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아니라 북한은 남한도 미국처럼 북에 고개숙이고 들어와야 한다는 분위기를 띄울 수 있었다. 그밖에도 북한은 대내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클린턴이 “김정일 장군님”의 통큰 영도력 아래 무릎꿇었다고 선전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도 얻은 것은 적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의 김대중”으로 여기던 클린턴을 내세워 억류중인 여기자들을 빼냈다. 클린턴은 재임시절 북한에 유리한 ‘미-북제네바합의’에 서명해주었다. 그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했고 곧이어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들여보내 김일성 묘에 참배케하였다. 클린턴은 2000년말 북한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각본대로 잘도 놀아났었다. 하지만 그의 방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
김정일에게 클린턴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만만한 존재였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강경노선을 취하자, 김정일은 부시가 클린턴 수준의 친북으로 끌려와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 10월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북 대화재개는 “부시 행정부가 최소한 클린턴 행정부의 마지막 시기에 취했던 입장 수준에 도달해야 논의될 수 있는 문제”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을 내세워 12년의 징역형을 받은 여기자들을 석방시킴으로써 외교적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북한은 클린턴을 끌어들여 여기자들을 석방시킨 댓가로 미-북 직접대화의 고리로 묶으려 기도할 게 뻔하다. 오바마 정부는 클린턴이 집권시절 그랬던 것 처럼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서서는 안되고 북한에 퍼주며 끌려다녀서도 안된다.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 국무장관이 그동안 당차게 밀고온 것 처럼 북한이 핵폐기를 확실히 하지않는한 1대1로 직접 대화에 나서서는 안된다. 빌 클린턴 처럼 북한에 두 번 다시 놀아나서는 안된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남편의 실패를 교훈삼아 당찬 대북압박을 변함없이 밀고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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