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를 객토해야 한다는 주장
여의도를 객토해야 한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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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11-30 13:28
  • 승인 2010.11.30 13:28
  • 호수 866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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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스러운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기 전의 대한민국 정치판이 막가고 있었다. 청목회 사건에, 청와대와 총리실 주도의 민간인 사찰 증거를 없애기 위한 대포폰 사용이 드러나고, 각종 정부 산하기관의 횡령사건이 터졌다.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 부인까지를 겨냥해서 아니면 말고 식의 비리를 폭로해 온통 여의도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다.

민주당은 청목회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민주당 의원 측 관계자 3명을 체포한 것을 놓고 ‘무자비한 야당탄압’으로 규정해서 민주당 의원 87명 전원이 자신들에 대해서도 수사하라고 강력 반발했다. 여론 부담을 느낀 민주당이 예산심의를 위한 등원을 전격 결정하면서도 장외 투쟁을 병행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원내외 투쟁을 통해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및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관철시키겠다는 전의에 불타있다.

여권 내부는 또 한동안 화기애애해 보이던 ‘친이’ ‘친박’ 사이가 지명직 최고위원 인선문제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예산국회 파행에 대해 지난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여의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오늘 총리와 전국무위원들이 국회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야당의 방해 때문이다. 여의도 정치는 분명 지력이 다한 것 같다. 이젠 객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객토는 지력이 다했다고 판단한 논밭의 주인이 하는 것이지 오염물질을 잔뜩 안은 토지나 잠시 심어놓은 작물이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정치판을 갈아엎을 주체는 어디까지나 이 땅의 주인인 국민이라는 논란이 당연하게 빚어졌다. 나라 정치를 파행으로 이끌면서 권력만 탐하는 정치인들 몫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다.

더욱 논란을 거세게 한데는 여의도 객토론 당사자가 3년 전에 이미 여의도를 떠났다가 소문난 90° 인사 덕분에 유권자들 맘을 얻어 겨우 국회로 돌아온 처지라는 것이다. 사실 여의도는 1975년 9대 국회에서부터 오늘 18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35년간 3천여 명에 달하는 선량을 배출한 땅이다. 유신시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 선출된 3년짜리 임기부터 6년짜리 국회의원까지 영욕의 세월이 서린 곳이다.

결국 정치권의 흉년은 지기(地氣)가 다한 흙의 문제가 아니라 씨앗의 문제일 것이다. 당초에 좋은 열매를 맺을 씨앗을 골라 심어야 한다. 종자가 안 좋으면 어느 땅에 심어도 토양만 버려놓는다. 정치판 역시 객토에 앞서 종자 개량부터 해야 정치가 바로 설 것이다. ‘객토론’의 심중에 개헌을 위한 정치적 이합집산의 구상이 들어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또한 없지 않다.

이재오 장관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개헌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 특임장관의 임무”라고 강조하며 개헌 공론화에 다각적인 노력을 해온 점을 국민이 다 안다. 만약 이 장관의 ‘객토’ 언급이 청와대와의 교감을 거친 것이면 파장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발언일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인을 기만하는 머슴은 마땅히 쫓겨나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 안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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