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입’ 쳐다 본 민심
‘박근혜 입’ 쳐다 본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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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1-14 15:19
  • 승인 2009.01.14 15:19
  • 호수 768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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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새해맞이 국민정서는 가감 없이 표현해 “국회를 박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에서는 입법부가 국민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심의하는 곳으로 배웠는데 지금 국회의 모습은 권투경기장 같습니다.”는 중학교 1학년짜리 글을 보고도 꿈쩍 않은 국회모양이 너무 용맹(?)스러웠다.

그런 때 국민이 한나라당에 기대하며 쳐다볼 만한 곳은 역시 ‘박근혜 입’ 뿐이었을 것이다. 이런 민심을 모를 리 없는 박 전 대표의 ‘입’이 험난한 정국에 의표를 찔렀다. 무기력하고 대책 없는 상황에서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밀어 붙이기에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7월말 회의체 발족 때 참석 후 거의 반년 가까이 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박 전 대표가 새해벽두 예고 없이 회의에 참석해 당 지도부를 신랄히 질타해 나선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국가 발전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면서 내놓은 법안들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점이 굉장히 안타깝다”고 했다. 또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 통합을 위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평소 박 전 대표의 침묵정치 이미지와는 뚜렷이 다른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으로서 국민 앞에 큰 그림, 큰 모습을 보여야하며 그렇게 노력할 때 국민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이 한나라당의 협상제의나 대화를 거부하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한 정파 우두머리가 정치 이해를 위해 쏟아낸 말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간다. 어느 신문 사설 주장처럼 현실의 진흙탕 정치를 이미 벗어버린 국가의 원로나, 세속의 이해 다툼을 멀리 초월한 종교지도자의 냄새가 물씬 난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제가 당 대표 하던 시절에 그때 다수당이었고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4대 악법’을 내걸고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고 강행처리 하려고 했다.” “당 대표로서 그때 그런 점들이 가장 안타까운 일들로 기억 된다”며 4년 전 열린우리당의 행태와 오늘 한나라당의 강행처리 방침이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말한 대목은 속이 다 후련하다.

도통 끝을 모른 정국 중심에 박근혜 말고는 어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말들이 폭탄처럼 터진 것이다. 당연히 파문이 일어났다. 당 지도부가 당황했고 당내 강경파들이 숨을 죽였다. 일절 상의 없이 일어난 일이라서 측근 ‘친박계’의원들 조차 할 말을 잊었었다. 야당에게도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정중동 하던 ‘박근혜 입’이 꽉 막힌 정국의 물꼬를 텄다. 여야협상 타결을 이루었다.

박 전 대표가 이미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끝까지 대화로 타결이 되면 정말 좋겠다”며 강행처리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당 지도부와 ‘친이계’ 강경파들에 대한 사전 경고성 발언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국민들이 현실 정치권을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지는 부연 안 해도 된다.

만약 국민이 ‘박근혜 입’마저 쳐다볼 기회가 없었다면 민심은 아예 국회 없는 나라를 원했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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