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길들이는 힐러리 클린턴
김정일 길들이는 힐러리 클린턴
  •  기자
  • 입력 2009-07-07 10:37
  • 승인 2009.07.07 10:37
  • 호수 793
  • 1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북접근이 단호하고 강경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2차 핵폭탄 실험에 대한 응징및 제재조치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1874호를 6월11일 관철시켰다. 그는 이어 6월16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후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의 패턴 (북한의 협박에 보상하는 형태)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계속해서 위협하면 중대하고 심각한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6월30일 오바마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과 관련된 북한 무역회사와 이란 소재 기업에 대해 재산 동결및 금융거래 금지조치를 취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경책에 대해 한국의 민주당은 불만을 토로하였다. 민주당은 오바마가 “기대와는 달리 뭔가 이상하다.”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누가 그런 (봉쇄와 압박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불평 하였다.

오바마의 “그런” 압박정책을 밀고가는 주인공은 다름아닌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 국무부장관이다. 클린턴이 주무장관이며 그동안 김정일에 관해 공언한 대목이나 대북정책에 대해 피력한 기록들 그리고 그가 살아온 배경 등을 상기하면 그렇다.

클린턴의 조상은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 광부로 일하던중 1880년대 미국 펜실바니아 주 스크랜턴 시로 건너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학 시절 미식 축구를 즐겼다. 힐러리는 자서전 ‘삶의 역사’에서 아버지가 살던 공업도시 스크랜턴은 벽돌공장, 방직공장, 광산, 철도, 목조 연립주택이 들어선 무미건조한 곳이었다고 회억하였다.

힐러리는 어릴때 할아버지가 위놀라 호수가에 손수 지은 별장에서 여름방학때 마다 들려 낙시와 총 사격연습에 빠져들곤 했다. 클린턴은 강직하고도 엄격하며 스포츠를 즐기는 아버지에게서 강인함과 도덕성을 체질화 했다. 그녀는 예일대학 법학대학원을 나와 빌 클린턴 당시 동문과 결혼해 미국에서 성공한 100대 변호사 대열에 들었다.

클린턴의 성장과정을 감안하면, 그가 대북 강경책을 밀어붙이게 된 동력을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일과 같이 합의한 문서 짓밟고 조직폭력배 처럼 공갈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며 핵무기나 개발하는 “악의 축”에게는 끌려다닐 수 없다는 강인함과 도덕성이 그것이다. 실상 클린턴은 상원 의원 시절 김정일을 가리켜 “10대 깽단 두목 같다.”고 공언하였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클린턴은 “10대 깡패 두목” 김정일을 상대하는데는 압박 밖에 없다는 기본 원리를 깨달은것 같다. 그래서 클린턴은 지난 2월 국무장관으로 서울을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에 경고부터 하고 나섰다.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을 비난함으로써 미국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얻을 수는 없다.”며 북의 통미봉남(通美封南)책동에 쐐기를 일찌감치 박아놓았다.

이어 그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 북한이 “스스로 깊은 무덤을 파고있다.”고 5월 일갈했다. 그밖에도 그는 북한을 회유하기 위해 북한에 갈 용의가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나는 북한에 갈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외교적 성과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일과 만나 언론의 곽광이나 받는 쇼는 벌이지않겠다는 깔끔한 성격 표출이었다. “10대 깡패 두목”으로 지목된 김정일의 버릇을 고치는 방법은 봉쇄하고 압박하는 길 밖에 없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자로서 역대 미국 남자 대통령들이 실패한 김정일 길들이기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의 곧은 의지를 꺽지말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中道)”니 뭐니 하며 흔들리지 말고 그 당찬 여인에게서 김정일 길들이기를 배워야 한다.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