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당혹’의 여파
‘충격과 당혹’의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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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6-02 09:13
  • 승인 2009.06.02 09:13
  • 호수 788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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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충격과 분노로 뒤범벅돼 정신 차릴 겨를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사건이 세계적인 뉴스 초점이 된 가운데 북한은 또 2차 핵시험을 일으켰다.

북한은 “이번 시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2006년 10월 1차 시험에 비해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됐다”고 했다. 26일 새벽 유엔 안보리가 소집되고 이에 앞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대량 살상무기와 운반수단의 추구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에 수용되는 방법을 찾지 못 할 것이며 북한의 위협적인 행동에 의한 위험은 국제사회의 행동을 정당화 시켜준다”고 말해 유엔 차원의 제재를 추진할 것을 분명히 했다.

이런 때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충격에 푹 빠져있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에 의한 사회적 동요와 추종 자살에 대한 우려감이 높다. 베르테르 효과는 자신이 추종하거나 존경하던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기를 끈 18세기 말 유럽에서 베르테르를 흉내 낸 모방 자살이 급증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유명 탤런트 등 상징성이 강한 공인이 자살하면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그런 스타도 자살하는데 나는 왜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불과 1년 몇 개월 전까지 대통령 했던 사람도 자살했는데 나 같은 게 살아서 뭐하겠느냐’는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 모방 자살이 크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존경하거나 추종하는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인간 심리적 문제이다. 이런 심리에서 벗어나자면 충격을 이겨내고 당혹한 마음을 속히 정리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이 합리화 될 수는 없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미화되고 작년 소고기 파동 때의 촛불집회 같은 대규모 시위라도 벌어지면 이 나라는 최악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

불안한 정국 탓에 해외 자본이 모두 빠져나가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더 어렵게 할 것이 틀림없다. 또 순수한 시민운동이 다시 정치적 이용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후폭풍이 불어 닥치면 대한민국 60년 역사는 60년 전의 초기 역사로 되돌려지는 비극을 초래케 될 것이다. 이는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살아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국가 이 민족의 장래에 대해 끝없이 걱정했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고 당혹감이 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진정 뜨겁게 이 나라를 사랑한 지도자였다면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의 무거운 책임과 권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자살의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원망이 없지 않다. 한 국가의 전직 대통령이 자결을 선택할 때는 나라가 망해서 국권이 짓밟혔을 경우, 숭고한 의미를 부여받을 것이다.

권한과 권력과 권세를 행사하다가 권좌에서 물러난 후 잘못된 일의 법적 책임 공방을 빚는 등 극적 상황변화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것은 애도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적어도 미화 될 일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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