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잃을 것이 없다” 는 자조(自嘲)
“더 잃을 것이 없다” 는 자조(自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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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9-17 10:32
  • 승인 2010.09.17 10:32
  • 호수 856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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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무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답이 다를 수 있겠지만 따져보면 내 육신 외에는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설쳐대는 사람일 것이다. 며칠 전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윤 모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14년 6개월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지난 5월에 출소한 사람이다. 그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왕성한 청년기를 감옥에서 보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사회에 나와서 느낀 감정을 다 유추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자조(自嘲)에 빠져들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법무보호시설에서 생활하며 일감을 못 구하고 자괴감에 방황하던 그의 귀에 들려온 길갓집 가족들의 안락한 웃음소리는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데 저 사람들은 저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가 무자비한 살인의 이유였다.

사회가 선진화 한다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 보장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도리어 이런 측면에서 후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중산층 다수가 빈곤층으로 곤두박질하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됐다. 최근 몸에 걸친 것만 4억원어치라는 소위 ‘명품녀’가 모 케이블 TV에 등장해서 시중 소동을 일으켰다. 하루 세끼 먹는 것 걱정해야하는 빈곤층의 적개심이 오죽일까 싶다.

IMF를 겪으며 신자유주의로 중산층이 붕괴 당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폭 늘었다. 극심한 빈부 격차 속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들의 빈곤이 자신의 무능함이라 여기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예가 많다. 그런가 하면 가졌던 모든 것을 잃고 이제 더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온 세상을 적으로 삼아 제 목숨을 담보로 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불특정 인을 향한 ‘묻지마 살인’이 파리 목숨 취하듯 일어나는 세상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추구에 걸림돌 되는 장애물을 말끔하게 치워줬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갖가지 규제를 풀어주고, 제도를 완화해주고, 법을 폐지하고,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주고, 비정규직을 확대해서 고용수탈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러니 현재의 빈곤이 개인의 무능력한 이유가 아닌 사회의 시스템 때문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때문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가 ‘복지’를 외쳐댄다. 추석연휴 관계로 사흘 앞당겨 오늘(17일) 일요서울 추석호를 내면 실질적인 9일간의 추석휴가를 맞는다. 곧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대가족 상봉으로 기꺼운 웃음소리가 퍼질 터이다.

그러나 이 웃음소리를 몸서리나게 시샘하고 미워하는 바닥 소외층이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웃사촌이 친 사촌보다 낫다는 민심이 옛말 된지는 오래다. 바로 옆집 사람이 죽어나가도 옆도 안 보는 지경이 됐다. 슬픔도 기쁨도 나누지 못하는 이웃, 어느 곳 하나 의지 할 곳 없는 세상에서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눈에는 이 사회전체가 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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