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야구교실까지 스며든 ‘불법 약물’
청소년 야구교실까지 스며든 ‘불법 약물’
  • 황기현 기자
  • 입력 2019-07-08 10:29
  • 승인 2019.07.08 14:15
  • 호수 1314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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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약물 밀수입해 청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직접 주사
이여상 [뉴시스]
이여상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프로야구는 그동안 끊임없는 ‘약물 복용’ 논란으로 여러 차례 홍역을 겪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진갑용이 약물 복용을 고백하며 최종적으로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때는 박명환(두산 베어스)이 국제야구연맹(IBAF)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 ‘2년간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야구협회(KBO) 측은 이들에게 별다른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이후에도 약물 복용으로 적발된 사례는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이 단순 출전 정지에 그쳤다. 어쩌면 이때부터 이번 ‘청소년 야구교실 불법 약물 사태’는 예견돼 있었을지 모른다.

잘못 사용하면 부작용 초래하는 근육 강화제
“프로야구 선수도 투약 의혹” 일파만파

지난 3일 야구계는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야구교실을 운영하며 청소년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투약한 사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날 식약처는 “전직 프로야구 선수 A씨가 약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며 “불법 약물 투여 사실을 훈련일지와 참고인 진술 등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선수가 운영하던 송파구의 한 야구교실에서는 대량의 스테로이드계 약물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민경남 CBS심층취재팀 프로듀서는 “혐의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니 내용이 상당히 무겁고 추가 피해가 우려돼 실명을 밝히기로 했다”며 이 선수가 과거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등에서 활약했던 이여상이라고 공개했다. 1984년생인 이여상은 프로 선수로 활약할 당시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야구 교실을 열고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는 롯데 자이언츠의 고승민, 두산 베어스 송승환이 상위픽을 받고 입단하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불법 약물 투약…“강제” 의혹도

그러나 ‘꽃길’을 걷는 듯했던 이여상의 야구 교실은 이번 불법 약물 투약 사건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민 프로듀서에 따르면 이여상은 어린 선수들에게 약을 권유하고, 판매하고, 투약을 지도했을 뿐 아니라 본인이 유소년 선수들에게 직접 주사를 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 프로듀서는 “이여상은 유소년 선수들의 투약 스케줄을 짠 뒤 투약을 했다”면서 “마치 병원에서 하는 것처럼 주사제를 주사기에 넣어 선수들 엉덩이에 직접 주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혹이 제기되고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야구교실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며 “이여상은 불과 지난 주말까지도 자신이 운영하는 야구단 회원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하고 회비를 받기도 했다”고도 전했다. 불법 약물 투약 의심 선수 7명에 대한 한국도핑방지위원회의 검사 결과 고교 선수 2명은 금지약물 양성 확정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5명은 아직 도핑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양성 확정 판정을 받은 선수의 아버지 A씨는 사건이 불거진 후 “이씨가 KBO총재, 김 모 전 감독 언급도 하고 정치인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도 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주사 맞기 싫다는 아이에게 이씨가 자꾸 (주사를) 권했다”며 “처음에 주사를 맞은 아이가 아파서 걷지도 못할 정도였는데 (이씨가) 엄살이라며 소염진통제 먹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씨는 거부 의사를 밝힌 유소년 선수에게 금지 약물 투약을 강요한 셈이 된다. 이렇게 이씨가 챙긴 돈은 1년 간 무려 1억6000만 원에 달한다. 이씨가 “내가 복용하려고 구입해 보관하고 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구속을 피하지 못한 이유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란?

이씨가 유소년 선수들에게 주사한 약물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남성호르몬 등이다. 이 중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남성 호르몬 합성 유도체로 단백질 합성을 자극해 근육 크기 및 신체 질량, 근력 향상 등의 효과를 나타낸다. 신체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운동 선수에게 아주 매력적인 약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효과 때문에 스포츠계에서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부작용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복용자 중 60%가량이 짜증과 공격성이 증가하는 등 심리적인 변화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심혈관계와 내분비계, 비뇨 생식기, 피부, 간, 근골격계 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혈압이 상승하거나 심근 기능이 저하되고, 발기 부전 및 정자 수치 저하에 따른 일시적 불임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탈모도 발생하며 심각한 경우에는 간 종양 및 간 손상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조기 골단판 폐쇄와 힘줄 파열 위험 증가는 물론 근육 내에 증기가 차기도 하는 등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서울에서 비뇨기과를 운영하고 있는 의사 A씨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사용하게 되면 실제로 ‘고자’가 되기도 한다”며 “반드시 의사의 지도하에 필요량만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씨가 이처럼 위험한 약물을 유소년 선수에게 투약한 것은 선수들의 미래가 아닌 야구교실의 운영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말 선수들의 장래를 생각했다면 눈앞의 성적보다는 제대로 된 훈련 과정을 거치게 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프로 야구 선수까지?” 의혹 일파만파

청소년 야구교실에서 시작된 이번 파문은 프로 야구계까지 번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채널A 보도에 따르면 식약처는 이번 스캔들에 프로 선수들도 연루됐을 것으로 보고 조사에 나섰다. 대상은 이여상의 야구 교실을 통해 프로 데뷔한 고승민과 송승환이다. 식약처는 “‘두 선수에게도 불법 약물을 제공했다’는 이여상의 진술을 확보했다”며 이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당 선수들은 구단을 통해 약물 복용 사실을 적극 부인한 상태다.선수협회도 “해당 선수들에게 확인한 결과 두 선수는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은 뒤 기술 훈련을 하고자 A씨의 훈련장을 찾았을 뿐”이라며 “해당 선수들을 지도해 프로 지명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던 A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동안 프로 야구계는 여러 차례의 약물 스캔들에도 금지약물 적발에 대한 독자 제재 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 역시 금지 약물에 관대한 야구계가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로 스포츠에서 금지 약물은 가장 중대한 범죄다. 이여상에 대한 사법 처리 결과와 더불어 프로 야구계의 대응에도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황기현 기자 kihy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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