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일요서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편지와 내용증명으로 여러차례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면서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부부측은 김씨의 주장이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추천서 매입을 지시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김씨의 소송에 맞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기자가 고소자인 김명동씨를 만난 것은 지난 25일. 대전 IC 인근에 위치한 김씨의 집에서였다. 기자를 만난 김씨는 대뜸 “남이라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만큼 앙금이 크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음은 김씨가 주장하는 당시 상황.시계바늘은 지난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 선거 당시 김씨는 노 전 대통령의 대전지역 선거운동을 총괄하다시피 했다. 김옥숙씨의 오빠인 김복동 전 의원(작고)이 안동김씨 종친회에서 “대전은 명동이가 있으니 안심”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을 정도였다는 것.“여의도 유세 때만 되면 버스를 대절해 필요한 인원을 날랐다. 안동 김씨 종친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도 여러차례 주최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김복동 전 의원이 ‘그런 말까지 했겠습니까.”특히 김씨는 추천서를 받기 위해 서울, 경기, 충청도, 심지어 전라도와 경상도 등 안가본 곳이 없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입당원서입니다. 당시만 해도 이 추천서는 5,000~1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을 돌며 1만3,000장에 달하는 추천서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다 알아서 할테니 우선은 추천서부터 구입하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나간 돈이 5,000만원이 넘습니다.”그러나 김옥숙씨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에서 마련한 만찬에 초대된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친인척을 배제한다는 노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라 행동반경을 철저히 제약당했다. 그가 해왔던 건설업도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점 때문에 사업이 제한됐다는 것. “그 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수십 채씩 공사를 맡아 왔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노 대통령과 옥숙 누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 참았습니다.”물론 로비가 안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취직 문제와 같은 민원성 부탁에서부터 법적 문제와 같은 청탁성 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 부부의 처분만 기다리며 참아야 했다.
“98년 정도로 기억합니다. 홍무경 여사(김옥숙씨 모친)의 장례식장인 경북대 병원에서 옥숙누님을 만났습니다. ‘너 손해본 것 많은 지 알고 있다’면서 조만간 연희동으로 찾아오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막상 연락을 하니 보좌관들이 전화만 받고 전해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는 사이 빚은 점점 불어났다. 이자가 이자를 낳아 결국은 살고있는 집까지 담보로 잡혀야 했다. 김씨가 노 전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솔직히 옥숙 누님은 친척 아닙니까. 흠 잡아서 저한테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속 모르는 친구들은 그동안 ‘이 기회에 한몫 챙기라’면서 놀려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옥숙 누님에게 누가 될까 싶어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식이 없어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죠.”노 전 대통령 부부도 최근 법적 대응에 나섰다.
두 사람은 지난달 16일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에 사건을 위임했다. 변론을 맡고 있는 우일아이비씨측은 답변서에서 “원고가 자신의 돈을 들여 피고들을 위해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다면 이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면서 “피고들은 원고들에게 이같은 선거운동을 하도록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우일아이비씨측은 특히 왜 17년이 지난 지금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변론을 담당한 서영석 변호사는 “소송 대상인 시점은 피고(노태우 전 대통령)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지난 1988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의 일이다”면서 “그동안 조용히 있다가 왜 지금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는지 저의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본인이 잘못한 것을 이제와서 왜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우는지 모르겠다”면서 “(김옥숙씨가) 지시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사법 당국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률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의 경우 추천서 매입 등 선거법과 관련되는 부분은 이미 시효가 만료된 상태여서 더 이상 법률적으로 문제삼을 수 없지만, 민사상 재산 손실(명백한 자본대여 등)에 대한 부분은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견해이다. 예를 들면 노 전 대통령측의 요구에 따라 금전적 제공을 한 증거가 있다면 이 부분은 시효에 상관없이 소송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 부분도 민법상 15년의 시효가 적용될 수 있지만 중간에 김씨측에서 반환을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시효정지를 가져올 만한 법률적 행위를 취했을 경우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부부 입장
노 전 대통령측의 한 측근은 지난 2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관련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김씨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라면서 “개인돈을 들여 추천서를 받았다면 명백한 선거법 위반인데 뭣하러 이같은 사실을 지시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김씨가 소송을 건 저의에 대해 의아해 했다. 그는 “김씨가 선거운동을 한 때는 88년 전후로 이미 17년이나 흘렀다. 그동안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가 이제와서 이같은 문제를 끄집어내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모든 내용은 사법당국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변론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측도 비슷한 의견이다. 우일아이비씨측은 “원고에게 대통령 선거운동을 해달라고 한 사실이 없고, 원고가 선거운동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면서 “이 사건은 원고가 황당한 사실을 꾸며 주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 “남이라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
김 명 동 일문일답김명동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옥숙씨에 대해 꼬박꼬박 “옥숙 누님”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에 맺힌 것이 정말 많다”는 말로 현재의 심경을 내비쳤다. 김씨는 특히 사과상자에 보관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을 때는 ‘배신감’마저 느꼈다고 토로했다.
- 노 전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87년 대선 당시 추천서 매입자금과 활동비로 진 빛을 받기 위해서다. 당시 전국을 돌며 1만3,000여개의 추천서를 받았다. 이 때 쓴 돈이 수천만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다. 안동김씨 종친회 등 행사를 개최하면서 상당액의 사비가 들어갔다.
- 노 전 대통령측은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그렇지 않다. 선거운동 당시 전국을 돌며 받은 추천서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
- 김옥숙씨와는 친척 관계인데 껄끄럽지 않나. ▲ 왜 안그렇겠나. 그동안 수백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지난 98년 홍무경 여사(김옥숙씨 모친)의 장례식장인 경북대 병원에서 옥숙 누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너 손해본 것 많은지 알고 있다’면서 조만간 연희동으로 찾아오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막상 연락을 하니 보좌관들만 전화를 받을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 집이 경매 위기라고 했는데. ▲ 그렇다. 대선 직후 진 빚을 갚지 못해 집을 담보로 잡혔다. 이에 대한 이자가 이자를 낳아 조만간 경매에 들어갈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집문제만이 아니다. 당시 후유증으로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 직접 일을 해서 벌 생각은 못했나. ▲ 사정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수십채씩 공사를 맡아왔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친인척을 배제한다는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라 행동반경이 철저히 제한됐다. 물론 로비가 안들어온 것은 아니다. 취직 문제와 같은 민원성 부탁에서부터 법적 문제와 같은 청탁성 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가 노 대통령과 옥숙 누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 참았다. 오히려 대통령 측근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녔다.
- 사례를 말해달라. ▲ 대통령 당선되고 얼마 안됐을 때 일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동생이 이곳에서 대규모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린벨트로 묶여 공사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공사를 막은 적이 있다. 뿐만 아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다.
- 노 전 대통령측에서 변호사를 선임했다. ▲ 이 부분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다. 변호사 선임할 돈으로 빌린 돈을 갚았다면 이와 같은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석 suk@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