지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입각 주자들 측에선 문 의장의 계산이 여권 대권 주자들과 무관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입각 주자의 한 측근은 “시간차를 두고 입각한 주자들이 속속 당에 복귀하면 여권내 대권 경쟁은 가시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문 의장의 발언으로 대권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질 개연성을 띠고 있다”고 전했다. 차기 지도자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고 전 총리는 지금까지 야권 후보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문 의장의 언급은 그를 잠재적인 여권 후보 반열에 올려놓은 결과를 낳았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김근태-정동영을 축으로 한 큰 그림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입각 주자의 한 측근 역시 “‘조기’ 당 복귀가 아니라 순수한 복귀”라면서 “역대 어느 정치인 장관도 이처럼 장수한 선례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각 주자들의 복귀와 현 지도부에 불만을 제기한 양 세력들에 대한 문 의장의 언급은 ‘회심의 카드’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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