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이 나라 정치권 모두는 국민 앞에 얼굴 들 수 없을 만큼 패자(敗者)였다. 망치와 전기톱, 해머 등에 의해 국회의사당이 박살났던 참사는 건국 초기 제헌국회 이전의 무법천지 하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처럼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켜놓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민주당에게 국민이 어떤 표현을 했는지는 말이 필요치 않다.
한나라당이 여당으로서의 원칙도 지키지 못하고 수적 결속도 지리멸렬했던 무기력함과 무능은 ‘설 민심’ 속 가장 큰 공박 대상이었다. 아무리 후한 눈으로 봐도 싹이 노랗다는 것이다. 지금 여당 하는 사람들 입만 열면 ‘경제’ ‘경제’ 하지만 이 정권이 경제 살리기에 성공 할 것이란 믿음은 이미 희석된 마당이다. 지난해 말 임시국회에서 주요 쟁점 법안들을 하나도 처리 못한 한나라당이다.
야당에 질질 끌려 다닌 한나라당 지도부의 무기력과 원내 사분오열은 여당 역사에 없는 일이라고 ‘설 민심’이 지적했다. 당 주류인 ‘친이계’가 사실상 해체 상태가 돼버려 아무런 역할을 못한 허장성세를 쭉 지켜본 국민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립무원’을 생각했을 만하다. 정권실세들 얼굴을 여야 충돌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래알 같은 친이(親李)계의 성향이 적나라히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관심 끌었던 연초 개각에서 한나라당이 전면 배제 됐다. 대통령이 모른 체한 한나라당을 야당들이 우습게 보는 건 명백한 순리다. 정부 여당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설 민심은 또 각 부처 차관 자리를 실세들 중심으로 앉혀 장관들이 차관 눈치 보는 바지장관으로 된 점을 도마 위에 올렸다. 특히 개각과정을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몰랐던 점이나, 정치인들이 소외된 점은 철저히 ‘MB의, MB에 의한, MB를 위한’ 개각이었다는 ‘혹평’이 나왔다.
또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와 원세훈 국정원장의 등장은 전두환 시절 이후 처음 있는 최측근을 동원한 ‘공안통치’ 부활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청와대의 일방적 독주를 한나라당이 팔짱만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내부 결속력은 ‘친이계’의 와해와 더불어 재건이 어려운 판국이다. 더욱 한나라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는 청와대의 자업자득 측면이 강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사면초가를 자초 한데는 개각의 타이밍을 지적 안할 수 없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최악의 개각 시점을 선택한 것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MB 개혁 법안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데 신임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로 발목 잡히는 형국이 되면 법안처리는 또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또 한 번 ‘물리적 저지’의 외로운 힘겨루기를 해야 할 판에 ‘장관 인사청문회’라는 뜻밖의 원군을 만났으니 희색이 만면할 판이다.
결국 국회 ‘친이계’의 와해는 한나라당이 정국 주도권을 놓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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