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떼가 돌아오는 이 계절에
연어떼가 돌아오는 이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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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11-22 14:36
  • 승인 2010.11.22 14:36
  • 호수 865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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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의 중반을 넘는 시기면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는 연어떼의 귀소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수만리 필생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 연어떼 행렬은 사람들이 쳐놓은 온갖 그물을 피하고 천적의 습격을 헤쳐 나오는 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살아남은 행렬이다. 목숨 건 여정을 거듭하면서 악전고투 끝에 다시 모천(母川)의 남대천 품에 안긴 연어만이 번식의 기회를 얻는다.

통계적으로 1백 마리 치어 기준으로 겨우 한두 마리 정도가 살아 돌아온다고 한다. 모든 연어에게 공평한 번식의 기회를 주지 않는 자연의 섭리가 이처럼 냉혹하다. 연어의 귀소능력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선천적으로 하천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능력을 가졌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후천적으로 어릴 때 익힌 하천의 냄새를 기억하여 회귀한다는 설이다.

인간 귀소본능은 뿌리 찾기와 맥을 같이 한다.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연고주의가 만연해 연줄 따져 줄서기를 능사로 아는 우리 꼴이 얼마나 치사한지는 2년 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가히 교훈적이다. 미국 국민들은 2008년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 미합중국 역사 232년 만에 첫 유색의 흑인 혼혈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우리 정치가 뿌리를 향한 인간 귀소본능을 부추겨 정권 안보에 이용하고, 정권 교체를 시도하고, 정치 지분 확보를 한 수 십 년의 3김시대를 겪었다. 3김시대 폐막과 함께 지역주의 청산이 눈앞에 온 듯 했으나 정치 고차원적인 ‘무호남 무국가’ 론이 지역갈등의 새 불씨를 당겼다. 북한 핵 실험 후 누더기가 돼버린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해 호남결집이 승부수로 던져졌던 바다. 다 죽어가는 북한 김정일 정권을 햇볕정책이 구해냈다는 논란 속에 호남결집만이 햇볕정책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연어떼의 장엄한 귀소 행렬이 장관을 이루는 이 계절에 호남 변화가 일어났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높은 호남 지지율을 두고 갖가지 해석들이 나오지만 ‘호남의 변화’는 사실이다. 야당의 대항마가 정해지기 전의 실체 없는 거품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밑바닥에서 엉겅퀴처럼 끈끈하게 형성되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10.27 재보선 결과에서 봤듯이 광주가 변했고 호남이 변했다.

호남 민심은 이미 정치적 버팀목인 DJ를 대통령으로 배출했고, 경상도 출신의 노무현을 전폭 지지해서 10년 집권으로 호남인의 숙원을 풀었다는 기류에 젖었다. 박근혜 호남 지지율 수직상승 이전에 이미 지난 6.2 지방선거의 한나라당 후보들이 힘든 호남 두 자리 수 득표율에 들었다. 이를 지켜본 호남민심의 분화가 우리 한 뿌리를 자각하고 일부 민심이 박근혜에게로 이동한 것을 결코 단발적 성격이나 일시적인 착시현상으로 볼 수 없다.

어쩌면 차기 대선은 호남의 결기 굳은 민심에 의해 지지리도 못나빠진 지역구도가 찬란하게 깨질지도 모른다. 초겨울 연어떼의 귀소본능이 일깨우는 충격과 설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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