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선 장미꽃이 필 수 없다”더니
“쓰레기통에선 장미꽃이 필 수 없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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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12-30 10:13
  • 승인 2008.12.30 10:13
  • 호수 766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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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8일의 국회 폭력난동은 조직폭력배들간의 영역지배를 둘러싼 혈투를 무색케 하였다. 이 날의 난동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 의해 촉발되었다. 한나라당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실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한미 자유무역헙정(FTA)을 상정하려하자 민주당과 민노당 당직자들이 출입문을 때려 부수고 쳐들어가려는데서 벌어졌다.

난투전은 오전 9시반부터 오후 2시 까지 장장 4시간여 동안 지속되었다. 건물을 부술때 쓰는 대형 해머, 빠루(쇠지렛대), 전기톱, 징, 소방호스, 의자, 분말소화기, 주먹질, 발길질, 등을 닥치는대로 휘둘러 댔다. 조폭들의 패싸움 그대로이다.

대한민국 민의의 전당은 무법천지로 전락되고 말았다. 많은 국민들은 차라리 그 때 국회가 파괴돼 폭도지배의 국회 자체가 없어졌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는 토론과 타협 그리고 다수결이 지배하는 의회민주주의가 피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1952년 7월 집권 자유당은 경찰, 헌병, 폭력조직인 ‘땃벌떼’ ‘백골단’ 등을 동원해 물리력으로 야당의 반대를 막고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발췌개헌 파동’이 그것이었다. 반민주적 폭거였다. ‘발췌개헌’이란 집권당의 대통령제안과 야당의 내각책임제안 둘중 중요한 부분을 뽑아서(발췌) 만든 개헌안이란 말에 연유했다.

‘발췌개헌’의 반민주적 폭거를 지켜보던 영국 런던의 ‘더 타임즈’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개탄하였다. 전형적인 반민주적 행태였다는 지적이었다.

그로부터 꼭 56년이 지났다. 2008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체제 건국 60주년을 맞았고 세계 13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였다. 지난 1990년대 이후엔 자칭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라던 정권도 들어섰다.

그러나 그들도 진솔한 자유민주 정권들은 아니었다. 제왕적이거나 친북좌익으로 빗나갔던 얼치기들이었다. 더욱이 의회정치 행태는 56년 전 그 때 보다 ‘민주화’란 탈을 쓰고 더 무질서해졌고 폭력화 됐다.

그동안 국회에서는 걸핏하면 떼지어 몰려다니며 의사진행 방해, 의장석 점거, 명패 던지기, 멱살잡기, 폭언하기, 등 반민주적 작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12·18 폭력난동처럼 흉폭했던 적은 없었다. 12·18 난동은 대한민국의 국회가 날이 갈수록 성숙해지는게 아니라 더욱 저질화되고 폭력화 되어 간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특히 12·18 폭력난동은 폭력을 혁명수단으로 정당화하는 일부 정치세력에 의해 책동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는데서 더욱 심각하다. 12·18 폭력난동자들은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해 그대로 방치되어서는 안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발본색원되어야 한다.

지난날 유사한 폭력사태가 벌어질 때 마다 범법자들에 대한 처벌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兩非論)으로 덮어버렸다. 12·18 폭력난동에 대해서도 전 현직 국회의장들과 소장 정치학자들도 양비론으로 사건의 핵심을 흐렸다. “여당은 대화와 타협으로 인내했어야 하였고 야당은 폭력을 자제했어야 했다”는 양비론, 그것이다.

양비론은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욕 먹지않기 위한 비굴한 양다리 걸치기다. 12·18 폭력난동은 양비론으로 얼버무리려서는 안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반드시 난동자들을 색출해내 엄격히 법대로 다스려야 한다. 그런 사람은 국회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문책돼야 한다. 그래야 만이 대한민국에서도 아름다운 의회민주주의 ‘장미꽃’은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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