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신도 그렇지만 친박도 넘어야 할 과제가 많은데 그들을 아무리 끌어안으려 해도 도무지 다가오질 않는다는 불만을 피력했다. 이런 말속에는 아직까지 자신이 2인자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냄새가 강하다. 이 전 의원은 지난 총선 공천을 앞둔 시점에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면서, 후보 낙마나 교체를 염두에 두고 화합과 승복을 내세우는 것은 구태라는 표현을 썼었다.
당내 비주류와의 화합을 깨는 ‘친이계’의 공천 독식은 이때 예고 됐었다.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MB가 직접 나서서 “이재오를 비난함은 곧 나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뒤를 받쳤다. 이 무렵 이재오 의원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재오 중심의 이 기고만장함이 공천 탈락 후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 박근혜 인사들을 대거 당선 시킨 점은 삼척동자가 아는 일이다.
이 바람에 이 전 최고의원과 더불어 이방호 전 사무총장과 함께 날려간 ‘친이계’ 실세들은 오직 박근혜 열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이들에겐 지금 박근혜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되고 있는 사실이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지율 20%대를 넘지 못하는 거대 식물정당의 몰골이 두렵기만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치 못하고 벌써 당 대표자리라도 꿰찬 듯이 친박 끌어안기와, 친박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는 이재오 발언에 조소가 느껴진다.
이재오 때문에 한나라당이 또 싸움판이 될 공산이 짙다면 어느 국민이 그의 정계 복귀를 바라겠는가, 국민이 겨우 5년 안팎의 지난 일들을 깡그리 잊어 먹었을 것이라고 보면 국민을 너무 얕보는 처사다. 5년 전 2004년의 4.15총선 전야는 탄핵역풍을 맞아 한나라당이 고사(枯死)직전이었다. 만약 박근혜의 필사적인 수도권 지원유세가 없었다면 당시 서울 ‘은평 을’에 출마한 이재오의 당선은 절대로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이 총선 석 달 뒤의 2004년 7월 16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불과 사흘 앞두고 “독재자의 딸이 당 대표가 되면 당이 망한다”는 저주를 퍼부었다. 그 후 2006년 7월에 당 대표최고의원에 도전했던 그는 박근혜의 지지를 얻은 강재섭 의원에게 패하고 만다. 다시 1년 후인 2007년 대선 과정에는 이명박 캠프의 원내 수장 격으로 나타나 박근혜를 경선에서 누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1등공신이 된다.
이후 공천 칼자루를 잡은 이재오의 당내 위상은 제 2인자로써의 화려한 ‘군림’이었다. 이 과정이 그가 박근혜와의 대결에서 1:1 무승부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는 근거다. ‘삼세판’을 주장하는 이재오 전 의원이 꿈이 무엇이건 간에 이재오 정치의 재개에 대한 국민 인식이 우호적이지 못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안 그래도 현실정치의 식물 여당 신세를 겪고 있는 한나라당에 그가 또 하나의 바윗덩이만한 등짐을 지우지는 말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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