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敎權) 막장시대』
『교권(敎權) 막장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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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5-06 11:11
  • 승인 2010.05.06 11:11
  • 호수 836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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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이 달엔 8일 어버이날과 함께 15일 스승의 날이 들어있다. 얼마 전 전교조 관련사항의 공무원 시험문제 출제 말썽에 이어 전교조 교사 명단공개로 온 사회가 시끌시끌했다. 국가 백년대계 걱정이 태산같이 일어났지만 나라 교육에 대한 걱정은 백번을 해도 성가실 게 없다.

‘자식을 보기엔 아비만한 눈이 없고 제자를 보기엔 스승만한 눈이 없다’고 했다. 낳아서 길러준 부모의 은혜는 두말할 것 없이 귀중 하지만, 사람 되라고 가르침을 준 스승의 은혜 역시 이에 못지않다는 것이 우리 전통적 정서였다. 우리사회가 교사들을 학부모와 똑같은 권한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통용함으로써 교사가 가한 꾸지람과 매를 ‘내 자식 잘되라고 한 일’로 여길 수 있었다.

학생들은 부모이상으로 선생님 말에 순종하는 풍토였다. 교사들 역시 열악한 여건이지만 학생을 가르친다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세상이 변해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는다’는 식까지는 아니어도 학생은 모름지기 선생님 말씀을 따랐다. 이런 사회적 불문율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교사들이 달라졌다. 수업태도가 불량해도 학생을 꾸짖기 꺼려하고, 교내생활이 불량해도 차라리 못 본 체 하는 지경으로 변해갔다.

자칫 벌이라도 세우고 매라도 들면 부모들이 난리를 쳤다. 그 자식들은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고사하고 담임선생을 폭행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학부모에게 멱살잡이를 당하고 얻어맞기까지 하는 교사들, 좋아진 교육여건이 무슨 소용이던가. 부모들의 자식 과잉보호 사상에 교권을 짓밟힌 일부 교사들이 스스로 교사이기 이전에 노동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지는 아이들에게 ‘스승상’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 판에 ‘개혁’이란 이름으로 스승을 벌거벗겨 무력화시킨 과거정권의 무모한 실험이 ‘교권막장시대’를 만들고 말았다. 교권수호에 앞장 서야할 그 잘난 교육단체들이 왜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가 돼야했는지 궁금하다. 교권은커녕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며 교사들을 몰아세우기 바빴던 그들 모습 아니었나?

교권은 학생에 대한 교사의 우월적 지위를 말함이 아니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소신에 의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 본연의 권리를 의미한다. 교권이 흔들리면 교육이 바로 설 수 없는 이치는 자명하다. 사도(師道)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그리스 신화가 있다. ‘키프로스의’왕 ‘피그말리온’은 독신주의를 고집하며 오로지 조각에만 정열을 바친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한다. 그러다 서서히 형태를 드러낸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다. 간절한 사랑은 여신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움직여 드디어 차디찬 조각상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란 바로 이 기적 같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교사의 힘’을 말한다.

교사가 아이들에 대한 열정과 기대가 높을수록 아이들은 그만큼 성장하기 마련이다. 학부모가 교사 멱살을 잡고 제자가 스승을 능멸한다면 어떤 교사도 ‘피그말리온’ 되기를 원치 않는다. 교사들의 교권을 법 규정 형태로 명문화 시킬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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