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관계를 강타하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는 여야 정치권을 가리지 않을뿐더러 현 정권의 청와대 전 비서관과 현직 검찰 간부까지 망라돼 도무지 파장의 끝이 보이지 않는 형세다. 또 ‘고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수많은 억측이 난무하는 마당이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것만으로도 혼란 그 자체이다. 이를 공개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부터가 혼란 투성이다. 이 두 가지 리스트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공통적이긴 하나 성격은 현저히 다르다. 하나의 것은 ‘돈’이 변수지만 다른 하나의 것은 ‘성’이 변수다. 물론 공통의 관건은 어느 쪽이 됐던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의 하는 점이다. 이는 수사의 종말을 지켜봐야 할 문제다.
또한 우리가 공통으로 우려케 되는 것은 ‘은폐’의 변수이다. 얼마 전 우리는 민노당의 성폭행 은폐사건이 뉴스의 초점이 된 것을 지켜봤다. 이때 우리는 왠지 약자일 것 같고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것 같았던 민노당의 처신에 대해 무한한 실망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약자로 보인 민노당의 은폐 변수가 그 정도로 작동했는데, 하물며 무소불위의 힘 있는 정권과 돈 가진 쪽의 축소 은폐 변수는 가늠조차 힘들다.
이런 은폐나 축소의 변수가 나타남은 거의 전반적 국민들이 리스트의 진실을 모르고 있는 세상 이치 때문이다. 비단 ‘돈’과 ‘성’에 대한 문제뿐이 아닐 것이다. 위선과 이중성은 언제나 은폐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돈’과 ‘성’문제에서 권력관계가 무서운 것은 대가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 주위에서는 이에 적극적인 인사가 생겨나는 속성이 있다.
이번 ‘돈’과 ‘성’에 얽힌 두 가지 사건만 보더라도 다른 다양한 권력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서 수사 진척을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권력관계 사리에는 도가 터져있는 우리 국민들이다. 특히 우리는 권력관계 수많은 상황에서 침묵을 강요받은 경험이 무수히 많다.
괜한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가장 먼저 자신이 불리해 질 것이란 계산에서 버젓한 사실마저 침묵으로 흘려보내야 했었다. 이 권력의 법칙은 앞으로도 율법처럼 존재할 것이다. 박연차 리스트는 ‘돈’의 권력관계가 정권이 바뀜으로 해서 역전될 수 있는 정치적 권력관계다. 그에 비해 장자연 리스트의 ‘성’에 관한 권력관계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권력관계로 정권에 의한 역전극은 일어날 수 없다.
차이는 또 있다. ‘박연차 리스트’라는 것은 박연차 씨가 검찰에서 진술했거나 수사 정황에 잡힌 인사들을 통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박연차 리스트’는 사실상 실체가 없는 셈이다. 반면 ‘장자연 리스트’는 분명 KBS가 사전 입수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고 장자연씨 필적과 동일하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문건에는 실명과 직책이 또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두 가지 리스트가 함께 춤추는 것은 MB측근의 유력인사가 금품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나 유력언론사 대표가 성 상납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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