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공은 철도의 기술 발전이라는 순수한 목적으로 1965년 교통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비영리 법인이다. 하지만 철기공은 설립 당시부터 임직원의 대부분이 특정학교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설계 및 감리 발주처인 철도청 퇴직 직원들의 재취업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재단법인의 특수성과 철도청 직원 출신들을 활용해 설계 감리 부분에서 수십년 동안 독점적 지위와 특혜를 누려 왔던 것. 특히 재단법인은 공익적 기능 수행을 이유로 획득한 실적과 지적재산권 등으로 높은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점수를 통해 철도청 및 철도시설공단 등으로부터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설계 감리 용역을 독점적으로 수주 받기도 했다. 국가기관과 산하 재단법인의 오랜 관행이자 ‘짜고친 고스톱’이라는 업계의 비판도 적지 않았다.
주식회사 전환시 탈법 동원
문제는 2004년 철도청의 공사화와 함께 청산된 철기공이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불법과 편법이 동원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철도청은 비영리 법인인 재단과 영리목적인 주식회사의 성격이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간의 실적과 계약관계를 승계하는 행위를 그대로 승인해 줘 특혜시비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당시 철도청은 감리용역 209억원과 철도시설공단 설계·감리 용역 950억원을 (주)철기공에 승계시킨 바 있다. 철도관련 설계·감리 용역은 대부분 적격심사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설계·감리 업체의 경우 그간의 실적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철도청은 산하 재단법인이 공익을 위해 축적한 실적과 특허 등 적격심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들을 영리를 위해 신설된 주식회사에 승계시켜 (주)철기공이 1년여(2004년 10월이후∼현재) 동안 11건의 설계·감리 용역(210억원)을 수주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특정업체(철기공)에 대한 특혜로 동종 업계에 대한 손해 및 불공정 경쟁체제를 강요하는 편법이라는 지적이다.
국가 귀속재산 편취 의혹
철기공은 또 청산을 앞두고 국가에 귀속될 재산을 편취하는 불법을 자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재단법인의 성격상 잔여재산의 경우 국고에 환수되는 것이 원칙이나 철기공은 재단의 잔여재산 5억9천여만원을 철도청과 공모해 (주)철기공에 승계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철기공은 은행에서 대출받은 50억원 중 30억원을 돈 세탁을 거쳐 핵심임원들의 주식회사 지분납입대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나머지 대출금 20억원은 직원들 특별상여금 형식으로 지급한 뒤 우리사주 납입금으로 사용해 횡령, 배임, 탈세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철도공사측도 자체 감사 결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보고서는 “운영자금이 부족하다는 사유로 은행에서 자금을 단기차입하여 이를 임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으로 지급, 이를 다시 주식회사의 설립자본금으로 납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동 특별상여금은 주식회사로의 법인전환시 설립자본금을 납입할 목적으로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다만 보고서에는 “재단법인이 주식회사로 법인전환한 사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명문 규정이 없는 관계로 이러한 행위가 관련 법률에 위배되는지의 여부와 그외 법적 해석들은 권한있는 별도기관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법적 판단을 유보했다. 하지만 한선교 의원은 “한해 수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재단법인이 그 권한과 지위를 영리법인인 주식회사로 넘기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철도청과 건교부의 묵인과 방조 없이 이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기에 감사당국의 철저한 감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관계자들도 이해당사자들의 고소 고발이 있을 경우 당시 지휘감독 라인에 있었던 철도공사 및 철도시설공단 핵심 인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편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11일 국회 건설교통위 국감에 출석해 이러한 제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 (재)철기공 법인전환 관련 조사보고서 핵심 내용
한국 철도공사는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4일간 (재)철기공과 구 철도청 시설본부(현 한국철도공사 시설사업단)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목적은 (재)철기공이 주식회사로 법인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산, 지적재산권, 사업실적 승계, 자본출연 등에 대한 사실 여부 및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조사대상은 △법인전환시 주무관청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지 여부 △주식회사 출연자본금의 적정 여부 △잔여재산(5억8,900만원) 처분의 적정 여부 △설계·감리 용역 등 사업실적의 승계 가능성 여부 △재단법인 소유 자산 및 지적재산권 등의 주식회사 승계 가능 여부 등이었다.조사결과 철도공사측은 (재)철기공이 재단법인을 해산하고 모든 대내외 권리와 의무, 사업실적 등을 그대로 (주)철기공에 포괄적 승계를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와관련한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법률 위배 여부 및 기타 법적 해석을 유보했다.
하지만 불법 시비를 부추기고 있는 은행 대출금 지분납입금 사용 부분과 감독기관인 철도청의 관례적 승인을 인정해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재)철기공은 2004년 7월 21일 인건비, 관리비 등 추가 운영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철도청에 50억원을 국민은행으로부터 대출받겠다며 승인을 요청했다. 이에 철도청에서는 8월 3일 자금사용계획을 추가로 제출 받아 검토한 결과 8월에 소요될 자금은 인건비 및 일반관리비 등으로 27억8,000만원, 9월에 소요될 자금은 감리현장 전도금 등 7억2,000만원 등 총 35억원이 지출될 계획으로 돼 있어 같은 해 8월 9일 관례적으로 승인하여 준 사실이 있으나 철도청 시설본부에서는 용도외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관리·감독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철기공은 같은해 9월 9일 국민은행으로부터 26억원을 단기 차입해 같은날 회사 보유현금을 포함해 임직원 436명에게 특별상여금으로 33억9,600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특별상여금 중 소득세, 주민세 등을 제외하고 원천징수한 25억7,200만원 중 17억9,800만원은 임직원 436명의 출자금으로 납입하기 위해 임직원에게 지급하지 아니한 채 일괄차인하였다가 같은해 9월10일 (주)철기공의 설립자본금(40억원)으로 전액 납입됐고, 나머지 7억7,400만원은 개인별로 계좌입금하는 방법으로 지급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 인터뷰 (주)한국철도기술공사 장현모 전무이사
적법절차에 따라 승계 “탈법 없었다”
- 한국철도공사가 자체 감사를 실시했는데 조사보고서는 받아 봤나.△ 감사가 진행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 및 보고서 내용은 아직 모른다.
- (재)한국철도기술공사가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권한과 지위, 자산 등을 편법적으로 승계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데.△ 전문기관(서정법무법인, 삼일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아 철도청의 공사화 시기에 때맞춰 관계기관의 협의를 거쳐 진행한 것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승계했다. 절대 임의로 승계하지 않았다. 경쟁업체들의 경쟁심리가 와전되고 왜곡된 것으로 안다.
- 은행 대출금 50억중 30억원이 임원들의 주식회사 지분납입대금으로 사용됐다는 의혹도 있는데.△ 은행에서 대출받은 금액은 26억원이다. 재단법인 청산 과정에서 경쟁업체들이 핵심 전문인력에 대한 영입제의 공세와 일부 직원들이 주식회사로 전환시 강제적 구조조정으로 인한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동요하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다른 용역회사들은 인센티브 등 충분한 보수를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철기공은 임직원에게 충분한 보수를 지급하지 못해 우수한 임직원의 이직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분위기와 임직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법인전환 전인 2004년 9월 부족한 자금 26억원을 국민은행으로부터 일시 차입해 특별상여금을 지급하게 된 것이다.
- 당시 임직원들의 이직 현황은.△ 기술사 등 핵심 인력만 7~8명이 퇴사했고, 법인 전환 과정에서 모두 20여명이 빠져 나갔다.
- 잔여재산 국가 귀속 논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재단법인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민법, 건설교통부장관 및 철도청장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에 따라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절차상 탈법적이라 할 수 없다.
- 국감장에서는 감독기관인 철도청과 건교부의 묵인 내지는 방조 의혹이 제기됐는데.△ 전혀 사실무근이다.
홍성철 anderi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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