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의아해 하는 그의 표정. ‘세일즈 맨’에 대한 나름대로의 편견을 갖고 있던 기자는 매끈한(?)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던 것. 조금 더 걸어가 땡볕아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편안한 느낌을 풍기는 그와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영업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50대 현역 노장 박노진 상무였다.
고객은 사금처럼 방대하게 퍼져있어 만나기 힘들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직업을 ‘사금 채취업’이라고 생각한다는 박 상무. 그를 만나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는 사금 채취업의 기발하고 독특한 노하우를 들어 보았다.
지난해 기준 모두 4110대의 자동차를 판매한 대우자동차 10년 연속 판매왕.
정주영, 이병철 등 성공한 기업인들의 인생을 조명한 MBC ‘성공시대’ 출연자이자 자동차 판매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불리는 박 상무는 뜬금없는 말을 건넸다.
“대형 가전제품백화점에 들어갔더니 휑한 그곳에서 십여 명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인사를 해 당황한 나머지 손님처럼 물건 값만 묻다 나왔습니다. 자동차 판매
업에 뛰어든 후 어느 곳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 당당히 소개해야 하는데 그것을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 동안 대문 노이로제에 걸렸었죠”
그런 그가 상고를 졸업한 뒤 대우자동차 경리부에 입사한 어느 날 영업직 직원들이 자신의 월급보다 훨씬 많이 받아가는 것을 보고 이직을 결심했다는 것.
얼굴이 빨개지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꼭 해야 하는 말을 빼먹을 정도로 내성적인 그에게 자동차 판매원이라는 직업은 왠지 어울리는 구석이 없었다.
“3배 더 일하고 3배 더 벌어 가자라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신문을 보고 호황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선정합니다. 철강업이 호황이면 철강업, 건설이 호황이면 건설업으로, 예전 재래시장 경기가 한참 좋았을 때 그곳에서 100대까지 팔아봤습니다.”
그의 영업 전략은 아주 특별하고 비범했다. 비가 오는 날 가장 바빠진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감수성이 풍부해지죠. 또 밖으로 움직이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런 날 사업체를 방문하면 사장님이나 잠재적인 고객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차 한 잔을 건네받기도 쉽고 평상시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성공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는 고객관리도 철저하다. “한번은 새 차를 고객에게 전달하자마자 차가 흔들린다는 항의 전화가 왔습니다. 분명히 제가 몰고 갔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죠. 저녁 10시 30분에 달려갔더니 정말 차에 소음이 나고 떨림이 감지됐습니다. 공장에서 수리를 하면서 고객으로부터 차에 기름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름통을 확인하자 물이 발견됐습니다. 주유소에서 물을 넣은 기름을 판매했던 거였죠.”
더한 경우도 있었다. 한 정형외과 의사는 차를 출고하기 위해 그와 함께 공장으로 찾아간 자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7대 정도 차를 바꾸다가 결국 구입을 포기했다는 것. 그러나 그는 박 상무의 배려심에 감동하고 며칠 뒤 차를 구입했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6대를 소개시켜줬다.
“1~2년간 공들인 고객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회사의 차로 구입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 날은 한강을 찾아가서 소리를 지르면 속이 후련해집니다.”
그는 한 달에 한번 자신에 대한 ‘신선도 점검’을 실시한다고 한다. 매월 초 전 달 판매기록을 쓰고 실패했던 계약 건에 대한 분석을 실시해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되새김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꼼꼼하고 체계적인 메모 습관은 10년째이며 서랍 안에 그동안 모아둔 수첩으로 가득하다.
“얼마 전 포스코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일을 찾고 있다면 지금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결국 적성이나 보람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다른 곳으로 옮겨도 매한가지이니까요.”
물은 100℃에서 끓는데 영업은 10년 이상해봐야 적성임을 안다는 설명이다.
“후배들에게 항상 좌우지간 기법을 강조합니다. ‘좌우지간 가서, 좌우지간 만나서, 좌우지간 이야기하라.’ 요즘 젊은이들은 학력, 영어, 컴퓨터 활용법 등 못하는 것이 없지만 인내와 끈기가 부족하죠.”
4110대 판매 “다음은 없다” 현재에 최선
또 한가지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단점을 보완하지 말고 장점을 보완하라’이다.
“단점을 보완하면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지만 장점을 더욱 보완하면 뛰어난 인재가 되는 것이죠. 흔한 말이지만 선택과 집중에서 장점을 택해 특별한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자동차 세일즈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며 노익장의 고수이지만 아직도 아침마다 사람만나는 일이 긴장되고 떨린다는 박 상무는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65세의 고객이 있었습니다. 그의 평생소원은 차를 한번 몰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출고돼 기쁜 마음에 연락을 해보았더니 고혈압으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불과 3일 전만해도 정정하시던 분이었는데 다음에 보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 알게 되었다는 것. ‘다음은 없다’
“지금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백은영 about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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