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때 국민이 한나라당에 기대하며 쳐다볼 만한 곳은 역시 ‘박근혜 입’ 뿐이었을 것이다. 이런 민심을 모를 리 없는 박 전 대표의 ‘입’이 험난한 정국에 의표를 찔렀다. 무기력하고 대책 없는 상황에서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밀어 붙이기에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7월말 회의체 발족 때 참석 후 거의 반년 가까이 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박 전 대표가 새해벽두 예고 없이 회의에 참석해 당 지도부를 신랄히 질타해 나선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국가 발전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면서 내놓은 법안들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점이 굉장히 안타깝다”고 했다. 또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 통합을 위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평소 박 전 대표의 침묵정치 이미지와는 뚜렷이 다른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으로서 국민 앞에 큰 그림, 큰 모습을 보여야하며 그렇게 노력할 때 국민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이 한나라당의 협상제의나 대화를 거부하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한 정파 우두머리가 정치 이해를 위해 쏟아낸 말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간다. 어느 신문 사설 주장처럼 현실의 진흙탕 정치를 이미 벗어버린 국가의 원로나, 세속의 이해 다툼을 멀리 초월한 종교지도자의 냄새가 물씬 난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제가 당 대표 하던 시절에 그때 다수당이었고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4대 악법’을 내걸고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고 강행처리 하려고 했다.” “당 대표로서 그때 그런 점들이 가장 안타까운 일들로 기억 된다”며 4년 전 열린우리당의 행태와 오늘 한나라당의 강행처리 방침이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말한 대목은 속이 다 후련하다.
도통 끝을 모른 정국 중심에 박근혜 말고는 어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말들이 폭탄처럼 터진 것이다. 당연히 파문이 일어났다. 당 지도부가 당황했고 당내 강경파들이 숨을 죽였다. 일절 상의 없이 일어난 일이라서 측근 ‘친박계’의원들 조차 할 말을 잊었었다. 야당에게도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정중동 하던 ‘박근혜 입’이 꽉 막힌 정국의 물꼬를 텄다. 여야협상 타결을 이루었다.
박 전 대표가 이미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끝까지 대화로 타결이 되면 정말 좋겠다”며 강행처리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당 지도부와 ‘친이계’ 강경파들에 대한 사전 경고성 발언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국민들이 현실 정치권을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지는 부연 안 해도 된다.
만약 국민이 ‘박근혜 입’마저 쳐다볼 기회가 없었다면 민심은 아예 국회 없는 나라를 원했을 만하다.
기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