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북한에 두 번째 놀아나는가
빌 클린턴, 북한에 두 번째 놀아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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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8-11 09:45
  • 승인 2009.08.11 09:45
  • 호수 798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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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중인 두 미국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4일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다음날 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특별사면”를 받아 두 여기자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전개될 미-북관계가 주목된다. 미 국무부는 클린턴의 평양 방문이 “미국인의 석방을 위한 순전히 개인적인 임무”라고 축소했다. 그에 반해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미-북간의 “공동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해 폭넓은 의견 교환이 진행됐다.”고 확대하였다. 북한은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정일에게) 전달했다.”며 김정일은 그에 “사의를 표하고 진지한 담화를 했다.”고 발표하였다. 북한은 미국과 정부 대 정부의 공식 대화가 시작된 것처럼 호도했다. 미국측이 클린턴의 방북을 정부와 무관한 “개인적인 임무”이고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도 없었다고 부인한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 북한과는 아직 1대1로 직접 대화에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는한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설 수 없고 6자회담 틀내에서만 접촉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북한은 연이은 미사일 실험발사와 핵무기 지하 실험으로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있으며 고립무원한 상태에 빠져있다. 바로 이 때 북한은 여기자 석방을 미끼로 클린턴을 평양으로 불러들임으로써 미국이 머리숙이고 들어온 것 처럼 전 세계에 연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뿐만아니라 북한은 남한도 미국처럼 북에 고개숙이고 들어와야 한다는 분위기를 띄울 수 있었다. 그밖에도 북한은 대내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클린턴이 “김정일 장군님”의 통큰 영도력 아래 무릎꿇었다고 선전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도 얻은 것은 적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의 김대중”으로 여기던 클린턴을 내세워 억류중인 여기자들을 빼냈다. 클린턴은 재임시절 북한에 유리한 ‘미-북제네바합의’에 서명해주었다. 그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했고 곧이어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들여보내 김일성 묘에 참배케하였다. 클린턴은 2000년말 북한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각본대로 잘도 놀아났었다. 하지만 그의 방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

김정일에게 클린턴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만만한 존재였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강경노선을 취하자, 김정일은 부시가 클린턴 수준의 친북으로 끌려와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 10월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북 대화재개는 “부시 행정부가 최소한 클린턴 행정부의 마지막 시기에 취했던 입장 수준에 도달해야 논의될 수 있는 문제”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을 내세워 12년의 징역형을 받은 여기자들을 석방시킴으로써 외교적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북한은 클린턴을 끌어들여 여기자들을 석방시킨 댓가로 미-북 직접대화의 고리로 묶으려 기도할 게 뻔하다. 오바마 정부는 클린턴이 집권시절 그랬던 것 처럼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서서는 안되고 북한에 퍼주며 끌려다녀서도 안된다.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 국무장관이 그동안 당차게 밀고온 것 처럼 북한이 핵폐기를 확실히 하지않는한 1대1로 직접 대화에 나서서는 안된다. 빌 클린턴 처럼 북한에 두 번 다시 놀아나서는 안된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남편의 실패를 교훈삼아 당찬 대북압박을 변함없이 밀고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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