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는 2002년 대선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시작된 작년 1월 돌연 해외(미국으로 알려짐)로 출국했으며, 이학수 삼성 구조본 부회장이 특별 사면된 직후인 올 5월 귀국해 그동안 잠적했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삼성측이 의도적으로 최씨를 출국시켰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키 쥔 최모씨 긴급체포
검찰은 최씨를 체포함에 따라 지난 4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들인 김인주 삼성전자 사장(2002년 당시 구조본 부사장)과 이 사건 전반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검찰이 주목하는 부분은 최씨가 당시 사들인 삼성채권 800억원에 대한 매입경로 및 용처부분.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현금화한 채권 중 300억원은 ‘이회창캠프’에, 15억원은 ‘노무현캠프’에, 15억4,000만원은 김종필(金鍾泌) 전 자민련 총재측에 건네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나머지 500억원의 행방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최씨는 검찰이 추적 중인 삼성채권 500억원의 행방을 밝혀줄 핵심 인물이다. 대검 중수부(부장 박영수·朴英洙)는 삼성 채권의 총 규모와 매입 경위 등을 추궁해 작년 대선자금 수사 때 밝히지 못한 채권 500억원의 ‘쓰임새’를 알아낼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최씨는 “2000~2002년 사이 삼성 구조조정본부 박모 상무의 부탁으로 수차례 채권을 사줬으나 총액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검찰은 삼성 채권 500억원 중 수억원대의 채권이 현금화된 사실을 확인하고, 채권의 최종 소지자 등을 불러 채권의 취득 경위와 출처를 조사 중이다.현재 검찰이 추정하고 있는 현금화된 채권의 사용처는 대략 세갈래로 요약된다. 첫째는 또다른 대선 후보들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 둘째는 밝혀지지 않은 제 3의 정치인 혹은 정·관·법조계 유력 인사들에게 로비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 셋째는 그룹 차원에서 내부비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 등이다.또다른 대선후보들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시 대선에 나섰던 후보가 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등 3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정치자금 수사는 마무리된 상황이다. 또 과거 수사에서 이들 캠프에 전달된 자금의 내역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밝혀낸 상황이어서 재수사를 통해서도 별 소득은 얻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재수사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당시 검찰 수사의 부실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검찰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수사결과 정치권 태풍예고
검찰이 500억원의 행방 중 가장 주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정·관·법조계 등 유력인사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다. 삼성측은 대선 직전 현금화시킨 뒤 이를 비축해두었다가 대선이 끝나고나서 정권 실세 등 유력인사에게 주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검찰은 대선 직후 현정권 실세들과 연관된 금품수수 부분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노무현 정권 초기 불거진 안희정씨 사건에 대해서도 다시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수사의 결과에 따라 정치권에는 다시 한번 태풍이 불어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검찰은 이와 함께 채권 중 어느 정도는 현금화한 뒤 그룹 내부에 비축해두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부 채권의 경우 시중에 유통된 사실은 확인됐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채권은 현금화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채권이 사용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미 다른 쪽에 건네졌음에도 수령자가 이를 사용하지 않거나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판도라 상자’의 열쇠를 쥔 최모씨의 입을 주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이건희 회장 소환할까
요즘 검찰의 최대 고민이다. 안기부 도청파일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검찰 안팎의 최대 관심은 이건희 회장의 소환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현재 삼성구조본 이학수 본부장을 소환한 바 있는 검찰은 최근 삼성채권 800억원 구입자로 알려진 최모 전 삼성증권 차장을 체포하면서 김인주 삼성전자 사장을 소환조사했다. 일단 이 본부장은 추가로 소환 가능성이 높으며, 최종 결정은 이건희 회장의 소환문제로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사 과정상 이 회장의 소환문제는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부르자니 뭔가 확실한 카드를 내밀어야 하고, 안부르면 ‘특혜시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 검찰은 ‘안팎곱사등이’ 신세가 되어 있다. 현재 검찰 내부의 분위기는 뭔가 결정적 단서가 나오면 부를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소환하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도청 테이프에 정치자금 전달과정에 이건희 회장의 지시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회장의 행위가 적시되어 있는 것은 아닌데다, 도청에 등장하는 당사자인 이학수 본부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사실을 부인하면 법적인 문제를 따지기가 곤란하다.
당연히 이들 두 사람은 이 회장의 개입의혹을 차단하는 쪽으로 입장을 취할 것이고, 이럴 경우 검찰이 진실여부를 밝혀내야 하는데 이는 쉽지가 않다. 게다가 도청 파일 자체가 불법적인 취득물이므로 수사의 대상에 올릴 경우 나중에 법리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는 것이다.이런 정황을 놓고 볼 때 뭔가 결정적 단서가 나오지 않을 경우 이 회장의 검찰 소환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검찰 내부에서는 정리되는 듯하다. 그러면 검찰은 이 회장을 부르지 않는 대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학수 본부장보다는 홍 전 대사가 총대를 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있다. 홍 전 대사의 경우 오너 일가족인데다, 인물의 비중도 높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진다면 이 회장 구하기는 가능하다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정명필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