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상륙작전 2008
인천 상륙작전 2008
  • 이병화 기자
  • 입력 2008-09-17 10:44
  • 승인 2008.09.17 10:44
  • 호수 74
  • 3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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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9일. 한반도가 전쟁의 포화로 뒤덮였던 그때, 미 의회는 도박에 가까운 군사작전을 승인했다. 작전명 ‘크로마이트’(Chromite).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이었다.

상륙 지점은 한반도 서해의 인천. ‘성공확률 5,000분의 1’이라는 냉소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인천에 마지막 승기를 꽂을 작정이었다. 9월 15일 새벽, 1단계 상륙 목표인 월미도에서 상륙작전이 감행됐고 수세에 몰린 아군은 기사회생했다.

그로부터 58년 후. 2008년 9월 9일 오전 10시, 인천 월미도 남서쪽 1.5㎞ 해상에서 역사가 되살아났다. 건군 60주년을 기념해 ‘인천상륙작전’으로 불리는 그 날이 고스란히 재연된 것이다.

해병대 사령부와 인천시의 주최로 열린 행사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시민 등 1천여 명이 함께했다. 실제 병력과 군장비가 투입된 대규모 행사는 노병(老兵)의 눈물이 얽힌 역사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이병화 기자 photolb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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