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째 좀 잠잠해진가 싶더니 설 명절을 지나자마자 북한당국이 결정타를 날려 좌파세력 진무에 나섰다. 그동안 남북한 사이에 맺어진 모든 정치, 군사적 합의가 무효라고 선언 해왔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일방적 퍼주기로 이끌어 냈던 이른바 6.15선언, 10.4선언 등이 일거에 물거품 돼버렸다. 북한이 이런 식으로 일방적 파기를 할 때를 대비한 어떠한 규정도 있을 리 없다.
정상적 합의라면 합의를 어기는 측에 대한 벌칙 및 보상조항이 들어있어야 마땅했다. 이런 것 없이 상대의 선의에만 기대하는 계약은 전혀 구속력 없는 전시효과만 냈을 뿐이다. 실제 6.15선언에 담겨있는 약속들은 김정일의 서울 답방 거부와 핵실험에 의해 깨진지가 오래다. 그런 북한이 합의를 깨고 나오는 이유를 김대중씨 말대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
이같이 북한정권과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각이 일치하는 데는 뭔가 좌파적 행동강령이 서있는 것 아니냐는 긴장감마저 돋는다. 그동안 6.15선언 전문에 헌법정신을 위배한 연방 혼합제 통일방향 합의 조항이 담겨있어 국가보안법의 상당부분이 사문화된 상태였다. 이 선언 이후에 연방제 주창자들이 방치돼 온 마당이다. 드러내놓은 친북성향 발언이 국론을 갈라놓은 지경이다.
이래도 우리정치권은 한반도에서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왔다. 이념무장을 스스로 해제한 정부가 무슨 방법으로 준동하는 좌익세력을 이겨낼 수 있을지 한탄만 스럽다. 공안사범에 대한 강력한 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봄에 좌파 춘투(春鬪)의 속도전이 불붙을 전망이다. 또 북한이 1991년 12월 13일 합의서명하고 1992년 2월 19일 발효키로 한 이래 한 번도 지켜진 적 없는 남북 기본합의서를 새삼 폐기하고 나선 배경이 주목 된다.
이는 서해상의 NLL 합의를 무효로 한 서해 5도에 대한 도발 위협에 틀림없다. 지금 시시각각으로 남쪽 눈치를 살필 단계다. 만약 남한 정부가 대화하자고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내부 균열이 일어나면 이를 호기로 삼아 더욱 남쪽을 깔보고 덤벼들 것이다. 때문에 정치 군사관련 합의의 무효화 운운한 북의 벼랑 끝 전술에 우리는 보다 의연할 필요가 절실히 있다.
우리 헌법 제6조에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해 놓았다. 그에 입각하여 우리는 북한이 비록 ‘외국’은 아니더라도 북과의 합헌적인 합의사항은 성실히 이행해서 지켜온 바였다.
그러나 북쪽 상황은 딴판이다. 북한 헌법조차 김일성 헌법으로 명명하여 김정일 정권의 사문서 정도로 취급된다. 북을 지배 영도하는 조선노동당의 정체 또한 김일성 일가의 사유물에 불과하다. 이런 집단에게 협정을 준수하고 합의사항을 지키라고 말 할 수는 없다.
한반도의 이념시대를 도저히 끝낼 수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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