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오후 3시경.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선주자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청와대는 조용했다.
이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각 정당은 물론, 대부분의 예비 대선주자들도 성명을 내고 평가를 했지만 유독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청와대 반응이 궁금했던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대변인실도 “코멘트 할 게 없다”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왜일까. 이와 관련, 정치권 인사들은 청와대의 예측 기류와 달리 이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자 속내가 복잡해진 탓이라고 분석한다. 청와대 안팎에선 올해 대선에서 상대하기 쉬운 상대로 박근혜 후보를 지목하는 경향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 후보의 승리로 보다 철저한 대응 전략이 필요해졌을 것이다. 이에 따라 ‘네거티브의 역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올해 대선에서 전혀 새로운 검증파일이 청와대를 비롯한 범여권에서 돌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연장선상에서 청와대 실무급 인사들이 속속 범여권 유력주자 캠프로 진입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우선, 올해 대선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기류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도 이번 한나라당 경선을 두고 비공식적으로 말들이 많았다. 그만큼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출신 일부 청와대 직원들은 회의석상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대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은 또,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선출된 인물과 12월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누가 승리하는 게 범여권에 유리한지를 놓고도 논의를 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일각서 한나라당 경선 분석(?)
민주신당 관계자들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나라당 경선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했다”면서 “애초에는 지지기반이 공고했던 박근혜 후보가 (승자가) 아니길 바랐었지만 경선이 다가올수록 기류가 이명박 낙선을 바라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전했다.
이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경제 기대심리가 강한데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꺾을 수 있는 네거티브 전략도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을 터다.
반면, 박 후보는 부동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0% 중반의 고정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는 등 보수층을 대변하는 인물로 점철되고 있었다. 진보적 성향의 범여권이 보수를 대변하는 후보와 전선을 형성할 경우,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고 본 것이다.
박 후보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 즉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는 등의 전력을 가진 인물은 범여권에 수두룩하다. 굳이 새로운 전략이나 인물을 띄우지 않더라
고 자연스럽게 50 : 50의 구도로 대선정국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후보는 범여권이 상대하기가 껄끄러운 주자다. 이 후보가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경제계에서 성공한 인물인데다, 국회의원을 거쳤고 서울시장을 통해 성공한 지자체장으로서 평가까지 받았다. 이 후보는 범여권 주자들이 ‘훈장’처럼 달고 있는 민주화운동 전력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범여권은 일찌감치 이 후보를 상대할 새로운 인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8개월 가까이 범여권에서 공을 들여온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중도에 불출마 선언을 했고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사장이 그나마 대선판에 뛰어든 정도다. 물론,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에서 1%대 이하의 인지도를 보인
문 사장이 이 후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결국, 청와대 안팎의 기류는 박 후보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한나라당 이 후보와 관련, ‘매머드급’ 검증 파일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이들이 말한 핵심 검증 사안이 BBK사기사건 관련 내용일 가능성도 있지만, 만약에 그 내용이 아니라면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폭탄’을 숨겨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청와대가 말을 아끼며 이 후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히든 카드’를 갖고 대응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적대적인 감정을 유지해온 청와대가 이 후보 선출에 ‘코멘트’를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언변’이 뛰어난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이 후보에 대해 직접 평가를 할 개연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일각에선 “아무리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대라고 할지라도 축하 멘트 정도는 해 주는 ‘아량’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꼬는 반응을 내놨다.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실무 책임을 지고 움직이던 인사들이 속속 범여권 대선주자 캠프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이 후보를 겨냥한 새로운 검증사안이 돌출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돌출 사안이 불거진다면 지난 2002년 선거와 마찬가지로 물고 물리는 ‘폭로전’이 또 한번 재연될 수 있다.
박근혜측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대선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명박 후보가 약점이 많아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면서 우려감을 피력했다.
범여권 캠프에 ‘전문가’ 속속 진입
범여권 주자들이 일제히 이 후보를 향해 포문을 연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공신인 설훈 전의원이 손학규 캠프의 상황실장에 임명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 후보가 경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6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며 범여권 주자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정권 재창출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범여권과 청와대가 이 후보와 벌일 대충돌만이 남겨져 있다. 여의도 정가는 벌써부터 양측이 벌일 치열한 공방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
고 있다.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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